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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6. (水曜日, 218th, 샤갈日記 1)

2025.8.6. (水曜日, 218th, 샤갈日記 1)

     

샤갈이 내 인생에 들어온 지 14년째다. 2013년 1월 어느 날, 진도에 있는 지인을 통해 진돗개 벨라와 샤갈을 분양받았다. 특히 그분이 샤갈에 대해 ‘인물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원래는 이질러티 대회에서 일등한 샤갈 형이 오기로했지만, 명상을 잘하는, 한달 난 샤갈이 우리 삶에 왔다. 그들이 내 삶을 이렇게 전폭적으로 바꾸어 놓을지 몰랐다. 당시 아이들은 미래를 위해 외국으로 공부를 떠났다. 나와 아내는 서울에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고 있었지만, 하루에 50km를 뛰어다녀야 할 이들을 위해 시골 이주를 결정하였다. 당장 그들을 위한 공간을 찾지 못해, 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제주도 보목동 주택에서 한동안 살았다. 학교가 서울이라, 출퇴근 하기가 여간 불편했다. 2014년, 건축가인 동서에게 부탁하여 가평군 설악면에 집을 지었다. 나는 샤갈, 벨라, 그리고 설악면 뒷골목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한 식구가 된 예쁜이와 함께, 동거동락을 시작했다. 우리는 청평호수와 신선봉을 주위를 샅샅이 돌아다녔다. 이들은 나에게 새벽묵상, 아침산책, 집안과 책상 청소, 묵상일기와 독서라는 소중한 습관을 선물로 주었다.

     

2024년 운명은 우리를 가평 현리로 이동시켰다. 연인산 기슭 야산 중턱에 있는 조종면 집에서 살명서 샤갈, 벨라, 예쁜이는 아침산책을 종교로 승화시켰다. 우리는 이 야산 중턱에 예루살렘을 건축하였다. 야곱의 베델이 되었다. 이른 아침, 이 야산에 진입하면, 원래주인인 고라니들이 놀라 달아났다. 나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나뭇가지로 직사각형 관을 그려 놓았다. 겨울엔 관을 덮은 눈을, 가을에 이 관을 덮은 솔잎을 걷어냈다. 그곳에 가만히 앉으면, 저 멀리서 태양이 자신의 전령을 빛줄기를 통해 비춘다. 고대이집트인들인 이 빛줄기를 ‘앙크’ankh라고 불렀다. 앙크는 만물을 살게 만드는 생명력이다. 지구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빛줄기의 세례를 받고 그 힘으로 하루를 산다.

     

우리가 이 곳에 눈을 감고 가만히 좌정하면, 햇살이 우리를 깨운다. 나마스카라 요가동작을 반복하면, 허파로 들어온 신선한 공기가 심으로 들어와, 하나가 된다. 이 자연처럼, 오늘을 거침없이 물처럼 살 것을 다짐한다. 근대의 문법을 적은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확장하여,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하는가?’라는 물었다. 그리고 근대인간을 정의하였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칸트의 현학적인 질문을 집어치우고 인간의 암울한 운명, 인간은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는 불쌍한 존재라고 폄하시켰다. 그에게 인생에 의미 같은 것은 하상일 뿐이다. 근대를 극복한 현대인인 우리는, 아직 현대를 아우르는 철학적인 문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푸코와 같은 탈현대사상가들의 말장난에 놀아나 정신적인 공황과 더불어 영적인 기근을 겪게 되었다.

     

칸트와 푸코 중간에 등장한 예언자 니체는 현대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사상적인 문법을 제시하였다. 21세기 인류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기 위해서는 과학자 다윈, 철학자 니체, 심리학자 융의 문법을 자신의 머리와 심장에 고취해야 한다. 니체는 <선과 악의 저편에: 미래 철학의 서문> #230 후반에서 ‘호모 나투라’Homo natura라는 인간의 자기 모순적인 용어를 소개한다. 인류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은둔자들과 설치류들은 인간을 ‘호모 나투라’나는 용어로 표현한다. 형이상학과 종교는 인간을 자연을 정복하는 만물의 영장으로 표현해왔지만, 인간은 더욱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자연의 일부로 자신을 인식하는 존재를 초인이라고 말한다.

     

벨라는 작년 9월에 자신이 왔고 다시 돌아가야할 자연으로 돌아갔다. 뒷마당에서 자주 야산을 쳐다보면서 홀로 그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놓아 주었아애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실내에서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벨라가 떠나자, 운명은 우리를 다시 예전에 살던 설악면으로 인도했다. 14살 샤갈과 11살 예쁜이는 실내에서도 살수 있는 느긋한 나이가 되었다. 설악면엔 아내와 내가 마련한 쉘터에서 우리가 그동안 구조한 학대견 20마리가 생활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 독일의 티어하임을 넘어서는 쉘터를 새로운 부지에서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쉘터는 인류의 희망인 인간중심에서 생명중심으로 새로운 문화와 문명의 펼칠 메카가 될 것이다.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설악면에서 이들을 위해 새벽산책과 저녁산책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였다. 반려견들은 나를 자연으로 인도하여, 생물은 모두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요즘은 인간이 니체가 말한 Homo natura라는 사실을 점점 깨닫는다.

     

샤갈은 내 서재를 자신의 잠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샤갈을 일으켜 아침을 깨우는 산책을 나갔다. 아직 미명으로 어둑어둑하다. 산책길이 고요하다. 오전 5시 10분, 매미 한 마리가 새날이 도착하고 있다고 노래를 부르자, 여기저기서 매미들이 일어나 합창을 한다. 한 마리 매미가 수천, 수만의 매미를 일깨웠듯이, 생명존중의 작은 목소리가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울리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와 영국의 종군 시인이자 소설가인 시그프리드 서순의 <인간과 개>라는 시를 읽고 번역하였다.

     

Man and Dog by Siegfried Sassoon

인간과 개, 영국 종군 시인이자 작가, 소설가인 시그프리드 서순 (1886-1967) 

Who's this ? alone with stone and sky?

It's only my old dog and I ?

It's only him; it's only me;

Alone with stone and grass and tree.

     

What share we most ? we two together?

Smells, and awareness of the weather.

What is it makes us more than dust?

My trust in him; in me his trust.

     

Here's anyhow one decent thing

That life to man and dog can bring;

One decent thing, remultiplied

Till earth's last dog and man have died.

     

인간과 개

     

이게 누군가? 돌과 하늘과 함께 홀로 서 있는 존재가?

나의 유일한 나이들은 반려견과 네가 아닌가!

반려견은 반려견일 뿐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우리는 돌과 풀과 나무와 함께 각자 홀로 서있다.

     

우리가 가장 공유하는 것은 무엇인가? 둘이 함께한 우리가 아닐까?

냄새들과 날씨의 낌새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를 흙먼지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반려견을 믿고, 반려견이 나를 믿는 것이다.

     

여기에 어쨌든 근사한 것 하나가 있다.

인간에게 다가온 삶인데, 그것은 반려견이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 근사한 하나가, 영원히 불어날 것이다.

이 지구에 마지막 반려견과 마지막 인간이 사라질 때까지.

     

사진

<매미 울음 소리에 놀라는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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