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7.23 (水曜日, 204th/365, 經典默想) “예수가 울었다”
- Chulhyun Bae

- 7월 23일
- 2분 분량
2025.7.23 (水曜日, 204th/365, 經典默想) “예수가 울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담겨있는 성서에서 가장 짧은 문장이 있다. <요한복음> 11장 35절이다:
ἐδάκρυσεν ὁ Ἰησοῦς.
에다쿠뤼센 호 이에수스
“예수가 울었다.”
“예수가 울었다”라는 말은 성서에 등장하는 가장 심오하고 강력한 문장이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동생 라나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의 반응이다. 겨우 두 단어일 뿐이지만, 그리스도의 핵심을 담고 있다. 그는 아직 무덤에 가지도 않았다. 마리아가 라사로가 죽었으니 이제 함께 무덤으로 가서 그의 시신을 보자고 요청하였다. 그 때 예수의 반응은 ‘함께 우는 행위했다,’ 예수는 왜 울었는가? 마리아가 우는 모습을 보고 감정이 북받쳐 전염되어 울었는가? 예수가 나사로를 다시 못볼 것 같아, 아쉬워 운 것인가? 예수는, 그 순간에 마리아와 마르다의 고통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들 고통을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함께 느꼈고, 눈물은 그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예수는, 이 순간에 타인의 아픔을 진정으로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실제로 자신의 신체로 반응하고 그 대상의 아픔을 경감하기 위해 애쓰는 ‘공감의 혁명’을 일으켰다. 임마누엘, 즉 신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말은 은유나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아픔을 신이 함께 느낀다는 의미다. <시편> 34년 18절은 다음과 같이 신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קָרֹ֣וב יְ֭הוָה לְנִשְׁבְּרֵי־לֵ֑ב וְֽאֶת־דַּכְּאֵי־ר֥וּחַ יֹושִֽׁיעַ׃
“야훼는 심장이 찢어진 자, 근처에 계신다.
그는 영혼이 파괴된 자, 근처에 계신다.”
오늘 새벽 샤갈과 함께 산보 의레를 위해 집을 나섰다. 자라섬은 집에서 25분거리이지만, 꽃과 나무와 강이 있서 왕복 한 시간을 투자할 만한 거리다. 집을 나서다 우리가 두달전까지 살던 가평 조종면으로 차를 돌렸다. TV를 통해 본 폭우로 파괴된 조종면의 모습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의 매일 조종면에서 출발하여 6.5km 떨어진 연인산으로 자동차를 타고 산보를 갔다. 2년 반동안 거의 매일 아침에 간 곳이라, 우리에게 예루살렘과 같은 장소다.
조종면으로 들어서자 마스크를 한 군인들이 보인다. 두차선 도로는 유실되고, 자동차는 시냇가에 쳐박혀있고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본 가장 처참한 광경이었다. 한참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 연인산 입구쪽으로 갔지만, 산사태 흙더미를 치우고 있는 공사차량으로 더이상 갈 수 없어 돌아왔다. 내가 매일 수행하던, 화전민터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저 흙더미 넘어엔, 매일 아침 산책하는 동안 만났던 동무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가? 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가평 조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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