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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31.(水曜日) “작곡자作曲者 배준희”

2023.5.31.(水曜日) “작곡자作曲者 배준희”

인페르노 수업에 최병화선수와 같은 다른 예술가가 이메일을 보냈다. 작곡을 하는 배준희다. 준희는 작곡을 업으로 삼지만, 생계를 위해 디지잉과 피아노 레슨을 하는 청년이다. 수업시간에 종종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1년전에 아마추어 격투기 선수가 되어 시합에 나가기 때문이다. 지난번 시합에서 러시아 선수와 맞붙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찢어진 이마이지만, 그의 미소가 편안했다.

지난 주 토요일(5월 27일)에 진행한 인페르노 수업 후에, 준희는 자신이 작곡한 음악과 영상을 우리에게 선 보였다. 고대 이집트의 위문개념, 영화 Tree of Life에서 테렌스 말릭감독이 보여준 숭고한 영상, 그리고 단테가 인페르노에서 구축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원뿔형 모형과 함께 중독성이 있는 강한 비트가 코라채플에 10분간 울려퍼졌다. 단테가 지옥에서 루시퍼를 이겨내고 연옥으로 가려는 몸짖이었다.

준희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극복하고 있는 초인의 모습을 보았다. 인간은 ‘어제의 자신을 극복하는 그 무엇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는 무형이기에 ‘그 무엇’이며, 항상 극복을 시도하기 때문에 신선하다. 준희는 자신을 매일 극복하고 있는 초인이 되었다. 준희가 <인페르노> 수업을 마치면서 나에게 보낸 며칠전 보낸 이메일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고백론이다. 준희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전문을 실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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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준희입니다! 오늘 욥기 마지막 수업은 제가 해외 봉사 관련 미팅으로 참석하지 못하고 다음 주 마지막 수업에는 공연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수업에 대한 소회를 글로 써 전달해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처음 코라에 들어서기 전 저는 직업 작곡가의 세계를 도망치듯 벗어나 두 달간 집 밖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은 나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세상의 영감이 되는 소리를 만들고 싶다는 패기는 꺾여 어느새 돈을 벌기 위해 마음에 없는 곡을 쓰는, 그러면서도 항상 경제적으로 불안한 저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슬픈 사실은 제 주변의 모든 선후배와 동료들이 곡을 팔아 밥벌이하는 자신을 자조하며 무너져 가는 것을 두 눈으로 봤다는 점입니다. 수익은 불안정해도 긍지 하나만큼은 가지고 있던 저는 중심을 잃은 채 자조적인 분위기에 몸을 맡겼습니다.

어쩌면 이 지옥은 제가 경험했던 천국으로부터 비롯되었나 봅니다. 작곡팀을 나오기 1년 전 건명원에서 인간 문화의 흐름을 훑으며 예술가를 꿈꿨던 저는 다시 복귀한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인간사를 배우지 말았으면, 좋아하는 것을 가진 학우들을 만나 대화하고 시대의 획을 그은 예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저는 제 동료들처럼 현실에 순응하며 곡 팔아 밥벌이하는 것에 만족했을 것입니다. 지난 <신곡> 수업 선생님의 말씀처럼,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우울증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샹과 쇤베르크와 카프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는 소원은 너무도 강력해 그들처럼 용기 내지 못한 저 자신을 자책하며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지옥으로 들어갈 운명이었나 봅니다.

작곡팀을 나오고 ‘음악’이라는 키워드에서 벗어나면 행복할 줄 알았으나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던 이유는 편의점, 술집 등 어디를 가도 음악이 들려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와 드라마도 음악이 나오는 부분이 나오면 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 방에 흘러들어오는 일상의 소리도 음악이 되어 저를 괴롭혔습니다. 신이 제게 주신 선물이라 생각했던 귀가 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습니다.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선생님이 하시는 욥기 수업에 대한 공지를 읽었고 어느덧 <신곡>을 공부하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 자기소개를 할 때가 기억납니다. 모든 학우분이 자신의 업과 이 수업에 거는 기대를 공유하실 때 저는 저 자신을 무엇이라 소개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사실 저는 저 자신을 더 이상 작곡가 혹은 예술가라 생각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은 그저 곡 만드는 기술자쯤으로 여겼기 때문에 스스로를 직업 작곡을 했었다고 소개했습니다. 파토스를 담아 만든 지난날의 앨범과 곡들은 들려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기만 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묵묵히 걷는 수행자들을 기망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매 수업은 제가 겪는 지옥을 직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단테와 함께 한 지옥 여행이 깊어질수록 저는 등을 돌렸던 ‘음악’에게 조금씩 손을 내밀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는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음악만큼, 아니, 소리만큼 아낌없이 주는 것은 없습니다. 소리는 듣는 것도 좋고 만드는 것은 더더욱 재미있고, 그에 관해 글을 쓰고 읽으며 삶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소리를 다루는 법을 가르친다는 사실만큼 자긍심을 높이는 일도 없습니다. 음악은 지옥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친구를 하대하고 소중히 하지 않았던 제가 지옥이란 환영을 만든 것뿐이었지요… 마치 <신곡> 속 인물들이 지옥에 빠진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이 하나하나의 지옥이었던 것처럼요.

언젠가 수업 시간에 제 음악을 학우들에게 들려드린 기억이 납니다. 수업을 통해 용기를 얻어가며 다시 작곡에 손을 대던 제가 듣는 이와 함께하고팠던 바로 그 떨림, 그 고막의 진동과 마음의 움직임이 코라에 울려 퍼졌을 때, 그때만큼은 잠시나마 천국을 느꼈습니다. 제 이름이 높아지는 것 따위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제가 최초에 경험했던 마음의 파동을 함께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가 원하던 것은 그뿐이었는데 음악 업계에 진입하기 위해 수많은 경쟁을 거치면서 나의 이름이 높아지고 몸값이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비전공자로서 영화음악 업계에 들어가기 위해, 장르 음악 판에서 동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위해 집중했던 지난날을 반성했습니다. 돈과 명예와 인맥은 저만의 포가토리움에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모두가 같은 떨림의 순간을 공유하고 다채로운 꿈을 펼치는 그 시간만이 경건할 뿐입니다.

저는 <신곡> 수업 덕분에 다시금 예술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음악은 잘못이 없다’는 깨달음이 꽃을 피워 창작 활동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사활을 걸게 되었고, 최근에는 음반 제작자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해보고 싶었던 케이팝 제작사의 면접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나만의 마하트는 직업 작곡가로서 히트곡을 만들어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다양한 매력과 철학을 사람들과 공유해 떨림을 만드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호숫가에 떨어진 돌이 만든 파동처럼 이 떨림이 언젠가는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최초의 파동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제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겠지요.

최근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뇌에 관한 지식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본능을 담당하는 reptile brain과 이성을 담당하는 신피질이 비대하게 발달한 현대인의 변연계가 저로 인해, 그리고 우리로 인해 감수성의 혁명을 이루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선생님께서 내주셨던 귀한 시간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마하트를 찾는 수련에 동참하겠습니다.

음악 하는 예술인 배준희 올림

PS.

“재즈에 틀린 음은 없다. 음들이 틀린 장소에 있을 뿐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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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멀나마 장엄한 고백인다. 어거스틴의 고백론처럼, 톨이스토의 고백론처럼, 자신을 직시하고 희미한 미래에 희망을 횃불을 들어올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준희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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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희에게

나도 준희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나름대로 자신에게 감동적인 삶을 구가하기 위해 멀리서 고군분투하고 있지.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을 왔다갔다 해. 지난 시간 네가 우리에게 들려준 영상과 음악은 전율이었어. 네가 일반인들을 범접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 예술가들에게만 선물로 주는 매력적인 순간을 도반들에게 전해줘서 고마웠어.

예술가들은, 특히 보이지 않은 음을 통해 인간의 폐부에 침투하여 영감을 주는 능력은 특별하지. 음악을 다른 예술분야과 비교하여 가장 추상적이다. 음을 통해, 인간의 심장을 공격하잖아. 네가 인생에서 시도하는 음악을 통해 자신이 행복하고 너의 음악을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환희를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달콤한 인생이지. 나도, 젊은 시절, 아니 지금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은 일인가? 이 일이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사는 공동체에게 유익한 일인가를 고민해. 아침에 일어나는 하얀 방석에 올라, 오늘을 영원한 하루로 만들어 작열하게 살다가 눈을 감겠다고 다짐하지. 에머슨이 말한 ‘자신을 반박하십시오contradict yourself’가 요즘 내 삶의 모토야.

인간은 우연히 안 지식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구분하고 이해하려는 실수를 저질러. 부모를 통해 접한 종교, 학교를 통해 알게도 지식, 책을 통해 간접으로 경험한 사상, 미디어를 통해 접한 왜곡된 정보를 진리하고 착각하지. 진리는 헨리 데이빗 소로가 20살에 랄프 왈도 에머슨과의 만남으로 시작한 첫 일기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어. 지난 수업 시간에 내가 소개한 내용이야. 잘 음미해 봐.

GLEANINGS-OR WHAT TIME HAS NOT REAPED OF MY JOURNAL

Oct.22 [1837].

“What are you doing now?” he(Emerson) asked. “Do you keep a journal?” So I make my first entry to-day.

SOLITUDE

To be alone I find it necessary to escape the present,-I avoid myself. How How could I be alone in the Roman emperor’s chamber of mirrors? I seek a garret. The spiders must not be disturbed, nor the floor swept, nor the lumber arranged. The German say, “Es ist alles

wahr wodurch du besser wirst.“

(번역)

이삭줍기같은 선집- 혹은 시간이 내 일기로부터 수확하지 않은 것

1837년 10월 22일

에머슨이 말했다. “너 뭐하고 있어. 일기 써?” 그래서 나는 오늘 처음 일기를 썼다. 고독孤獨

홀로 있는 것이 지금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필요하다. 나는 내 자신을 피한다. 내가 거울로 둘러싸인 로마황제의 응접실에서 외로울 수가 있는가? 나는 다락방을 찾는다. 그곳에선 거미로 방해를 받지 않고 마루를 쓸지도 않고 방을 정리하지도 않는다. 독일들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을 개선시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작곡을 하는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지. 나도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 고독을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위한 숨 고르기야. 숨 고르기는 단거리 선수가 출발 선상에서 고개를 떨구고 두 발과 선을 선에 정렬시키고 온몸에 힘을 빼는 무아연습이야. 그 연습이 없다면, 만남을 기껏해야 힘 빠지는 일이지. 고독만큼 친절한 친구는 없을 거야.

네가 <신곡>수업을 통해 다시 침묵으로 공간과 시간으로 들어가 음을 만들어내겠다는 예술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너무 기뻐. 인간이 사활을 걸 일은, 내가 지금 하는 일이야.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린아이를 가치고 케이팝 제작사에서 작곡하고, 네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 파동을 일으키는 일은 숭고한 일이야. 내가 막스 리히터Max Richter나 아브로 페르트Arvo Paert에게 감동하는 이유이기도 해.

이번주부터 시작하는 ‘아방 가르드 수업’에 참여해.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 최첨단 예술이 무엇인지 진지하고 신나게 살펴볼게. 네거 꼭 참석하면 좋겠어. 네 편지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혁신적인 작곡자가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2023년 5월 31일

배철현

사진

<시냇물을 소리를 듣는 샤갈, 벨라, 예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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