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4. (金曜日) “눈을 감으십시오!”


COVID-19은 자기혁신을 위해 절호의 기회다. 나의 하루는 묵상으로 시작한다. 아침 일찍 공부방 중앙에 하얀 방석을 중앙에 가지런히 높고 그 위에 좌정坐定한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야 내 마음의 활동을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조상으로부터 받는 경전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경전을 네 가지 층위로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 해석을 아람어로 ‘파르데스Pardes’라고 부른다. ‘파르데스’는 ‘천국’이란 의미이면서 경전 해석의 네 층위인 ‘페샤트Peshat’, ‘레메즈Remez’,‘ 데라쉬Derash’ 그리고 ‘소드Sod’의 첫 글자들의 조합니다.

페샤트(Peshat)는 ‘단순한, 평이한’이라는 뜻으로 경전 단어나 문구가 지닌 축자적인 의미다. ‘레메즈(Remez)’로 힌트란 의미로, 문학적 용어로는 ‘은유’다. ‘데라쉬(Derash)’적 해석 방법으로 히브리어로 ‘연구하다, 공부하다’라는 뜻이다. 성서 안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과 인물, 그리고 다른 경전과의 연계 등을 연관시킨 해석이다. 마지막으로 ‘소드Sod’는 ‘비밀’이란 의미로 신이 경전 안에 숨겨둔 비밀이다. 이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 경전해석의 목적이다.

유대인들의 논어인 <선조들의 어록>은 모든 구절들이 짧지만 근본적인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조들의 어록> 4.1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벤 조마가 말한다.

누가 진실로 지혜로운가?

그(녀)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경전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나의 모든 스승으로부터 분별을 배운다. 왜냐하면 당신의 증언들이 나의 묵상이기 때문이다.’

누가 진실로 강한가?

그는 자신이 충동을 조절하는 사람이다.

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화내기를 더디 하는 사람이 힘센 사람보다 강하다.

자신의 영혼을 조절하는 사람이 도시를 정복한 사람보다 강하다.’

누가 진실로 부자인가?

그는 자신의 삶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분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신이 손노동의 열매를 먹을 때, 당신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다음 세상에서 풍족할 것이다.’

누가 존경을 받을 만한가?

그는 모든 인간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를 높이는 사람들을, 나는 높일 것이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나는 무시할 것이다.’”

벤조마는 원래 이름은 시므온 벤 조마로 탈무드 시대(기원후 2세기 전반)에 ‘조마의 아들(벤)’으로 알려졌다. 그는 히브리 성서를 자신의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재해석하고 번역하는데 뛰어난 재주를 지닌 학자였다. 그가 박학다식하다고 존경을 받았지만, 유대학자의 최고 명예인 ‘랍비’라고 공식적으로 불리는 명예를 추서 받지 못했다.

벤조마의 명언은 눈을 감아야 비로서 떠오르는 깨달음이다. 우리가 대상을 분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때때로 눈을 감아야한다. 사물을 보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육안으로 사물의 겉모습을 보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눈을 감고 그 대상이 지닌 숨겨진 의미, 그 비밀을 꿰뚫어보는 시선이다. 벤조마의 깨달음은 눈을 감을 때 떠오르는 지혜다.

우리가 눈을 뜨면, 엄청난 지식을 지닌 유명한 사람을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우리는 지혜는 많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음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의 마음은 호기심으로 가득하고 그의 언행은 겸손하다. 호기심과 겸손이 지혜의 표시다. 우리가 눈을 뜨면 근육이 울퉁불퉁한 사람이 힘센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자신을 힘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영웅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상에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더 센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영혼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도시를 정복한 장군보다 강하다.

우리가 눈을 뜨면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진정한 부자는 자신이 소유한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은 가난뱅이다. 자신의 돈을 꼭 필요한 사람이나 일에 사용하는 사람이 부자다. 우리가 눈을 뜨면, 공적으로 인정과 갈채를 받고 훈장을 수여한 사람이 존경을 받을 만 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자신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을, 그 사람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모처럼, 혹은 신처럼 존경하는 사람이 존경 받을 만하다. 남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존경을 받는다.

유사한 구절이 <도덕경>에도 등장한다. 노자도 <도덕경> 33행a에서 이렇게 말한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지인자지 자지자명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남을 아는 것은 지식이라면,

자신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라면,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강함이다.”

나는 지혜로운가? 오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기를 연습해야겠다. 나는 강한가? 나의 충동과 본능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분노하려는 나를 가만히 응시해야겠다. 나는 부자인가? 내 노동의 대가에 만족하고 그 노동으로 주위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해야겠다. 나는 존경받을 만한가?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 존경해야겠다.

사진

<독서하는 사람>

렘브란트 (1606–1669) 혹은 렘브란트의 문하생 바렌트 파브리티우스 (1624–1673)

유화, 1648, 66.5 × 58 cm

윌리엄스타운 클락 미술학교Clark Art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