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8. (木曜日) “한로寒露”



아침 산책길이 쌀쌀하다. 선뜻 불어 닥치는 바람이 겨울을 품고 있다. 오늘은 24절기 중에 17번째로 “한로寒露”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증기와 같은 이슬이 서리로 변하기 직전의 시기다. 한로는 한 달 후면 만물을 차갑고 무겁게 잠재울 입동立冬이 가까이 왔다는 경고다. 겨울을 잘 보내고 내년 봄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 무엇을 연습하여 간직해야하는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왔는가?


대중문화를 작동시키는 핵심은 ‘쾌락快樂’이다. 미디아는 온통 순간적인 감동, 순간적인 포만감, 순간적인 자극이 선이라고 광고한다. 쾌락은 순간의 즐거움이지만, 순간이 지나면, 쾌락이 아니라 아쉬움과 중독으로 변질된다. 쾌락은 우리의 뇌와 가슴을 자극하여 인상印象과 선입견을 남긴다. 그 지나가버린 시들은 즐거움은, 우리를 다시 희구하게 만드는 중독中毒이다. 순간을 몰입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나, 사실을 그 쾌락자를 구태의연한 과거에 매몰되게 만든다.


‘쾌락주의’는 현대대중문화의 어머니다. 쾌락이 인간에게 최선이라는 철학이다. 쾌락주의자는 가능하면, 최대한 아픔과 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극대화는 것이 삶의 의미이며 목적이라고 믿는다. 쾌락주의는 인간 오감의 경험만이 진리라는 물질주의이며 인간 삶의 목적은 편리와 쾌락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쾌락주의에서는 인간에게 고통이나 아픔을 일으키는 것이 악이다.


쾌락주의에서 나온 두 분파의 철학사상이 있다. 하나는 에피쿠로스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공리주의 철학이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데모크리토스가 시작한 물질주의의 한 분파이지만, 수정된 쾌락주의다. 에피쿠로스는 최선을 ‘쾌락’이 아니라 ‘평정심’이라고 말한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과 즐길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것을 희구와 탐닉하는 것은, 평점심이 아니라 오히려 초조와 불안감이다, 영국 철학자 제러미 밴텀은 개인의 쾌락주의를 확장하여 공동체 전체가 즐기는 다수의 쾌락을 생각해낸다. 그는 다수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선이라고 주장한다. 공리주의는 왜곡된 민주주의와 동맹하여 20세기에 무솔리니, 히틀러, 김일성과 같은 독재자를 생산하였다.


만일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획득했을 때, 나는 행복하다. 그 행복감은, 그 물건을 획득하기 직전에 최고이며, 획득한 이후에는, 쾌락의 정도가 감소한다. 그것은 중고자동차와 같다. 꿈이 그리는 어떤 대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을 가져 올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 대상을 만나고 경험을 통해 뇌 속에 생성되는 도파민은, 순간적이다. 멋진 친구, 맛있는 음식, 화려한 의상, 사치품과 같은 물건들은 가져다주는 기쁨은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V.9b에서 쾌락이 가져다주지 못한 인생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쾌락이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생각해 보십시오. 친절, 자유, 단순, 평정, 경건이 더 즐겁지 않을까요?또한 지혜가 더 즐겁지 않을까요?”


상대방에게 친절한 사람은 사실 자신에게 먼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다. 그 친절을 소환하여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바로 친절이기 때문이다. 외부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숭고한 이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독보적이며 자유롭다. 그 자유는, 그런 분명한 이상을 품은 자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그 자유가 타인에 의해 결정되거나 조정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속박이다.


단순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에 우선순위를 매겨, 그 상위 하나에 집중하려는 결심이다. 그 나머지는 굳이 하지안하도 되는 부차적인 것이다. 단순을 그것을 시도하는 사람에게 평정이란 선물을 준다. 그 하나에 몰입하여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성현들은 자신에게 유일무이한 것을 발견하여 집중한 사람들이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정성이라는 닻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평온하다. 파도가 밀려와도 잠시 흔들릴 뿐, 휩싸이지 않는다. 그런 자의 언행은 경건하고 경쾌하다.


사마천의 <사기>에 활의 명수로 유명한 이광李廣장군에 대한 표현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분야인 활쏘기에 몰입한 자다. 활쏘기를 통해 자신의 덕을 실천하였다. 사마천은 그의 덕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桃李不言 下自成蹊 도리불언 하자성혜

“복숭아와 자두나무는 말이 없다.그러나 그 아래 저절로 발자국이 생긴다.”


이 나무들은 일 년 내내 자연의 순환에 따라 말없이 조용하게 정진해왔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안개가 내리나 서리가 내리나, 그 나무에겐 열매를 훌륭하게 맺기 위한 당연한 과정일 뿐이다. 적당한 시간이 되니, 마침내 탐스런 복숭아와 자두를 맺게 된 것이다. 그랬더니 그 열매를 보고 사람들이 저절로 모이게 되었다. 그 매력이 바로 인생의 지름길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한로에 나는 어디에 경도되어있는가? 나를 중독으로 인도하는 쾌락의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친절, 자유, 단순, 평정, 경건을 묵묵히 실천하여 열매를 맺을 것인가?


사진


<분홍색 복숭아나무>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 (1853–1890)유화, 1888, 80.5 cm x 59 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