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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5.9.2. (火曜日, 245th/365) “방석方席”

2025.9.2. (火曜日, 245th/365) “방석方席”

     

나에겐 방석이 두 개가 있다. 새벽에 올라가는 방석과 밤에 올라가는 방석이다. 새벽방석은 오늘을 헛되이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고 밤방석은 헛되이 산 오늘을 한탄하는 후회다. 이 방석에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다. 한라산보다 오르기 힘든 고지다.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시작하는 <도마복음서>와 <요가수트라> 공부를 통해 나는 변하고 싶다. 잃어버렸다 기적적으로 사막에서 발견된 예수의 말씀, 그리고 파탄잘리와 인도의 르시를 통해 전달해준 해탈의 경지를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과 경험하고 싶다. 경험만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익숙하거나 달콤하지 않고 이상하고 쓰다. 단테가 들어간 지옥은 어두운 숲처럼, 아무도 들어가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 길이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이 좁은 길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이 공부는 내가 도반들이 좁은 길로 들어서는 훈련이다.

     

오늘 새벽기도를 다시 시작하였다. 샤갈과 산책을 나가기 전, 방석위에 몸을 올려놓고 손발을 묶고 허리를 세우고 눈을 감는다.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며 AUM을 읊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하지 말하야할 것은 무엇인가?’ 10분 후에 창을 여니 거센 비를 맞고 살아남은 매미들이 여름을 아쉬워하며 슬피 울고 귀뚜라미는 가끔 끼어들어 가을이 왔다고 노래하고 뻐꾸기는 저 먼 산에서 뻐꾹 뻐꾹 아련하게 고향을 그리워한다.

     

18마리 학대견들을 위한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들의 이름은 이렇다:

     

다윗,

요셉,

초롱이,

샤홀,

파티,

루미,

평창,

이삭,

요나,

행운,

행복,

난나,

단테,

메시,

모세,

사랑이,

링컨.

     

이들 한마라 한 마리가 우리 삶에 들어오게되 경위는 길가메시가 우룩으로 돌아오는 것만큼 파란만장하다. 이들의 여정을 책을 내고 싶다.

     

이들에게 줄 지하수를 위해 공大孔 공사를 시작하였다. 컴패션 부지 공사현장의 흙들이 동네 도로로 흘러나와 주민분들이 와서 불평한다. 우리의 취지를 잘 설명하고 이들로부터의 수모와 수모를 견디는 설득도 컴패션 건축의 일부다. 아내는 어제도 10시간이상 현장에서 온몸으로 비를 맞고 흙탕물을 묻힌 채 밤 10시에 돌아왔다. 아내의 정성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컴패션이 많은사람들에게 모든 생명, 특히 1m줄에 매여 학대당하고 있는 개들을 해방시키는데 일조하면 좋겠다.

     

예전에 읽은 메리 올리버의 책 Dog Songs에 등장하는 세 번째 시인 If You are Holding This Book이 생각난다:

     

If You are Holding This Book by Mary Oliver

     

You may not agree, you may not care, but

if you are holding this book you should know

that of all the sights I love in this world—

and there are plenty—very near the top of

the list is this one: dogs without leashes.

당신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당신이 상관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이 책을 들고 있다면, 알아야 해요,

제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많은 장면들중에서,

물론 많은 장면들이 있죠-그 리스트의 거의

맨 꼭대기에 있는 것이 이것이에요: 개목줄이 없는 개들이죠.

     

지난 일요일에 봉은사의 공일스님과, 신도회 부회장님, 그리고 그분의 남편분이 현장에 찾아오셨다. 이들은 내가 작년에 봉은사에서 강연한 ‘인간중심에서 생명중심으로’의 강의로 맺은 인연들이다. 우리가 컴패션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오래전에 잡힌 약속이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컴패션에서 담소를 나눴다. 인간은 가난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돈을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가난하다. 돈에 눈이 먼 대한민국에서, 부유한 사람은 점점 자신과 가족밖에 모르는 부도덕한 자들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실망에 허덕이며 세상을 욕하면서 살고 있다. 가난의 근본적인 이유는 지갑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자신의 소유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헐떡과 비교에서 나오는 부러움이 가난이다.

     

자신이 소유한 것을 진정으로 나눌 때 그는 비로서 부자가 된다. 이 영적인 깨달음을 위해 우리는 배운다. 루미는 이 영적인 깨달음과 경험을 내가 앉은 방석 위에 새겨놓으라고 간절하게 노래한다:

     

Put This Design in Your Carpet by Rumi

     

Spiritual experience is a modest woman

who looks lovingly at only one man.

It’s a great river where ducks

live happily, and crows drown.

The visible bowl of form contains food

that is both nourishing and a source of heartburn.

There is an unseen presence we honor

that gives the gifts.

You’re water. We’re the millstone.

You’re wind. We’re dust blown up into shapes.

You’re spirit. We’re the opening and closing

of our hands. You’re the clarity.

We’re this language that tries to say it.

You’re joy. We’re all the different kinds of laughing.

     

당신의 방석에 이 무늬를 새기세요. 루미

     

영적인 경험은

한 남자만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정숙한 여인입니다.

그것은 오리들이 행복하게 살고

까마귀들이 빠지는 위대한 강입니다.

그것은 자양분을 주고 가슴앓이의 원천이 되는

음식이 담긴 저 아름다운 그릇입니다.

우리에게 선물을 주어 존경하는

보이지 않는 현존이 있습니다.

당신은 물입니다. 우리는 맷돌입니다.

당신은 바람입니다. 우리는 날려 모양이 된 흙먼지입니다.

당신은 영혼입니다. 우리는 손을 열고 닫습니다.

당신은 투명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말하기 위해 이 언어를 사용합니다.

당신은 기쁨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게 표현하는 웃음입니다.

     

이 영적인 경험은 나와 신이 하나를 깨달음이다. 나와 신이 합일하여, 신이 우리에게 주신 자비를 다른 웃으로 표현할 때, 오늘이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가 되고, 요한이 말하는 호라hora시간이 된다. 불행과 무식은 나와 신이, 나와 동물이, 나와 나무가, 나와 당신이 둘이라는 착각이다. 마아스터 에크하르트는 그 하나를 이렇게 묵상한다.

     

The One by Meister Eckhart

     

There is within me a citadel where I am one with You,

a place so strong and pure that no one-not even You-

dare to lool inside, unless You strip Yourself of all

Your names and natures, to the point where You

are one and simple, for only there, beyond all

doing and thinking and feeling, can You know

the one I am and can I know the one You are.

     

하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제 안에 제가 당신과 하나가 된 요세가 있습니다.

너무 강하고 순수하여 아무도, 심지어 당신도

그 안을 감히 쳐다볼 수 없습니다. 당신 스스로

모든 당신의 이름과 신성을 벗어 당신이

하나가 되고 단순이 된다면 몰라도. 왜냐하면

거기에서만, 모든 행위와 생각과 느낌을 넘어서,

당신은 저란 하나를 알고

저는 당신이란 하나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심정을 바울이 <빌립보서> 4.13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πάντα ἰσχύω ἐν τῷ ἐνδυναμοῦντί με.

판타 익쉬오 엔토 엔도나문티 메

“나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있다.”

     

육체를 자랑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무식을 발견하는 정신이 폄하되고, 온전한 자신을 회복하는 영혼이 사라진 오늘, 나와 신이 하나가 될 때, 나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있는 빛으로 살 때, 오늘 그렇게 살고 싶다.

     

사진

<새벽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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