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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19. (火曜日, 241/365) “당신은 어떤 부류部類의 인간입니까?”

2025.8.19. (火曜日, 241/365) “당신은 어떤 부류部類의 인간입니까?”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용기가 있고 겸손하게 사는 선한 인간, 자신을 가만히 응시한 적이 없어 매 순간 바람에 나는 겨처럼 욕망에 흔들이며 과거라는 쾌락에 중독된 악한 인간, 그리고 권력, 금력, 명성을 홀로 차지하기 위해 대중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이라고 아부하는 위선적인 인간이다. 인간이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자신을 가만히 보게되고, 자신이 어떤 부류로 살아왔는지를 관찰하게 된다. 여기 카라바조가 1605년, 로마에서 자신이 사랑한 창녀 필리데의 포주 토마소니를 살해하고 도망치는 삶을 살기 직전에 그린 그림, <에케 호모>에서 세 부류의 인간을 그렸다.

     

성서를 가장 깊이 해석한 학자는 신학자, 철학자가 아니라 예술가들이다. 헨델이나 바흐와 같은 작곡자, 도스토에프스키나 스타인벡과 같은 소설가, 그리고 카라바조, 렘브란트, 샤갈과 같은 화가다. 특히 이 화가들은 성서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심오한 해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카라바조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가 보기에는 타락한 신자였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고 성서에 담긴 진리를 대담하게 간결하게 평이하게 표현한 신자였다. 그는 교리나 기적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노예처럼 순진하게 수용하지 않았다. 그는 생전의 행위에 따라 인간이 사후에 심판을 받는다고 믿지도 않았다. 그는 트렌트 종교회의(Council of Trent, 1545~1563년)에서 시작된 가톨릭 종교개혁과 발을 맞춰, 성서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발견한 보편적인 진리를 자기 나름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성서 그림이 아직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도, 우리도,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필요한 등불이 되는 진리를 찾아 진실로 추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진리를 향해 걸어가는 그만의 파란만장하고 유일무이한 흔적을 발견한다. 그의 그림이 감동적인 이유는, 그가 이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그 인물과 하나가 되었다. 특히 예수의 수난과 자신의 수난을 비교하여, 메시아의 수난을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통해 이해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이 성서 그림에서 신의 존엄성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그렸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신이 아니라 진정한 보통 인간, 인간의 원형이다. 복음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중요한 장면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거룩한 이야기와 우리와 같은 인간이 겪는 이야기는 하나다. 그는 자신이 성서를 읽으면서 깨달은 새로운 진리를 ‘창조’하였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보는 신자로 하여금, 그림에서 묘사된 장면이 자신의 삶에 실제로 일어날 수 사건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성서 이야기는 언제나 현재 사건이고 그 주인공은 그의 그림을 보는 ‘우리’다.

     

카라바조가 화폭에 재현한 그림은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일상의 재구성이다, 그는 일상만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진리의 보편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그리스도 이야기는 우리도 잘 알지 못하는 영성이 담긴 감정을 건드려, 인생의 의미를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편의 비극작품이다. 그는 물론 미켈란젤로와 같은 화가의 화법을 수용하였지만, 자산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표현하기 자신만의 화법을 대담하게 발전시켰다. 그의 성화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로마의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실제였다.

     

로마주교인 마시모 마시미는 <요한복음> 19장 5절에 등장하는 장면을 그려달라고 카라바조에게 주문하였다. 주교는 카라바조의 적나라하게 세속적인 이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고 2년후 치골리Cigoli(1559-1613)라는 화가에게 다시 주문하여 숭고하고 전통적인 그림을 받았다. 이 그림은 현재 피렌체에 있는 팔라티나 미술관에 소장중이다.

     

카라바조의 <에케 호모> 그림은 로마총독 빌라도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은 예수를 군중에게 “자 보시오, 이 사람이오!”이라고 외치면 소개하는 장면이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19장 5절에 등장한다: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나왔다,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말했다. ”자, 보시오, 이 사람이오!“ 당시 가톨릭 교회가 읽었던 라틴어 성경번역으로 이 문구기 라틴어로 에케 호모ecco homo다. 자화자찬으로 가득한 철학자 니체의 마지막 책의 제목도 <에케 호모>다.

     

이 그림의 하단에 가로로 구분된 난간이 있다. 이것은 당시 베네치아 화가들이 고안한 장치다. 인물들이 마치 무대나 제단 위에 등장한 것처럼 보여,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 그림을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난간에 세 명이 등장한다. 왼편에 어둠으로부터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온 그리스도, 그에게 폭력을 가한 후에, 왕홀 대신 막대기를 들게 하고 왕을 상징하는 자주색 옷을 입히며 조롱하는 대중, 그리고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발뺌하는 빌라도다. 이들은 각각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그리고 더 악한 위선적인 인간의 상징이다.

     

그리스도는 가만히 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통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머리는 가시면류관에 찍혀 이마에는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 고통으로 얼굴이 붉은 빛으로 상기되어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이고 눈을 감는다. 자신이 짊어 져여할 십자가를 피하고 싶지만, 그것이 운명이라면 기꺼이 질 심산이다. 그의 얼굴에는 그런 당혹감이 스며있다. 자신에게 다가올 끔찍한 십자가처형과 신과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상실감에 휩쌓여 있다. 오른쪽 감긴 눈에서 그렁그렁한 눈물이 스믈스믈 나오기 시작한다. 폭동들의 구타로 아랫입술이 부풀려졌다. 그의 가슴 위쪽에, 구타로 인한 멍이 남아 있다. 허리춤에 겨울 걸친 주름진 하얀 천 앞에 두 손이, 자신이 매달린 십자가 X형으로 포개져 묶여있다. 그의 오른 손엔 자신이 구타당한 대나무가 끼워져있다. 대나무의 끝은 너널너덜하다. 폭동들이 얼마나 심하게 그를 매질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런 구타를 막느라고 그의 오른손 엄지 손톱이 반쯤 깨져나갔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몸에 비하여 어둡지만 신의 뜻을 기꺼이 따르겠다는 완벽한 승복의 표시로 체념과 승복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 그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즉 메시아가 인간을 위해 대신 고통을 감내한다는 예언을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 세 사람 앞에는 예수를 죽이라고 고함치는 군중들이 있다. 이 군중들의 거세게 날뛰는 감정을 빌라도와 그의 부하의 모습에 여실히 드러난다. 자신들에게 기적을 통해 빵이라는 민생지원금을 주지 않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가르침을 준 예수는 죽어 마땅하다. 빌라도는 로마 총독의 옷을 입지 않았다. 그는 16세기 당시 로마 재판관의 옷을 입고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과는 정반대로 검은색 옷을 입어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올려 군중들에게 “자, 보시오, 이 사람이오!” 라고 외친 후, 군중들의 반응을 살핀다. 전형적인 위선자의 모습이다. 빌라도는 눈썹을 찌푸려 이마엔 셀수 없는 주름이 생겼다. 그의 음흉한 얼굴과 엉클어진 수염은 진리보다는 대중의 입맛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타락한 대중선동가 정치인의 모습이다. 빌라도는 그리스도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죄가 없다고 확신했지만, 그와 같은 정치인에겐, 진리는 양심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기분에 따라 변덕을 부리는 민심이다. 군중을 상징한 인물이 그리스도와 빌라도 사이에 묘사되어있다. 그는 그리스도 뒤에서 그를 바라보면서,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히고 있다. 그는 약간 벌려진 입으로 ‘네가 정말 신 아들인가!’라고 그리스도의 귀에 속삭이면서 조롱하고 있다. 카라바조는 지금까지 빌라도와 같은 로마의 주교와 귀족의 눈치만 보고, 이 가운데 인물처럼 살아왔다.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고요하게 수용하는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는가를 묵상하는 그림을 그렸다. 나는 과연 어떤 부류의 인간인가?

     

그림

<에케 호모>

카라바조

유화, 1605, 128 × 103cm

제노아, 팔라초 로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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