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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11.(月曜日, 233/365, 警句默想) “파르데스와 콰드리가”

2025.8.11.(月曜日, 233/365, 警句默想) “파르데스와 콰드리가”

     

*<시편> 31편 23-24

אֶֽהֱב֥וּ אֶת־יְהוָ֗ה כָּֽל־חֲסִ֫ידָ֥יו אֱ֭מוּנִים נֹצֵ֣ר יְהוָ֑ה וּמְשַׁלֵּ֥ם עַל־יֶ֝֗תֶר עֹשֵׂ֥ה גַאֲוָֽה׃

חִ֭זְקוּ וְיַאֲמֵ֣ץ לְבַבְכֶ֑ם כָּל־הַ֝מְיַחֲלִ֗ים לַיהוָֽה׃

“생명을 만드신 야훼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여,

야훼가 깃든 자연의 만물을, 남녀가 사랑하듯 사랑하라!

야훼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지키시는 분이다.

그는 자신이 자연 안에서 모든 생물은 연결된

생명의 일부란 사실을 몰라 교만한 사람들이 있다.

야훼는 반드시 그런 사람들에게 그 댓가를 치루게 해주신다.

야훼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아!

실망하지 말고 스스로 용기를 내어라,

야훼께서 너희들의 심장을 담대하게 만들어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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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는 읽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경전의 구절이다. 오늘 이 구절을 읽고 또 읽으면, 구절은 나에게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길을 이 순간에 제시해준다. 나는 성서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지금까지는 초기 유대인들인 고안해내고 조하르와 같은 유대신비주의자들이 완성한 유대성서주석방식인 Pardes와 초대 교부인 필로, 오리엔, 성 어거스틴이 시작하여 존 카시안이 완성한 소위 Quadriga를 신봉하고 사용해왔다.

     

유대인들의 성서해석방법인 페르데스Pardes는 아람어로 ‘천국’이라는 의미지만, 이 단어를 구성하는 자음 네 글자는 해석방법을 알려주는 기호다. P는 페사트peshat, 즉 그 구절의 역사적인 정보를 담은 드러난 평범한 의미이고, R는 레메즈remez. 즉 성서의 다른 구절과 비교하여 그 의미를 찾아내는 은유적인 의미이고, D는 다라쉬darash, 구절에 담긴 의미를 깊이 공부하여 도덕적인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고, S는 소드sod로, 그 구절이 담은 비밀이다. 초기 유대학자들의 구축한 이 해석방법은 후에 유대신비주의자들인 카발라주의자들에게 의해 ‘생명나무’란 표상으로 완성하였다.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파르데스를 알았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경전은 오래된 약속, 자신의 경전을 새로운 약속으로 여기고, 나름대로 주석방법을 도출하였다. 그들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구절에 적용시켰고, 그 네 단계를 Quadriga라고 불렀다. 콰드리가는 축자적으로는 네 필의 말이 끄는 로마황제가 타는 전차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에 가면 궁궐 위에 조각된 황금마차의 이름이다. 콰드리quadri 즉 ‘네 필의 말’아 하나로 엮어져 ‘이가’, 지상에서 달리지만 에스겔이 탄 승천하는 마르까바marqabah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전차다. ‘이가’는 우리가 아는 ‘요가’와 같은 어원으로 네 필의 말을 하나로 묶은 연습이기도 하다.

     

바울시대에 살았던 1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가 유대인들의 토라와 그리스철학을 하나로 융합하여 콰드리가의 근간을 만들었고 2세기 오리겐Origen은 성경을 인간의 신체와 비유하여 육체, 정신, 영혼으로 구분하여 구절이 담긴 세 가지 해석를 제안하였다. 4세기 어거스틴은 시편을 번역하면서 성경해석을 로마황제의 전차와 비교하여 콰드리가의 얼개를 제시하였고. 그 후에 5세기 루마니아의 은둔수사 존 카시안이 콰드리가 성서주석방법을 정착시켰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서주석을 그리스도교의 최고의 업적으로 꽃을 피웠지만, 개신교에서는 이 방법이 사제 중심이었기 때문에 무시하여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독일어, 불어, 영어, 한국어로 번역된 성서를 기초로 개신교전통을 구축하였다.

     

콰드리가는 다음 넷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그 본문의 역사적이며 축자적인 의미. 축자적인 의미라고 해서 읽는 사람이 마음대로 읽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문의 기록된 역사적인 배경을 공부해야한다. 한국의 이단들은 이 역서적인 배경조차 무시하고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몇몇 성경구절과 연결하여 해석한다. 그것은 연목구어식이며 아전인수적인 해석으로, 한마디로 그들의 성서해석은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는 이들에게 <마태복음> 18.6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낫다.” 교주들이 만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대한민국 사교집단에서는 경전으로 사용되고 읽히고 있다. 둘째는 그 본문의 은유적인 의미로, 그리스도와 교회와 연관된 의미를 축출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도덕적인 의미로, 신자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교인들의 삶인지 알려준다. 네 번째는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후에 천국에서 받을 보상과 지옥에서 받은 형벌을 제시한다. 파르데스와 콰드리가의 성서해석전통을 고수해 온 내가 시골에 살면서 자연을 묵상하다보니 새로운 해석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 방법으로 성서를 다시 읽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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