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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19. (日曜日) “밤송이”

2023.3.19. (日曜日) “밤송이”

뒷마당과 연결된 야산에는 밤나무, 잣나무, 소나무, 전나무로 가득 차 있다. 이른 아침은 아직 제법 춥지만, 반려견들과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가파른 비탈길을 몇 분 만 올라도, 무엇가에 억눌린 답답한 심장이 편안해지고, 경직된 근육과 뼈 마디마디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요즘은 하루라도 등산을 않하면 퇴화되는 느낌이다. 반려견들은 고라니가 태곳적부터 남긴 야산 중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추적한다. 가시덤불 숲도 마다하지 않고 마두 들어간다. 올해 아침 산책용으로 산 겨울 유니클로 패딩이 나뭇 가시에 찔려, 이리저리 찢어지고 숨들이 안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언제나 미지의 장소다. 반려견들을 묶어 놓고 나도 숲 잎과 나뭇가지로 수북이 덮인 산등성에 누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밤나무 아래였다. 그 누구도 응시해본 적이 없는 에덴동산의 나무다. 무한한 하늘을 응시하니 앙상한 가지만 보인다. 놀랍게도 아직도 작년 겨울에 낙하하지 못한 밤송이들이 나뭇가지에 매 달려있다. 저 밤송이들은, 겨울 내내, 봄이와도 가지에 붙어 있기로 작정했나 보다. 그때 낙하하여, 동물들의 간식이 되거나, 밤나무의 거름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밤송이들은, 성급하게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 저 높은 가지에 머무르는 것이 좋았나 보다. 나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 서 있다. 계절의 순환을 따르기도 하고 거스리기도 하고, 이 모든 자연의 섭리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지난 가을 칠레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4)가 Ode To a Chestnut on the Ground (땅위 밤송이를 위한 노래땅에 떨어진 밤송이)를 감상한 적이 있다. 네루다는 밤송이를 이렇게 노래했다:

“뻣뻣한 잎사귀에서

당신은

나무 꼭대기에서 방금 태어난

바이올린처럼,

완벽하고 세련된 나무인 빛나는 마호가니입니다.

당신의 낙하는 은닉된 달콤함을 간직한

봉인된 선물들을 선사합니다.

그것들은 새와 나뭇잎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자라났습니다.

나무와 분말과 유사한 아름다움의 전형이며

달걀모양으로 악기로

그 안에 본연의 기쁨과 먹을 수 있는 장미를 지녔습니다.

당신은 저 높은 곳에서

밤나무의 빛으로

자신의 가시를 갈라놓은

그 성게의 껍질을 버렸습니다.

그 절단을 통해

당신은 세상을 힐끗 보았고

새들은

놀라 음절로 놀라는 소리를 내고

당신 아래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슬이 맺히고,

소년과 소녀의 머리들은

쉴새 없이 꿈틀거리며

안개도 계속 피어오릅니다.

당신은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오, 밤이여! 그리고 땅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당신은 반짝반짝 빛나고 의연하고

견고하며 부드럽습니다.

마치 아메리카대륙의 작은 가슴처럼 생긴 섬과 같습니다.

당신은 떨어져

땅에 쳐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풀잎은 아직 곁에서 떨고 있고, 그 오래된

밤은 숲속 나무들에게

입을 벌려 한숨 짓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유일한

씨앗.

밤나무, 가을, 땅,

물, 높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침묵이

보석, 분말의 농도의 준비하였습니다.

땅에 매장된 어머니의 눈꺼풀은

높은 장소,

간결한 나뭇잎의 위용,

새로운 뿌리의 어두운 축축한 계획,

이 땅에 오래되고 새로운 차원의

또 다른 밤나무를 향해 열릴 것입니다.”

아직도 밤나무에 달린 밤송이들의 심정은 무엇인가? 자신이 그렇게 붙어있는지를 궁금해하며 자신을 응시하는 나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하여, 심지어 자연의 섭리인 계절을 거슬려, 그냥 그렇게 붙어있어도 좋다. 자신이 정한 운명만이 진실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온전한 사람이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다. 온전히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자는, 자연을 거슬려도, 그 자체가 우주의 문법이 된다. 그 문법이란,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경이로움이자 신비다. 야산에 누워 아직도 힘겹게 달려있는, 아니 나를 아랑곳하지 않는 밤송이는, 자신 뒤로 보이는 무한한 하늘을 내게 보여주었다.

사진

<가평 야산 밤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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