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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2.(月曜日) “동생”

[사진]

<수메르어, 에티오피아어, 산스크리트어, 아카드어 어휘 암기 박스>

1988년 9월, 1989년 3월

 

35년 전에 미국에서 만난 동생이 갑자기 화요단테 수업에 왔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함께 보낸 동생이다. 내가 미국 유학을 시작할 시점, 그는 시카고에서 온 한인이었다. 이름은 Jay Park이다. 그의 가족은 미국 시카고로 오래전에 이민을 가서, 자리를 잡았다. 제이는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에 종교학을 전공하기 위해 왔다. 학부시절 미식축구선수였던 그는 등치가 좋다. 하루에 2-3시간을 반드시 체육관에서 보냈다. 나보다 네 살 어려, 지금은 오십대 후반을 접어든 중년이지만, 그 당시 우리는 혈기왕성한 20대였다. 우리가 저지른 만행을 열거하자면, 퇴학감이다.


제이는 경제학을 전공한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종교학을 공부하게 결심한 신기한 친구다. 우리는 인생에 해야 할 그 성배聖杯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맸다. 힐레스라는 도서관으로 매일 출근하자고 약속했다. 힐레스 도서관은 기숙사에서 30분정도 걸어야 갈수 있는 장소다. 법대를 거쳐 Stoked Pizza에서 들러 피자 한조각과 코크를 브라운 백에 넣고 힐레스 도서관으로 향했다. 힐레스는 원래는 여학생들을 위한 학교였다. 도서관이 널찍하고 윤기가 나는 나무바닥 위에 베이지 색 카펫이 깔린 고요한 도서관이다. 내 유학시절 반은 이 도서관에서 나머지 반은 학교 안에 있는 와이드너 도서관의 조그만 미닫이 창문이 딸린 5층 구석자리에 있는 개인 독서석이다.


제이와 나는 무거운 교재들과 사전이 든 가방을 메고, 무조건 힐레스 도서관으로 갔다. 뭐가 그린 신났는지, 즐거웠다. 나는 그 때, 미래 지도교수가 될 휴너가르드 교수의 아카드어를 듣고 있었다. 제이는 그런 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카드어는 바빌로니아 제국의 언어로 기원전 23세기에 등장하였다가 기원전 3세기경 자취를 감춘 쐐기문자다. 길가메시 서사시나 함무라비 법전이 이 언어로 기록되어있다. 제이가 나에게 묻는다. “형, 왜 아카드어 공부하세요? 미친 사람 아니죠?”


그의 당돌하고 당황스런 질문에 나는 침묵했다. 나도 왜 그 언어를 공부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공부’라는 찬란하고 거룩한 신전에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아카드어가 신기한 언어이기 때문에 택했다. 무엇인가 전적으로 몰입할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카드어를 택한 것뿐이다. 제이는 내가 무슨 커다란 계획이 있어, 이 ‘외계어’를 배운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걷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몰라. 네가 좀 알려줘! 영어도 서투른 내가, 박사과정 학생들 사이에서 이 언어를 택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해!” 그리고 우리를 서로의 얼굴을 보며 낄낄 웃었다.


그러던 나는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였다. 셈족어 뿐만 아니라 인도유럽어 언어들이 탐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완성자인 다리우스 대왕이 이란 비시툰 산에 남긴 삼중 쐐기문자 비문인 ‘비시툰 비문’에 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비문은 이 세상의 어떤 언어하고도 연관이 없는 엘람어 쐐기문자, 셈족어인 아카드어, 그리고 이란어인 고대 페르시아어 쐐기문자로 산 절벽에 새겨져 있는 비문이다. 1980년대 말부터 이란 비시툰산Mt. Bisitun에 드나들면서 이란 정부의 허가를 받아, 가파른 절벽을 기어올라 사진을 찍고, 2500년이란 세월에 마모된 부분을 추측하게 채워 넣기 위해, 비교사전을 만들어 전체를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어느 날 제이도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는 동아시아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러시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미친 여정을 시작하였다. 동아시아 경제사상사를 전공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에 유학하며 각각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일본 동경대학, 중국 북경대학, 그리고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에서 모두 6년 동안 각문화의 사상을 섭렵하였다. 지금은 모 굴지의 기업에서 이 지역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먼저 들어가 교두보를 놓는 작업을 한다.


그런 제이가 오늘 나를 찾아와 단테수업을 듣고 있다. 단테 <인페르노> 11곡,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서 하부지옥의 구조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제이가 내가 배분한 단테 교재를 실수로 두고 있다. 내가 들쳐보니, 강의 내용을 빼곡히 적고 자기 의견도 썼다. 그는 어디에서든지 변모하고 변신할 인물이다. 수업을 마친 후, 제이가 나에게 말한다. “형, 고전어 단어 외우던 빨간 박스 아직도 가지고 있어! 나 그거보고 언어공부 시작했어!” 그의 방문은 내가 35년전 공부를 시작했을 때, 아련하지만 강력한 기운을 상기시켰다.


집에 돌아와 창고에 있는 빨간 박스를 찾아보았다. 고전어를 배우는 동안 버리지 않아 박스가 89개나 된다. <1000 BLANK WHITE CARDS: COURSE NOTE KIT>라는 것으로 미국에서는 외국어를 배우는데 최적화된 학습도움이다. 세로 3.8cm 가로 8.89cm로 한 면엔 고전어 단어를 써 놓고 다른 면엔 그 의미를 적었다. 예들 들어 한 면엔 수메르어 쐐기문자 𒆬을 뜨고 뒷면에 발음 ‘쿡’KUG과 의미 ‘white; brilliant'를 쓴다. KUG을 보고 수메르어 𒆬를 쓸 수 있어야한다. 한 고전에 세 박스, 즉 3000단어 정도를 암기하면 중급정도 고전어 문장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몇 개 꺼내 아이폰에 담았다.


제이가 한국기업을 위해 이전에도 그랬지만 더 큰 일을 하기를 바란다. 나도 이 ‘빨간 박스’를 다시 꺼내, 녹슬었던 고전어 감각을 다시 되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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