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1. (月曜日) “우룩𒀕𒆠”

사진

<우룩 수메르 토판문서>

(맥주를 임금으로 주는 신전 영수증)

우룩 III 시대 (기원전 3200-3100년)

런던 영국박물관

2022.3.21. (月曜日) “우룩𒀕𒆠”

인간의 등극과 문명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몇 가지 행위가 있다. 불의 발견, 동물의 사육, 노동의 분화 그리고 문자다. 문자란 지식을 수용하고 소통하고 기록하기 위한 소통의 체계다. 인간은 까마득한 시절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말은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순간 영원히 사라지고, 그 대신 상대방의 기억 속에 불완전한 생각의 조각으로 남아 있다가 점점 잊혀져 버린다. 문자는 인간의 말을 영원하게 만드는 첫 번째 기술이다. 이 기술로 인간은 문명을 구가했다.

문자는 소통의 혁명이다. 예를 들어 편지는 소통의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편지의 내용을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문자가 기록된 문헌은 정보를 축적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도서관에 소장된 책들은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람의 기록한 정보들을 책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관하는 장소다. 이런 정보 축적은 개인이 모을 수 있는 정보의 한계를 초월할 뿐만 아니라 그 정보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유용하다.

이전에는 구전(口傳)에 의존하던 이야기들, 예를 들어 신화·전설도 역사로 기록함으로써 소위 ‘역사’ 시대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개인 간의 소통이 빈번해지게 되자 서로에 대한 정확하고 정교한 거래가 문자로 기록됐다. 이제 문자로 기록된 상업과 행정 기록 없이 인간 문명은 불가능하다. 문자는 인간의 생각을 분류하고 검증하고 수정하고 증명하면서 논리의 엄격함과 생각의 심오함을 더해줬다.

인간이 문명사회를 이루기 위해 근간이 되는 문자는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어디에서 처음 등장시켰는가? 학자들은, 문자는 기원전 3300년경 오늘날 이라크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됐고, 그 후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엘람(고대 이란), 그리고 기원전 2600년경 인도 도시인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로 전파됐다고 가정한다. 그 후 중국과 남미에서 독립적으로 문자들이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문자와 남미의 아스텍 문명 문자의 기원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문자는 누가 의도를 가지고 창제했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훈민정음이나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고대 페르시아어는 그 문자를 창제한 당사자를 아는 유일한 문자들이다. 그러나 그 외 모든 문자의 기원은 어두운 베일에 싸여 있다. 먼저 문자의 기원에 대한 신화들을 알아보자.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물질을 축적해 고고학과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다른 지역의 문화를 경험하기 전, 그들이 알고 있는 신화와 경전을 통해 문자의 기원을 상상했다. 문헌에 기록된 문자의 발명에 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수메르 서사시 [엔메르카르와 아랏타의 주인]이다. 이 서사시는 메소포타미아 도시 우룩-쿨라바의 통치자인 엔메르카르(Enmerkar)가 주변 도시국가 아랏타(Aratta)의 통치자에게 사신을 보내면서 시작된다. 엔메르카르는 아랏타의 통치자에게 풍요의 여신이며 샛별 여신인 ‘인안나(Inanna)’를 위한 신전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백향나무·금·은·청금석과 그 외 다른 보석들을 요구한다. 엔메르카르는 인안나 여신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통치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여겼다. 이때 두 통치자는 사신들을 통해 서로의 답신을 여러 번 주고받는다.

어느 날 엔메르카르의 주문이 사신이 암기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러자 엔메르카르는 문자를 창제해 자신의 말을 토판문서에 쐐기문자로 기록했다. 메소포타미아에는 이집트처럼 돌이 없다. 수십만 년 전부터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아라랏(Ararat) 산 수메르 지역으로 흘러 내려와 침적토를 쌓았다. 수메르인들은 이 침적토를 손바닥 크기로 다져 토판문서를 만들고, 갈대 가지를 뾰족하게 한 뒤 그 끝으로 진흙 표면을 긁어 문자를 기록했다. 생김새가 마치 못과 같아 학자들은 이 문자를 ‘쐐기문자’라 부른다. 엔메르카르의 사신은 자신의 입이 “너무 무거워” 아랏타 통치자의 말을 반복할 수 없다고 엔메르카르에게 말한다. 사신은 자신의 입에 들어갈 수 있는 말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엔메르카르는 진흙을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고 그 토판문서 위에 자신이 한 말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것이 수메르인들이 전하는 문자의 기원에 관한 최초의 서사시 내용이다. 후대 바빌론 시대 수메르 왕들의 연대를 기록한 [수메르 왕조실록](기원전 1800년)에 의하면 엔메르카르는 기원전 2700년에 살았다. 그때는 이미 문자가 600년 이상 사용되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엔메르카르와 아랏타의 주인]은 문자의 창제에 대한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묘사가 아니다.

문자의 기원에 관한 두 번째 수메르 신화는 [인안나와 엔키, 에리두에서 우룩으로 문명의 전달]이라는 시다. 수메르 전설에 따르면 에리두는 하늘의 왕권이 내려온 최초의 도시다. 그러나 수메르 문명은 우룩에서 완성됐다. 이 시는 문명이 어떻게 우룩에서 완성됐는지를 보여준다. 이 시에 의하면 지혜의 신이며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관장하는 신(神) 엔키(Enki)는 인간 문명의 근간들을 창조했다. 인안나 여신이 자신의 도시인 우룩을 위해 문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략을 꾸민다. 인안나는 엔키를 술에 취하게 만들고 취중에 문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자신에게 넘기도록 한다. 이 부분을 기록한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지자 엔키가 선포한다.

‘오, 나의 권력의 ‘메’들이여, 나의 권력의 ‘메’들이여,

나는 나의 딸 눈부신 인안나에게 이 이름들(문명의 기술들)을 선사한다.

나무를 다루는 예술,

금속을 다루는 예술,

문자·도구를 만드는 기술,

가죽을 만드는 기술,

건물을 만드는 기술,

그리고 바구니를 만드는 기술이다.”

여기서 기술이라고 번역한 수메르어 단어는 ‘메’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구가한 수메르 문명을 푸는 열쇠가 바로 ‘메’(me)다. ‘메’는 그림문자에서 땅을 의미하는 가로 평행선과 하늘의 원칙을 의미하는 세로 직선이 결합돼 만들어졌다. 지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자신의 고유 임무가 있고, 수메르인들은 그것을 ‘메’라고 불렀다. 가로선과 그 위 세로선이 결합해 만들어진 그림문자 ‘메’는 기원전 2600년경 90도 오른쪽으로 돌려져 지금의 쐐기문자 ‘메’가 됐다. ‘메’는 문명을 구축하는 국가 조직, 종교의례, 기술, 도덕, 인간 개인의 품성과 개성을 총괄하는 거대한 원칙이다.

“그러자 순결한 인안나는 이 모든 메를 자신의 것으로 취했다.” 인안나는 문자와 다른 문명의 기술들을 ‘천상의 배’에 싣고 자신이 주신으로 있는 우룩으로 내려온다. 엔키는 술에서 깨어나 자신의 모든 기술들이 탈취된 사실을 알게 되자 폭풍우와 바다 괴물들을 보내 인안나의 배가 우룩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인안나는 이 괴물들을 물리치고 도시에 도착해 이 문명의 이기들을 우룩 시민들을 위해 하역한다. 우룩은 명실공이 인류 최초의 문명이 꽃핀 도시다. 기원전 3300년경에 해당하는 우룩 지층 ‘우룩 IV’에서 최초의 그림문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룩의 전성기인 기원전 2900년에는 가로세로 6㎞ 정도 크기에 5만~8만 명이 거주하는 초기 도시다. 도시는 문자라는 소통이 만들어낸 추상적이며 한정적인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