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1.12.31.(金曜日) “기러기”

사진

<기러기>

2021.12.31.(金曜日) “기러기”

시간은 눈으로 볼 수 없다. 한참 지나간 후에나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책상에 떨어진 잉크자국, 다 헤진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밑창이 덜렁거리는 등산화, 거울에 비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그 때는 몰랐는데, 지나가니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자국으로 보여주는 시간은 우주의 주인이자 인간 운명의 결정자다.

공간은 시간이 낳은 자식이다. <창세기>의 시작은 “태초에 신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다”가 아니라, “신은 태초라는 시간을 통해,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로 번역해야한다. 공간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 가시적인 표현이다. 그 공간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희미해지다, 없음으로 변한다.

시간에는 양적으로 셀 수 있는 시간과 셀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이 셀 수 없는 시간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순간으로 이루어진 기적들이다. 겨울내개 죽은 줄만 알았던 잡초가 거칠고 차가운 땅을 뚫고 나와 싹을 내는 기적의 순간. 꽁꽁 언 연못의 얼음 밑에 죽은 줄만 알았던 금붕어를 구해내, 천천히 물을 뿌려주니, 터득거리며 다시 살아나는 환희,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사랑하는 이의 전화를 받고 목소리를 들을 때의 희열, 만물을 추위와 어둠으로 삼켜버린 밤이 새벽녘 저 땅거미에서 희미하게 비추기 시작한 여명의 순간, 이 순간은, 양적인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이다.

오늘도 저 멀리 야생조류가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간다. 마치 시간처럼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날아간다. 자신들이 가야할 곳을 향해, 한눈을 팔지 않고 비행한다. 그렇게 가는 2021년을 가만히 돌아본다. 만감을 정리할 수 없어, 올해 읽었던 가장 감동적인 시인 미국 시인 매리 올리버Mary Oliver(1935-2019)의 <기러기>로 마음을 달래고 싶다.


Wild Geese

기러기

(1935년 9월 10)

You do not have to be good.

You do not have to walk on your knees

for a hundred miles through the desert repenting.

You only have to let the soft animal of your body love what it loves.

“당신이 그렇게 착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사막에서 참회하면서 수백마일을

무릎을 꿇고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몸뚱이라는 부드러운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기만하면 됩니다.”

Tell me about despair, yours,

and I will tell you mine.

Meanwhile the world goes on.

Meanwhile the sun and the clear pebbles of the rain

are moving across the landscapes,

over the prairies and the deep trees,

the mountains and the rivers.

Meanwhile the wild geese, high in the clean blue air,

are heading home again.

“절망에 대해 저에게 말해 보십시오. 당신의 절망을.

그러면 저도 제 절망을 당신에게 말하겠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과 같은 빗방울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갑니다.

평원과 울창한 나무 위로

산과 강 너머로 움직입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저 맑고 푸른 공중에 높이 올라

자신의 집으로 갑니다.”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calls to you like the wild geese, harsh and exciting -

over and over announcing your place

in the family of things.

“당신이 누구든지, 당신이 얼마나 외롭던지,

세상은 당신의 상상대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기러기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고 외치고 있습니다.

반복에서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서

당신의 자리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2022년 새해엔, 우리 모두 이 기러기처럼, 각자가 자신이 가야할 곳을 찾아 조용히 비행하면 좋겠습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