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0.(月曜日, Dante) “지옥문地獄門” (<인페르노> 제3곡)

사진

<지옥문>

영국 시인-화가, 윌리엄 블레이크

1825

2021.12.20.(月曜日, Dante) “지옥문地獄門”

(<인페르노> 제3곡)

수사학은 설득의 예술이다. <인페르노> 2곡 마지막 부분에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의 비겁을 꾸짖는다. 그는 수사라는 예술을 통해 ‘비겁viltà’을 ‘대담과 솔직(ardire e franchezza)’ (122-123행)로 전화시켰다. 이 여정은 자유의지를 발견하고 발휘하는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여정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는 안내자와 순례자의 도덕적인 일치가 중요하다. 그래서 ‘둘이지만 하나로 여정을 떠났다’(Or va, ch’un sol volere è d’ambedue)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성금요일 저녁에 ‘지옥현관’애 도작한다. 지옥현관은 동시에 ‘신적인 정의의 현관’이기도 하다. 제3곡은 다음 셋으로 구분된다: 1. 지옥현관; 2. 비겁자들igvani; 3. 뱃사공 카론와 아케론강이다. 지옥현관은 ‘모누멘툼’monumentum이다. 이곳에 온자들에게 자신들이 저지른 일들을 상기시키주는 인과응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소이며 지옥이 어떤 장소인가를 웅장하고 엄하게 알려주는 장소다. 장례비문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식이며, 자신의 무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정작 죽은 자는 확인할 수 없는 허무다. 지옥현관 인방보에 새겨진 비문은 ‘시각적인 청각’으로 공감각적인 표현이다.

제3곡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문지방과 같은 시다. 지상에 살던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간절한 청원과 사랑으로, 그녀의 사랑하는 연인 단테가 지옥을 여행하게 된다. 단테의 안내자는 베르길리우스다. 제1곡과 2곡은 <신곡> 전체의 서문으로, 단테가 지옥을 여행하게 된 경위와 목적을 기술하였다. 제3곡이 지옥의 시작이다. 지옥은 강과 그 강을 지키는 괴물에 의해 표시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이라는 장소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통과해야 한다. 제3곡은 <신곡>에서 전개될 내용의 맨 처음들이 기록되어 있다. 지옥에 관한 첫 묘사, 지옥에 등장하는 첫 영혼들, 이들이 받는 첫 형벌들, 지옥에 있는 영혼들이 받는 형벌들의 ‘콘트라파소’라는 형식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도강시켜주는 첫 뱃사공 카론, 그리고 지옥의 수호자들이 단테를 대하는 방식 등이다.

단테가 길을 잃은 후 세 짐승이 등장하여 길을 막던 제1곡 후에,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하여 단테를 인도한다. 단테는 지옥에 가본 적이 있는 베르길리우스와 지옥으로 들어가는 성문에 서있다. 단테는 성문 위에 적힌 아홉 행 비문을 본다. 첫 번째 삼행은 <신곡>에서 가장 유명한 어구반복anaphora이 등장한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은 스스로 의인화하여, 자신의 인방보에 적힌 문구를 읽는다. “만일 당신이 나를 통해 간다면”per me si va를 반복한다.

1. “Per me si va ne la città dolente,

2. per me si va ne l'etterno dolore,

3. per me si va tra la perduta gente.

1. 나를 통해 사람들은 슬픔의 도시로 들어갑니다.

2. 나를 통해 사람들은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갑니다.

3. 나를 통해 사람들은 길을 잃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갑니다.

지옥도 도시처럼 구획되었다. 지옥은 슬픔으로 가득한 도시로, 고통이 끊이지 않고 시민들은 길을 잃었다. 단테가 사용한 도시 이미지는 자신이 경험한 지옥과 같은 지상도시 피렌체를 의미한다. 단테의 정치적 삶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그 결과 공동의 선에 해가 되는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첫 세 구절에 등장하는 어구반복 per me si va ne은 지옥문이 스스로 의인화하여 들어오는 자에게 경고하는 문구다. 천국에 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지옥문을 통과하여 자신 안에 숨어있는 괴물을 하나하나 인식하는 일이다.

지옥의 특징은 슬픔, 영원한 고통, 파멸된 사람들. 슬픔dolente은 자신이 흠모하는 것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이탈된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탈리어어 dolente의 어근인 인도유럽어*dehl-의 기본의미는 “-로부터 떨어져 나간; 찢겨진”이란 의미다.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는 열망을 잊고, 그것을 구체화하려고 묵상하지 않고, 그 결과 자신의 본모습과 본래 자신의 바람으로부터 이탈된 상태가 슬픔이다. 슬픔의 원인은 열망의 부재다.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이탈된 슬픔의 과정이 고착화되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상태로 진입한다. 그 상태를 “영원한 고통”이라고 말한다. 고통dolere도 ‘슬픔’이란 단어와 동일한 어근*dehl-에서 파생되었다. 슬픔은 자연스럽게 고통으로 변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임무나 열망을 깨닫지 못해, 슬픈 상태가 지속된다. 더 이상 자기 스스로 개선의 여지가 없는 절망적인 시간을 ‘영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1행의 ‘슬픔’이 지속되면 2행의 ‘영원한 고통’이 된다.

지옥은 슬픔에 지쳐 영원한 고통 안에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3행에서 ‘파멸된 인간들’la perduta gente이라고 부른다. ‘파멸된 인간’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모르거나, 주어진 임무를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낭비한 사람이다. 라틴어에 ‘페데레’perdere라는 동사가 있다. 이 동사 의미는 “없애다; 파괴하다; 잃어버리다; 낭비하다”이다. 라틴어 접두사 per라는 접두사는 ‘널리 흩어져 거의 보이지 않는’이란 의미도 ‘dere’는 인도유럽어 어근 *dhH2r에서 파생된 단어로 “우주의 질서에 맞게 적재적소에 두다”라는 뜻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람, 파멸된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깨닫지 못하고 이리저리 아무데나 자신의 힘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단테는 앞으로 만나게 될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길을 잃은 사람들’perduta gente는 신의 형상imago dei로 창조된 인간의 정반대다. 자신이 신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지도 인정하지도,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지도 않는 무지이자 게으름이며, 더 나아가 비겁이다. 신적인 인간은 ‘최선의 예술’ars in bono이고 짐승적인 인간은 ‘최악의 예술’ars in malo다. 길을 읽은 자들은, 지상에서 습관적으로 하던 언행을 지옥에서도 반복하고 그것을 벌을 받는다. 이것을 ‘콘트라파소’contrapasso, 즉 ‘인과응보’라고 부른다. 이 콘트라파소가 바로 신적인 ‘정의’다. 이 세 줄이 단테 <인페르노>의 진정한 시작이다.

이 지옥을 만든 자는 누구인가? 비문은 이어지는 삼행에서 그 장본인을 언급한다. 4절은 단테의 고유한 사상을 표시한다. ‘정의’가 창조주를 움직였다. 단테는 이 구절에서 자신이 신봉하던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 체계를 전복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ho ou kinoúmenon kineî 호 우 키노우메논 키네이’라고 정의하였다.중세 신학에서 신은 ‘부동不動의 동자動子’다. 중세신학에서 태초가 우주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존재하여, 만물을 생성시키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 신학체계에서는 신이 만물을 움직이는 원동력이기에, 그 어느 것도 신을 움직일 수 없다. 단테는 ‘정의’Giustizia라는 원칙이 “나의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il mio fattore보다 선재하는 개념이다. 신은 정의를 실현하는 분이다. 정의란 우주의 질서를 잡는 신의 원칙이다.

4. Giustizia mosse il mio alto fattore;

5. fecemi la divina podestate,

6. la somma sapïenza e 'l primo amore.

4. 정의가 저의 높으신 창조주를 움직이셨습니다.

5. 신적인 권능,

6. 가장 높은 지혜, 그리고 원초적인 사랑이 저를 만드셨습니다.

정의와 질서는 단테 신곡의 중요한 두 주제다. 신은 지옥을 만들어야만 했다. 인간들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심판하기 위해서 지옥은 있어야만 했고, 신은 그것을 만들었다. 그 신은 삼위일체의 신이다. 권능, 지혜, 그리고 사랑은 삼위일체의 각각 명칭이며 이들 모두 지옥을 만들기 위해 동원되었다. 먼저 성부 하느님인 ‘신의 권능’la divina podestate가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지옥을 만들었고, ‘지극히 높은 지혜’la somma sapienza는 파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죄를 구하기 위해 사람의 모양으로, 신의 아들인 예수로 지상에 내려왔으며, 지옥과 같은 지상에 살면서도 선한 사람을 보호하고 구원하기 위해 ‘원초적인 사랑’primo amore가 모두 합의하여 지옥을 만들었다. 단테는 지옥을 만든 신의 특징을 4-6행에 묘사하면서 ‘정의’giustizia로 시작하여 ‘사랑’amore로 마쳤다. 정의는 지옥을 만든 이유이지만, 정의의 내면에는 사랑이 스며있다. 그런 후, 지옥에 들어오는 자에 대한 경고다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7. Dinanzi a me non fuor cose create

8. se non etterne, e io etterno duro.

9. Lasciate ogne speranza, voi ch'entrate.”

7. 저 이전에, 어떤 것도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8. 만일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영원히 견딥니다.

9. 여기 들어오는 당신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리십시오.”

지옥이 창조되기 이전에 다른 영원한 것들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이것들은 하늘, 천사, 그리고 원초적인 물질이다. 지옥은 천사들, 원초적인 물질들, 그리고 하늘들이 창조된 후,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것들과 마찬가지로 지옥도 신의 정의와 사랑의 영원한 표식이다. 그리고 지옥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명령한다. Lasciate ogne speranza, voi ch'intrate “여기 들어오려는 너희들, 모든 희망을 버려라!” 혹은 학자들은 첫 단어 ‘라스키아테’lasciate를 직설현재완료로 해석하여 “여기 들어오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이미 버렸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단테는 신적인 정의와 형벌과의 관계를 중세 스콜라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사상으로 이해한다.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에는 책임과 그에 대항하는 상벌의 보복이 뒤따른다. 이들의 상관관계는 응과응보다. 죄는 ‘적적한 신적인 질서가 부족한 상태’actus debito ordine privatu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