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5. (水曜日) “완성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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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우렐리우스 흉상>

2021.12.15. (水曜日) “완성完成”

인간은 죽음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존재다. 동시에 인생의 경험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인격을 완성해 경험이란 인생기술을 통해 하루를 인생처럼 살수도 있다. 일찍이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Ἐγγὺς μὲν ἡ σὴ περὶ πάντων λήθη, ἐγγὺς δὲ ἡ πάντων περὶ σοῦ λήθη.

엥귀스 멘 헤 세 페리 판톤 레쎄, 엥귀스 데 헤 판톤 페리 수 레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모든 사람들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들도 당신을 잊어버릴 것이다.”

<명상록> VII.21

1800년 전에 이렇게 말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예언을 틀렸다. 아직도 내가 그의 <명상록>을 읽고, 필사하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발굴해 내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 사상가 르낭은 <명상록>을 ‘영원한 복음福音’이라고 명명하였다. <명상록>이 아직도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나의 정신을 일깨워, 변화를 추구하도록 독려하기 때문이다. 만일 복음이 맹목적인 믿음만 강요한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철지난 교리다. 나를 움직여, 삶에 희망과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삶의 양식이자 나침반이다.

연말이 되니, 인생은 연수가 아니라 일수도 구성되어있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떠올랐다. 하루는 내가 기획하여 그 성과를 가름할 수 있는 적당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지위, 숫자, 혹은 평가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루 동안 입을 통해 타인에게 한 말, 손, 발, 몸, 그리고 표정을 통해 타인에게 내보인 행동, 그리고 이 말과 행동을 준비하고 조련한 생각에 의해 결정된다. 그 사람의 생각, 말, 그리고 행위는, 그 날에 처음 행해진 즉흥적인 것 같으나, 깊이 생각해보는 습관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습관을 ‘에토스’ethos라고 불렀다. 에토스는 또한 그 사람이 항상 습관적으로 하는 언행의 총체인 ‘개성’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우스에게 하루는 그 인격을 수련하고 완성하는 장이다. 그는 인격완성의 표식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Τοῦτο ἔχει ἡ τελειότης τοῦ ἤθους,

τὸ πᾶσαν ἡμέραν ὡς τελευταίαν διεξάγειν

καὶ μήτε σφύζειν μήτε ναρκᾶν μήτε ὑποκρίνεσθαι.

투토 엑세이 헤 텔레이오테스 투 에쑤스

토 파산 헤메란 호스 텔레우타이안 디엑사게인

카이 멘테 스퓌쩨인 멘테 나르칸 멘테 휘포크리네싸이

“이것이 당신 개성의 완성입니다.

매일 매일을 당신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사십시오.

그 때, 부산을 떨지 말고, 게으름을 피지 않고,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척을 하지 마십시오.”

<명상록> VII.69.

아우렐리우스는, 다른 스토아철학자들처럼, 인간이 완벽해 질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철학자들의 가장 숭고한 목표인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매일 매일 자신이 상상한 자신의 최선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다. 완벽을 향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완벽이다. 그는 인격완성을 위한 구체적인 안을 내놓았다. 매일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사는 것이다. 그는 그럼 삶을 연습하는 사람들이 지켜야할 삶의 태도를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부산을 떨지 마십시오. 부산을 떨지 말라는 말은, 자신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광고하며, 자신만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아는 것처럼, 경고망동하지 말하는 충고다. 둘째, 게으름을 피지 말하는 말은, 자신이 그 날에 주어진 임무를 소홀하게 처리하지 말고, 완벽하게 처리라는 격려다. 셋째, 누구에게 척하지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 감동적인 일을 묵묵히 행하라는 명령이다.

나는 오늘 아침을 난생 첫 번째 날로 맞이했는가? 나는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로 여기고 행동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