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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를 건너는 유대인들>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1817-1900)
유화, 1891
개인 소장
2021.11.17. (水曜日) “응시凝視”
(<신곡: 지옥편> 제 1곡 22-27행, 원문번역과 해설)
단테는 자신이 경험한 지옥-연옥-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청중이나 독자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문학적 장치인 ‘직유直喩’를 사용한다. 직유는 은유와는 달리 비교하려는 두 가지를 ‘-처럼’, ‘-로서’ 혹은 ‘-보다’라는 단어를 직접 비교하여 설명한다. 은유隱喩는 그런 직접적인 언급 없이 넌지시 비교한다.
<신곡>에는 400개 직유가 있다. <지옥편> 제1곡 22-27행은 그 첫 번째 직유다. 난파된 배에서 생존한 선원들이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 직유는 ‘e come-' 즉 ’그리고 -와 같이‘로 시작한다.
22 E come quei che con lena affannata
23 uscito fuor del pelago a la riva
24 si volge a l’acqua perigliosa e guata,
22. 그는 마치 숨을 몰아쉬는 사람처럼
23. 바다로부터 해변으로 빠져나와
24. 몸을 돌려 위험한 바다를 공포에 떨며 응시하는 사람과 같다.
25 così l’animo mio, ch’ancor fuggiva,
26 si volse a retro a rimirar lo passo
27 che non lasciò già mai persona viva.
25. 나의 마음은 아직도 도망치고 있었다.
26. 다시 한번 뒤로 몸을 돌려 지나온 길을 묵상하였다.
27. 그곳은 어떤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
(해설)
단테는 이 직유의 얼개를 이스라엘 건국신화를 기록한 <출애굽기>와 베르길리우스의 로마건국신화인 <아이네아스>에서 가져왔다. 고대 이집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기원전 14세기경 이집트 아마르나Amarna라는 장소에서 발견된 아카드어로 기록된 토판문서에, 이들은 ‘아비루’abiru라고 불렸다. 아비루는 기원전 18세기부터 고대근동 전역에 떼를 지어 돌아다니던 집단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이 명칭은 히브리어로 ‘이브리’ibri라고 불렸다. 이브리는 ‘경계를 넘나들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바르’abar에서 유래하였다. 이들은 경제적인 혹은 사회적인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나들며 연명하던 자들이다.
기원전 13세기 초, 히브리들은 당시 최고의 부국이었던 이집트로 들어가 외국인 노동자로 일했다. 이집트는 당시 에게해에서 몰려온 ‘펠레세트’와 히브리인들의 진입을 막고 강력한 군사국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대규모 건설을 시작했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로 들어와 몸은 힘들었지만, 광야에서는 먹을 수 없는 다양한 음식을 즐겼다. 모세는 자신의 삶에 안주하고 탐닉하는 히브리인들 가운데 일부를 이끌고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였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 광야로 진입하여, 자신을 훈련시킬 것이다. 단테는 이제, 히브리민족을 이끌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모세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모세가 되어 광야 40년을 함께 경험할 참이다. 모세가 사람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자, 그들을 쫓던 파라오 병사들을 격퇴하기 위해, 지팡이를 든 손을 들고 그들을 모두 바다에 수장시킨다.
단테는 또한 로마제국을 건설한, 아이네아스이며, 이스라엘의 영웅인 다윗이다. 파선 당한 선원 직유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 I.180-181에 등장하는 카르타고 근처에서 파선 당한 아이네아스의 장면과 유사하다. 파선 직유는 <인페르노> 1,2곡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단테는 자신을 <신곡>이라는 서사시의 ‘새로운 아이네아스’다. 그는 65행에서는 자신을 새로운 ‘다윗’으로 소개한다
단테는 자신을 육체를 지닌 존재로 설명한다. 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마치 바다에 빠져 죽음을 경험하다 겨우 해변으로 빠져나온 사람처럼 자신을 묘사한다. 그는 과거를 상징하는 ‘바다’(pelago)에서 ‘해변’(riva)로 성공적으로 빠져나온다. 바다는 자신이 집어 삼킨 모든 것들을 부유하게 만든다. 바다는 바닥이 없어, 그 어떤 존재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할 수 없다.
히브리인들을 쫓아오던 이집트 전차들과 병사들이 홍해에 빠져 전멸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단테는 이 시점에 자신을 위험한 바다로부터 몸을 돌려 겨우 살아남아, 바다를 가만히 응시한다. 24행, 마지막에 등장하는 단어 ‘구아타’guata는 ‘가만히 보다; 응시하다’라는 뜻이다.
22. 그는 마치 숨을 몰아쉬는 사람처럼
23. 바다로부터 해변으로 빠져나와
24. 몸을 돌려 위험한 바다를 공포에 떨며 응시하는 사람과 같다.
단테는, 자신이 이 험한 바다에서 어떻게 살아나왔는지 정확하게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은 이 무시무시한 바다로부터 멀리 도망치려고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다시한번 몸을 돌려 바다를 응시하고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묵상하였다. 이때 단테가 사용한 동사는 ‘리미라르’rimirar다. 이 단어는 그 대상을 가만히 바랄 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깊이 생각하는 행위다. 단테는 이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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