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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5 (月曜日) “남용濫用”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 있다. 이 시험은 그 결과와 대가가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에게도 치명적이다. 그 사람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 가를 가만히 보면 된다. 그(녀)가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그런 자신의 개선을 최우선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 알량한 권력이 부를 남용하다 금방 사라질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남용하느냐 혹은 선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대중에 의해 다수결원칙으로 독배를 마신 후, 정치에 뜻을 접고, 교육에 헌신한다. 기원전 385년 서양에서 첫 번째 대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아카데미Academy가 건립되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아테네 사상가들을 훈련시켰다. 플라톤의 <국가>는 그의 사상을 집대성한 저서로 국가와 공동체, 그 안에서 생존하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인간의 인생교과서다.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된 <국가>의 파피루스가 이집트의 옥시륀쿠스Oxyrhynchus라는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이 문헌은 기원후 3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는 플라톤이 저술한 약 30개의 대화 글 들 중 하나다. 그의 글쓰기는 철학적 논증형식이 아니라 대화형식이다. 대화란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이성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전달하는 언어의 형식을 빌린 사적인 의견이다. 그 의견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말에 동의하거나, 혹은 첨가할 말이나 반박할 말, 혹은 더 낳은 제안을 건 낼 수 있다. 대화는 그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이 근거나 설득력이 부족하면, 그 즉시 수정하는 연습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로부터 ‘엔렌쿠스’enlenchus라는 ‘대화방법’을 배워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겼다. 그는 대화형식으로 상상 가능한 모든 철학적인 주제들, 예를 들어 지식의 본질, 진리의 근거, 사랑의 내용, 우정의 중요성을 다뤘다.

플라톤의 <국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 자신이 가진 소질을 최대한 신장하여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국가>는 10권으로 구성되어있다. <국가> 2권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형제들인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투스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이 후에는 플라톤과 아데이만투스가 대화한다. 이 대화 내용은 지난 2500년동안 서구 사회의 리더가 되려는 사람들의 묵상거리였다.

플라톤의 형제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해 대답한다. 그 대화 내용은 정의正義의 본질과 기원에 대한 문제다. 글라우콘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정의롭게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정의로운 행동을 하려는 이유는 자신들이 명성을 얻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하는 일엔 세 가지 종류의 가치가 있다.

첫 번째, 그 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가치가 내재한 것들이다. 소크라테스는 기쁨,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쾌락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든다. 이러한 것들은 다른 어떤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바로 목적이다.

두 번 째, 수단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돈이 가장 적절한 예다. 돈은 가치가 있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돈은 유용하고 선한 일에 사용하기 위해 존재한다. 또 다른 예는 군대다. 군대는 자신이 속한 국가를 다른 나라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군대가 목적이 된다면, 전쟁을 일삼는 악을 행하게 된다.

세 번째, 수단으로서 동시에 목적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건강, 배움, 지식은 수단이장 목적이 된다.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정의’는 이 세 가지 가치들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 묻는다.

글라우콘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알레고리로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면 그는 도덕적으로 행동한다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그가 비도덕적으로 행동하면, 그는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아무도 인식할 수 없고 나의 명성도 유지된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그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들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에게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를 가져다준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글라우콘은 이런 예를 알레고리로 설명한다.

글라우콘은 <국가>2권359b-360b에서 사람들 정의가 가치가 있어서 소중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행했을 때, 벌을 받는 것을 두려워 정의롭게 행동한다는 것을 비유로 설명한다.

“정의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불의한 행동이 가져올 벌이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 모두 자신의 ‘욕망’(헤 에피쑤미아)이 이끄는 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본성대로 정의롭게 행동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있고 불의를 행하는 불의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 목동이 소아시아에 있는 리디아의 왕을 위해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가 양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을 때,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져 구멍이 났습니다. 그 목동은 이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겨 그 동굴 아래로 내려가 진귀한 것을 발견합니다. 가운데가 비어있는 청동으로 만든 말이 있었습니다. 그 안을 살펴보니 시체가 하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큰 사람입니다. 그는 아무런 옷을 입지 않았지만 손가락엔 금반지가 끼고 있었습니다. 목동은 그 반지를 빼 자신의 손에 끼고 동굴을 나왔습니다.

그 목동은 가축의 상태를 왕에게 보고하는 월례모임에 참가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왕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그가 앉아있는 동안, 우연의 금반지에 있는 고리를 손안으로 돌리니 자신이 몸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그를 볼 수 없어, 사라진 목동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목동을 돌아다니다가 반지 고리를 이번엔 바깥쪽으로 돌리니 그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반지를 안으로 돌리면 사라지고 바깥으로 돌리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당장 자신이 왕의 사신이 되도록 변장하여 왕의 아내를 유혹하고 왕비의 도움으로 왕을 살해하고 자신이 왕이 됩니다.”

글라우콘이 말한 <기게스의 반지>라는 알레고리는 <국가> 7권에 등장하는 ‘동굴의 비유’ 그리고 10권에 등장하는 <팜필리아인 어의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는 ‘동굴의 비유’에 등장하는 참된 빛을 찾아 동굴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와 정반대이야기다. ‘기게스의 반지’에 등장한 목동은 대부분의 시간을 산골에서 보내며 도시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의무가 부여된 인간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고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으로 나가는 도덕적 의무가 있는 깨어있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양떼를 치던 장소에서 우연이 지진이 일어나 지하 동굴로 내려간 범부다. 그는 갈라진 틈으로 생긴 동굴로 호기심 때문에 들어간다.

목동은 동굴 안에서 ‘신기한 것들’(싸우마산타thaumasanta)를 발견한다. 그 곳에서 그는 말을 발견한다. 그 말은 커다란 사람을 자신의 배안에 넣을 정도로 큰 동물이다. 플라톤에게 말은 인간의 두가지 영혼을 지칭하는 상징이다. 플라톤의 다른 저작 <파이두루스>에 날개달린 전차가 등장한다. 이 전차에 등장하는 두필의 말은 인간의 영혼가운데 낮은 영역을 상징한다. 목동이 발견한 한 마리 말은 움직일 수 없고 변화가능성이 없는 물질적인 영혼의 상장으로 그 안에 있는 시체와 같다. 인간의 사체를 지니고 있는 말은 트로이 목마에 등장하는 말처럼, 거짓, 속임수, 그리고 전쟁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 문명의 탄생이 사회의 명성만을 위해 행동하는 체면과 외식만을 강조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영혼의 아래 단계를 상징한다.

인간이 안주하려는 말은 오로지 경쟁과 전쟁에서의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민낯이다. 말 안에 있는 인간의 사체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의 화신인 인간의 가식이다. 보통 사람의 몸짓보다 커 보이나 생명이 없는 사체이며 그 안엔 이성(로고스logos)이나 원칙이 없다. 인간은 세상을 과학의 눈으로 조금씩 알아가면서 우주의 원칙을 알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스스로를 위대하게 생각하나, 착각일 뿐이다. 우주를 하나로 꿰뚫는 원칙이나 정신을 설명할 수 없다. 목동은 동굴 안, 특히 말 뱃속에는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 빛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목동이 시체에 발견한 유일한 것은 사체의 손에 끼워진 금반지(다크툴리오daktulion) 뿐이다. 이 반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위를 인위적으로 뽐내기 위해 만든 외적인 부의 표시다. 그런 표시가 그 죽은 자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 반지는 왕이 자신의 아들인 왕자에게 주는 문명의 연결고리다. 사람들은 이 반지가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후대인들에게 보편적인 지식과 과학적인 사고를 전달해 준다고 믿었지만,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아름다움과 추함, 용기와 비겁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구별할 수 없었다. 결국은 목동이 살고 있는 리디아라는 왕의 조상의 반지가 유연히 자격도 되지 않는 목동의 손에 끼워졌다. 그는 오히려 그 반지로 자신의 동료뿐만 아니라 왕까지도 농락하여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는 그런 반지다.

목동이 반지의 위력을 아는 과정도 우연이다. 그가 반지를 안으로 돌리자 자신의 몸이 사라지고 바깥으로 돌리면 몸이 다시 나타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니 않을 수 있는 속임수의 장치를 손에 넣었다. 그는 반지를 조작하여 심지어는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의 평가나 명성에 영향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명성을 조작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시적인 법안에서 ‘책임이 있는 사람’처럼 보여 지기만 하면 된다.

리디아는 금과 사치의 상징이다. 헤로도투스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리디아의 왕 크로에수스는 기게스를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역사>에서는 기게스는 목동이 아니라 왕의 근위대장이다. 왕은 자신의 왕비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기게스를 시켜 왕비의 나신을 훔쳐 보게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왕비는 기게스가 자신을 훔쳐보는 기게스를 발견하고 아무렇지 않게 방을 나온다. 왕비는 그 다음날 기게스 불러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자신을 훔쳐본 죄를 지고 죽임을 당하던지, 아니면 왕을 죽이고 왕이 되어 자신과 결혼하던지. 기게스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제안을 받아들여 왕비의 도움으로 들키지 않게 왕실로 들어가 왕을 살해한다.

플라톤은 헤로도투스의 이야기를 개작하여 철학적인 문제를 야기시킨다. 헤로도투스의 리디아왕은 플라톤의 알레고리에서는 세상의 왕이 되고, 그의 아름다운 여왕은 기게스가 흠모하는 세상의 권력이다. 플라톤의 이 이야기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인간한 관한 철학적인 이야기로 전환한다. 그는 이 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이 안주하고 탐닉하는 ‘그럴듯한 세계’와 자신이 쳐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대비시킨다. 글라우콘은 ‘그럴듯한 세계’에 대해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정의는 남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지켜져야 하는 원칙인가? 정의는 한 국가의 근간이 되는 주춧돌인가?

사진

<기세스의 반지>

미상, 유화, 16세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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