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4.(日曜日) “순교殉敎”


나는 무엇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가? 그것을 발견한 자는 행복하다. <도마복음서>의 어록에 나오는 구절처럼, 인간이 발견할 때까지 추구하면, 결국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자신이 예상했던 그것과 달라 놀라고, 그런 마음을 지녀,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서양철학의 근간을 마련한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서양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플라톤이 남겨놓은 지적인 유산을 이해하여 자신의 사고의 틀로 삼았다. 화이트헤드Whitehead라는 20세기 철학자는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각주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하였다.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특히 그의 몇몇 삼촌들은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다. 플라톤과 같이 야심찬 젊은이는 아테네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수련시켰다. 플라톤 가문도 플라톤을 훈련시켰다. 플라톤은 언젠가 존경받는 리더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수련한다.

플라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라는 자신보다 30살 연장자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구태의연한 과거의 관습에 빠져 도덕적인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귀찮게 구는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을 소나 말이 잠에 들이 않도록 몸에 붙어 지속적으로 물어뜯는 벌레인 ‘등에’라고 불렀다. 그는 아테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질문하라고 촉구하였다. 그는 아테네를 지탱하는 원칙들에 대해 귀찮을 정도로 집요하게 묻는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신전과 같은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단단한 석재와 목재, 그것을 옮기는 운송기구와 노동자, 신전을 지을 땅의 선택 등 고려해야할 많은 가시적인 것들이 있다. 어느 하나 소홀하게 다루면, 지금까지 당당하고 품격이 있게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인 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신전건축을 위한 모든 자재들이 견고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엮여 아름다운 모습을 자아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원칙이 있다. 바로 균형과 조화를 보장하는 수학數學이다.

어리석인 사람은 건축의 자재들의 겉모습에 목을 매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자재들을 배치하고 연결하는 원칙을 소중하게 여겨 그것을 사회에 요구하는 ‘등에’가 된다. 이 원칙이 없다면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건축했다하더라도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학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는 소크라테스는 이 원칙을 알지도 못하고 무시하는 무지한 아테네 시민들에게 다가가 당혹스런 질문을 통해 교육하였다.

이 원칙이란 정의, 진리, 본질, 우정, 사랑, 정직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견고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학공식들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신봉하고 있는 것들이 자신의 생각인지 혹은 남들이 그렇다고 말해 자신도 모르게 믿고 있는 남들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것인지 묻는다. 아테네는 이런 질문을 지속적으로 묻는 소크라테스를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기원전 399년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

이 장면을 곁에서 본 자가 바로 플라톤이다. 서른 살 플라톤은 아테네의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아테네 신들을 믿지 않고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신을 신봉한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 과정을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에서 자세히 기술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예수의 죽음을 묘사한 신약성서 복음서과 같다.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위해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위대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서양문명과 서양철학은 그가 남긴 지적인 유산의 표현이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가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순간을 예술적으로 포착하여 오늘날까지 감상하는 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이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87년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이 그림은 서양미술사에서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벽화에 견줄만한 명작이다. 화가 자신이 프랑스 시민혁명(1789년)이 일어날 것을 감지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혁명적인 예술작품을 남기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오랜 수련을 통해 삶의 원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소크라테스를 묘사했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리기 전에 철학자들과 시인들의 작품에서 영감의 단초를 감지하였다. 다비드는 플라톤의 저자들 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파이도>를 깊이 읽고 철학자 드니 디드로Denis Didero가 연구한 극적인 시작詩作과 시인 앙드레 셰니에Andrea Chenier의 시에 심취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명을 끝내는 독이든 잔을 받지만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는 왼쪽 손 검지를 위로 치켜 올린다. 그렇다고 하늘에 대고 영생을 달라고 기원하지도 않는다. 하늘도 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을 둘러쌓인 지인들을 보지 않는다. 이 그림을 쳐나보는 나를 응시하지도 않는다. 화면 오른쪽 아래 허공을 향한 그의 눈길은 자신이 정한 길을 초연하게 가겠다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선언이다. 인간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최후의 심판자이며 우승자인 죽음도 그의 의연함에 초라해 보인다.

당시 프랑스에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처럼, 신고전주의 예술이 등장하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문명을 다시 발견하여 프랑스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지적인 운동이 신고전주의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 감성을 가장 완벽하게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통해 표현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왼쪽 허벅지를 그이 친구인 크리토가 부여잡으려 한다. 그는 감옥의 간수를 매수했으니 지금이라도 도망치자고 말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다비드는 설득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결심을 움켜지지 않는 크리토의 오른 손과 소크라테스를 응시하는 크리토의 눈으로 표현하였다. 플라톤은 침대 왼편에 허리를 대고 의자에 앉아 깊은 시름에 잠겨있다. 왼쪽 뒤로는 그의 가족들이 떠난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유사하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기 전에 제자들에 둘러싸여 식사하는 모습을 그린 <최후의 만찬>과 그림의 구성이나 주제가 깊이 연관되었다. 소크라테스나 예수는 자신이 깨달은 삶의 소중한 원칙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위인들이다. 당신에게 그런 소중한 원칙이 있습니까? 그런 원칙을 찾기 위해 배움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오늘의 삶에 안주하여 타인과 경쟁하시겠습니까?

사진

<소크라테스의 죽음>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 (1748–1825)

유화, 1787, 130 x 196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