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17. (火曜日, 舊正, 1) “구정舊正”
- 2월 18일
- 4분 분량
겨울 내내 얼어붙었던 북한강 지류의 얼음들이 녹기 시작하였다. 작년 12월부터 우리의 산책길 옆으로 길게 뻗어있던 지류가 얼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1월 초엔 지류가 얼음에 감금되었다. 세차게 부는 겨울바람이 이 곳을 단테 신곡의 가장 깊은 코귀투스 호수처럼 얼음왕국으로 변모시켰다. 그 많던 고니들과 오리들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소수만 남았다. 겨울 뒤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는 자연의 진리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고니 10마리와 오리들이 얼음왕국 주변을 서성거렸다. 고니들은 겨울철 DMZ 경비를 보는 군인처럼, 날개로 자신의 몸을 덮고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 얼음강을 종일 응시하였다. 드물게 날개를 펴고 주변을 배회하였다. 용감한 오리들은 아직 얼지 않는 시냇가에서 수영하며 추위를 견뎠다. 어제 산책길엔 고니가 15마리로 늘어났다. 그들은 아침 햇살을 듬뿍 받고 있었다. 10마리 정도는 점점 녹고 있는 얼음 위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시냇가 얼음들은 이리저리 갈라져 부유하고 있었다. 봄비가 내려 만물을 일깨우는 절기인 우수雨水가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고니들은 이제 둥지로 올라 가 봄바람을 온 몸으로 만끽한다. 이 봄에 무슨일이 일어날까? 봄을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
오늘 2월 17일은 구정은 2026년의 시작이다. 아니 그렇게 여기고 싶다. 새해결심이 저 강가의 얼음처럼 산산조각 떨어져 나가더니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 오후에 일산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 새해인사를 드렸다. 95세 아버님과 90세 어머님이 아직 정정하시다. 나도 그 나이가 되어 부모님처럼, 자신에게 엄격하고 주위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2026년을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큰 감동을 준 사건이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 용기를 준주었을 것이다. 17살 최가온 선수가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다. 그녀가 출전한 스노보드 하프 파이브 경기는 허접한 뉴스거리에 진절머리가 난 우리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성공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나팔소리다.
최가운은 자신이 스노보드경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감춤’이라고 말한다. 장갑을 끼고 넥 웨어를 두르 고글을 끼고 온몸을 두터운 옷을 입는다. 만일 자막이 없었다면, 아무도 이 선수가 최가온인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민낯이라도 나체라도 보여주려고 안달란 SNS 포르노 문화와는 다른 절제의 장면이다. 자신은 스노보드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고 멋지게 공중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부모님을 따라 어려서부터 스노보드를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다 보니, 그것이 쌓여 실력이 된 것이다. 스노보딩을 좋아하는 많은 애호가들이 있지만, 그녀가 올림픽 출전권을 따고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최가온이 세계적인 경기에서 최연소 기록을 내며 우승을 차지했지만, 2024년 초, 스위스 락스 월드컵도중 척추골절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그 후 1년동안 재활에 전념하였다. 2025년은 그녀에게 희망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차가운 숲속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정신적으로 뒷받침한 가족과 재정적으로 후원한 신동빈회장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 남모르는 후원이 롯데의 위상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이 올렸을 것이다. 자신이 올림픽에 출전하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과 재활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실제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일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경우에, 자신의 심장 속에 남아있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았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최가온은 성공의 마지막 보루인 인내를 수련하였을 것이다. 인내는, 인내할 수 없는 것을 가만히 조용히 참아내는 내공이다.
최가온은 17살 3개월이란 나이에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예선에서는 6위로 통과했다. 이제 결승전이다. 하늘에서는 하염없이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이 폭설은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공중에 부양하려는 한 마리 ‘갈매기 조나단’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새의 목표는 금메달 획득이 아니다. 스노보드의 도움을 받아 완벽하게 공중에서 제비를 돌려 부양하고 자연스럽게 착취하는 것이다. 신은 감동의 드라마를 쓰기 위해, 결승 1차를 큰 실패를 마련하였다. 최가은이 하강할 때, 코핑coping, 즉 가장자리에 부딪히며 머리부터 가꾸로 떨어져 한동안 누워있었다. 의료진이 경기공간인 파이프안에 투입되었다. 이 장면을 보는 나도, 몸 어딘가 부러져 경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선수의 건강이 최우선인 코치는 심판들에게 DNS를 알렸다. DNS는 DID NOT START의 약자로, 선수가 더 이상 출반선상에 갈 수 없기에 경기를 포기하겠다는 표시다. 코치는 최가온 선수가 너무 다쳐 도저히 출발선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주위에 누구라도 그렇게 말렸을 것이다. 최가온은 발을 움직이며 다시 출전하겠다고 완강하여 주장하였다. 결국 주위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DNS가 철회도었다. 이내 2차를 시도하였으나, 첫 번째 시도에서 부당을 당해 첫 점프에서 엉덩방아를 찌었다. 이 순간에 그녀에게 희망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유일한 한사람, 자신만이 허심虛心으로 3차를 시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최가은은 이제 밑져야 본전이라는 배짱이 생겼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희망을 찾고 싶다면, 3차를 시도하려는 최가온의 마음이다. 3차 시기에서는 전략적으로 기술 난이도를 한 단계 낮춰 안정적이지만 완벽한 움직임으로 보이겠다고 결정하였다. 최가온은 내가 아침에 본 높은 나무 위 둥지에서 날아오는 고니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라 사뿐이 파이프에 내려앉았다. 최가은의 우상이자 이젠 올림픽 경기에서 3번이나 우승은 클로이 킴이 받았던 88.00을 능가는 90.25라는 점수를 획득하였다. 클로이 김은 3차 시기의 세 번째 점프에서 착지 실수로 넘어지면서 점수 갱신에 실패했다. 결국 최가온은 부상을 뚫고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최가온의 수상소감은 자신이 누구 어떤 인간인지 알려주는 명언이다. “저 자신을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보통 선수는 타인과 경쟁하지만 특별한 선수는 자신과 경쟁한다. 어제보다 나은 자신이 내가 오늘 성취해야 할 목표다. 니체는 그런 존재를 위버메쉬로, 에머슨은 오버소울이라고 불렀다. 최가온은 역경과 고통은 항존하여 그것을 극복하려는 마음가짐, 인내를 수련한 자는 언제나 챔피온이란 엄연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기 때문에 행운이 따르고 감동을 준다.
나에게 최가온만큼 감동을 준 선수는 클로이 킴이다. 올림픽과 같은 극한의 경쟁속에서도 금메달을 딴 선수를 진정으로 축하할 수 있는 인간을 처음보았다. 클로이 킴은 이렇게 축하하였다:
“I'm really proud of her, she deserves this. She took a heavy slam, got back up, and won the damn thing. That was badass.”
“가온이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금메달을 받은 자역이 있어요. 엉청나게 무딛혔지만, 다시 일어나 기어코 금메달을 땄어요. 그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성과였어요.”
시상대에 올라 클로이 킴은 최가온 손수의 얼굴이 자신이 잘 나와야한다면 넥워머를 턱 아래로 내려주었다. 자비慈悲를 뛰어 넘어, 경쟁자의 성공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았다. 클로이 킴이 왜 인새의 챔피온인지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2026년의 시작은 신정이 아니라 구정이다. 최가온과 클로이 킴이 보여준 담력과 친절이 2026년을 이끌 나의 쌍두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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