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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30.(金曜日, 150th/365) ”검은지빠귀새“

2025.5.30.(金曜日, 150th/365) ”검은지빠귀새“

     

*<바가바드기타> 6.17

yuktāhāra-vihārasya

yukta-ceṣṭasya karmasu yukta-svapnāvabodhasya

yogo bhavati duḥkha-hā

“당신이 먹는 것과 오락에 중용을 유지한다면,

당신이 행동에 있어서 중용을 유지한다면,

당신이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절제를 유지한다면,

그 요가가 인생의 불행과 슬픔을 제가하는 자가 되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산 비탈길 나무에 관하여’

Bin ich oben, so finde ich mich immer allein.

Niemand redet mit mir, der Frost der Einsamkeit

macht mich zittern. Was will ich doch in der Hohe?

“제가 꼭대기에 있을 때, 저는 항상 홀로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무도 제게 말을 걸지 않습니다. 서리와 같은 고독이

저를 떨게 만듭니다. 제가 이 높은 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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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면으로 이사 온 후, 새벽 5시면 검은지빠귀새가 서재 앞까지 치고 올라와 오래전에 말라 비틀어진 나무에 걸터앉아 새벽을 노래한다. 앙상한 나무 가지에 앉아, 나에게 새로운 날을 준비하고 외친다. 이 새는 유일한 관람객인 나를 위해 고개를 돌려가면서 짹짹 소리를 낸다. 검은지빠귀새는 나에게 무슨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 새가 가만히 앉아있는 것같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가지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랜기간의 훈련이 필요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아도,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가면 평형을 이루고 노래한다.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생각, 말, 행위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려는 일체의 수련이 요가다. <바가바드기타> 6.17은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요가의 범위와 대상을 일러준다. 요가원에서 엄격한 아사나를 훈련하는 것도 중요한 요가수련방법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수련은 일상에서 일어난다. 요가수련자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식탐과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오락에서 중용을 연습하라고 말한다. 적당한 음식과 적당한 휴식은 요가의 기본이다.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할 것, 마실 것과 마시지 말아야할 것을 아는 적이 분별력이고, 그 분별력을 발휘하는 것이 용기다.

     

두 번째 수련분야는 일상이다. 하루는 깨어있는 낮과 잠을 자는 밤으로 구성되어있다. 요가란 밤낮으로 자신이 어제까지 쌓아둔 이기심과 그 이기심을 자극하는 쾌락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제3의 눈이다. 그는 과거에 머무는 언행을 반복하는 습관에서 과감하게 탈출하여,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자비롭게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무이한 일에 몰입한다. 그렇게 수련하는 자는 마치 누구도 도달하지 않은 자신만의 거룩한 지경에 들어간 초인과 같다. 마치 모세가 40년동안 자신을 훈련시킨 후에, 진입한 거룩한 경내와 같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온전히 되는 자신’과 만난다. 그는 지금 여기에서 유유자적하여 자신이 되고 있다.

     

니체는 그런 자를 산 바탈에 자신의 독특한 모습을 지닌채 자라고 있는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높은 곳(oben)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혼자다. 고독은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는 유일한 장소이며 시간이다. 그곳에선 아무도 그를 이래라 저래라 방해하지 않는다. 서리와 같은 고독이 그를 떨게 만든다. 니체는 ‘서리와 같은 고독’이 아니라 ‘고독이라는 서리’가 그를 전율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그곳에서 그 무엇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이 경지를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다.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저 검은지빠귀새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오늘을 자신을 제어할 것인가? 너는 오늘 고독이란 서리로 스스로 전율하는가?” 메리 올리버의 <아름다운 줄무늬 참새>를 번역해 보았다.

     

     

The Beautiful, Striped Sparrow by Mary Oliver

아름다운 줄무늬 참새, 메리 올리버

     

In the afternoons,

in the almost empty fields,

I hum the hymns

I used to sing

     

in church.

They could not tame me,

so they would not keep me,

alas,

     

and how that feels,

the weight of it,

I will not tell

any of you,

     

not ever.

Still, as they promised,

God, once he is in your heart,

is everywhere?

     

오후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빈 들판에서

저는 찬송가를 중엉거립니다.

저는 이 찬송가를

     

과거엔 교회에서 불렀죠.

교회는 저를 길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를 가들 수가 없었습니다.

아, 슬프도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느낌인지,

그 중압감을

저는 당신에게

그 하나라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결코,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종교가 약속한대로,

신은, 과거에 당신의 심장속에 있었던 것처럼,

어디에서 계시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so even here

among the weeds

and the brisk trees.

How long does it take

     

to hum a hymn? Strolling

one or two acres

of the sweetness

of the world,

     

not counting

a lapse, now and again,

of sheer emptiness.

Once a deer

     

stood quietly at my side.

And sometimes the wind

has touched my cheek

like a spirit.

     

Am I lonely?

The beautiful, striped sparrow,

serenely, on the tallest weed in his kingdom,

also sings without words.

     

그래서 심지어 여기

잡초가운데에서도,

활기 넘치는 나무 가운데에서도 계십니다.

그것이 찬송가를 중엉거리는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세상의 달콤함으로 가득한

광활한 들판을 산책해 보십시오.

     

시간을 재지 말고,

이따금

순수한 공허로 가득한 들판에서 말입니다.

한번은 사슴이

     

제 옆에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바람이 어디에서가 불어와

제 뺨을 신의 영혼과 같이

어루만져줍니다.

     

제가 외롭나요?

저 아름다운 줄무늬 참새가,

고요하게, 자신의 왕국에서 가장 높은 잡초위에서

다시 노래합니다. 물론 말하지는 않습니다.

     

사진

<검은 지빠귀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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