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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13. (火曜日) “시장의 파리떼”

2025.5.13. (火曜日) “시장의 파리떼”

     

바야흐로 ‘시장의 파리떼’가 되어야하는 시간이 왔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차악의 정치형태는, 선거를 통해 다수의 선택을 받는 사람을 리더로 선출한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들의 권한을 포기하고 그 한사람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정치 제도다. 아직도 우리가 더 낳은 제도를 만들이 못한 것이 인간의 한계다. 우리는 왕정이나 귀족정이 얼마나 독재인가를 인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민주정을 선택하였다. 민주정이 올바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개인 한명 한명이 깨어있어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훌륭한 리더를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니는 것이다.

     

대중교육과 입시라는 괴물에 의해 훈련을 받는 현대인들, 특히 한국인Homo koreana라는 특별한 인종은, 양심보다는 당장의 이익에 귀를 기울인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시민들의 정신적이며 정서적인 고양도 없이, 민주주의는 선동주의와 독재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알고, 비극공연이라는 제도를 두었다. 비극공연은, 자신이 아닌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역시사지의 연습이었다. 우리는 비극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이미 사라져 기억하지도 못한다. 현대인들은 잠시 웃고 떠드는 개그의 노예가 되었다. 개그맨들이 미디어를 장악하여 국민대부분의 정서를 주무른다. 타인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연민, 엘레오스eleos가 없다면, 현대문화는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야만적이고 당파적이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를 갈망하는 개인은, 다음 두 가지를 극복해야한다. 하나는 내적인 이기심과 욕심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권위에 대한 의존이나 맹종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권 12번째 글에서 이 두가지를 비판한다. “시장의 파리 떼에 관하여VON DEN FLIEGEN DES MARKTES”라는 글에서 인간이 자유의 연습과 신장의 방해꾼을 ‘시장’이라고 부른다.

     

시장에선 목소리가 큰 사람이 눈길을 끈다. 요즘 마이크를 잡고 목청을 올리는 후보자들같다.

미디어와 SNS를 동원하여 대중이 좋아하는 혹은 관심을 가질만한 콘텐츠를 재미있게 엮는다. 그런 리더에서 파리 떼와 같은 대중에 달라붙어, 절제되지 않는 찬사 혹은 비방을 쏟아낸다. 그런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될 사람은 자신의 진면목을 감추고, 대중에 좋아할 만한 가면을 쓰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할 수 있는 소위 ‘훌륭한 연기자’가 되어야한다. 니체는 <시장의 파리 떼에 관하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FLIEHE, mein Freund, in deine Einsamkeit! Ich sehe dich betaubt vom Larmeder großen Männer und zerstochen von den Stacheln der kleinen. Wurdig wissen Wald und Fels mit dir zu schweigen. Gleiche wieder dem Baume, den du liebst, dem breitastigen: still undaufhorchend hangt er uber dem Meere. Wo die Einsamkeit aufhort, da beginnt der Markt; und wo der Markt beginnt, da beginnt auch der Larm der großen Schauspieler und das Geschwirr der giftigen Fliegen.

“나의 친구여, 당신의 고독 속으로 도망치십시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위인들’의 소음 때문에 귀가 먹고 ‘소인들’의 침에 마구 찔리고 있습니다. 숲과 바위는 당신과 함께 기품이 있게 침묵할 줄 압니다. 다시 당신이 사랑하는 널리 가지를 펼친 나무처럼! 그 나무는 바다 위로 고요히 귀를 기울이고 매달려있습니다. 고독이 끝나는 곳에 시장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시장이 시작된 곳에서 위대한 배우들의 소음이 시작되고 독파리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시작됩니다.”

니체는 우리에게 ‘고독Eisamkeit’으로 도망치라고 충고한다. 산업혁명과 근대이전, 인간의 삻은 고독이었다. 그러나 현대가 도래하고 대중문화와 도시화가 대세가 되면서, 고독을 찾을 수 없고, 인간은 즐거운 모임을 통해 규정되는 물건이 되었다. 우리가 ‘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미디어에 매일 등장하여 연신 떠든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도, 들을 만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지난 수십년동안 내가 책장에서 꺼내보지 않는 책에 적힌 한 줄보다도 가치가 없는 내용을 마구 쏟아낸다. 그런 소음에 소인들은 더 열광한다. 왜냐하면, 그런 말이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언제나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언제나 침묵하고 나의 생각에 귀를 기울려 주기 때문이다. 숲과 바위는 기품氣品이 있다. 이 세상에 똑같은 모양을 가지 숲도 없고 바위도 없다. 다들 자기 나름대로 침묵으로 자신을 절제하기 때문에 기품이 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Wo die Einsamkeit aufhort, da beginnt der Markt,” 즉 “고독이 끝나는 곳에 시장이 시작한다.” 시장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명성을 추구한다. 연기자들, 정치가와 저널리스트들은, 대중인기를 통해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말과 글로 대중의 귀를 세뇌시킨다. 그것이 대중문화다.

     

니체는 이 대중문화를 주도할 인물을 ‘연기자’라고 말한다. 독일어로 ‘연기자’를 의미하는 ‘샤우스필러’Schauspieler’는 ‘쇼’를 의미하는 ‘샤우schau’와 ‘경기자; 연기자’ 혹은 ‘볼거리’를 의미하는 ‘슈필러spieler’의 합성이다. 근대이후 대중문화를 주도한 정치가, 언론인, 연기자, 연주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니체는 바그너를 당시 최고의 ‘엔터테이너’라고 여겼다. 배우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양심이다. 니체는 이런 연기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Geist hat der Schauspieler, doch wenig Gewissen des Geistes. Er glaubt immer an das, womit er am starksten glauben macht-glauben an sich macht! Morgen hat er einen neuen Glauben und ubermorgen einen neueren. Rasche Sinne hat er, gleich dem Volke, und veranderliche Witterungen. Umwerfen?das heißt ihm: beweisen. Tollmachen?das heißt ihm: uberzeugen. Und Blut gilt ihm als aller Grunde bester. Eine Wahrheit, die nur in feine Ohren schlupft, nennt er Luge und Nichts. Wahrlich, er glaubt nur an Gotter, die großen Larm in der Welt machen!

“연기자는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에 정작 필요한 양심良心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가장 강력하게 믿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을 항상 신봉합니다. 그는 그 자신을 신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는 내일 새로운 신념을 가지고, 그 다음에 날엔, 더 새로운 신념을 가집니다. 그는 대중처럼, 변덕스런 날씨와 같은 약삭빠른 감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뒤집어엎기. 그것이 그에게는 연기자가 될 수 있다는 증명입니다. 열광시키는 것, 그것이 그에겐 설득입니다. 그리고 피야말로 모든 근거들 중에 최상의 근거입니다. 예민한 귀에만 미끄러져 들어가는 진리를, 그에겐 거짓이고 무無입니다. 진실로 그는 이 세상에서 커다란 소음을 내는 신들만을 신봉합니다.”

     

연기자演技者와 배우俳優는 다르다. 연기자는 연출자가 알려준 내용을 언행으로 재현하는 꼭두각시지만, 배우는, 자신의 고유 임무를 깨닫고, 그 순간에 자신의 양심을 표현하는 자다. 연기자는 머리를 이용하여 대중을 자기편으로 유인할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양심 Gewissen은 없다. 배우가 발동시키는 양심은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자신의 말에 동의하게 만드는 카리스마다. 그 양심은 대중신뢰가 아니가 에머슨이 외친 자기-신뢰라는 샘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샘물이다. 연기자는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중얼거리고 외치지만, 배우는 자신의 양심을 발견하고, 그 양심의 소리에만 복종하는 자다. 그리고 그녀를 보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배역을 찾아 양심을 따라 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오늘날 연기자와 같은 정치인들은 변덕스런 날씨와 같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 뒤집기는 그가 권모술수로 권력을 쥘 수 있는 마키아벨리가 될 수 있다는 증명이다. 대중을 가만히 숙고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열광하게 만들고, 편을 가르며, 환호하게 만드는 행위가, 독재자에겐 설득이다. 인간의 숙고를 요구하는 진리는 쉽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거르고 걸러, 여러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안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진리다. 이런 진리는, 대중을 이용하게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에게 거짓이고 헛소리다.

     

시장은 어릿광대 연기자를 리더로 모시고 그들에 열광한다. 그 광대와 대중은, ‘예’ 혹은 ‘아니오’, ‘네편’ 혹은 ‘우리편’이라는 이분구조를 신봉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함을, 그 뉴앙스를 적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 애매함을 이해할 수 있는 머리가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은 항상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등장했다. 새로운 가지를 발견하는 자는,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해야한다. 니체는 이 글의 마지막에 ‘연기자’들의 거짓말에 동요되어 춤을 추고 있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Fliehe, mein Freund, in deine Einsamkeit:

ich sehe dich von giftigen Fliegenzerstochen.

Fliehe dorthin, wo rauhe, starke Luft weht!

Fliehe in deine Einsamkeit!

Du lebtest den Kleinen und Erbarmlichen zu nahe.

Fliehe vor ihrer unsichtbaren Rache!

Gegen dich sind sie nichts als Rache.

Hebe nicht mehr den Arm gegen sie!

Unzahlbar sind sie, und es ist nicht dein Los, Fliegenwedel zu sein.

“나의 친구여, 당신의 고독孤獨 속으로 도망치십시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독파리에 의해 마구 쏘이고 있습니다.

그 안으로, 거세고 강한 바람이 부는 곳으로 도망치십시오!

당신의 고독 속으로 도망치십시오!

당신은 하찮고 불쌍한 자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왔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복수로부터 도망치십시오!

당신을 향해, 그들은 복수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는 그들을 향해 손을 들지 마십시오.

그들처럼 무수하고 파리떼가 되는 것이 당신의 운명이 아닙니다.”

사진

<집으로 가는 노동자들>

아드바르 뭉크 (1863-1944)

유화, 1914 , 201.5 x 227 cm

독일 뮌헨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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