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8.(67th/365 土曜日) “신자神子”
오늘은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마가복음> 줌수업을 진행하였다. 15장에 등장하는 로마제국의 예수 재판과정, 군중들의 예수 구타와 조롱, 십자가 처형, 그리고 백부장의 고백까지 공부하였다. 예수는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처참한 운명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스어 단어 하나하나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니, 골고다 언덕 상황을 생생하게 상상하게 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예수는 인간, 동물, 식물, 만물이 ‘각자가 되라’는 복음 전했다. 종교는, 예수나 붓다가 관심에도 없다. 그들은 경악할 만한 거대한 세속집단인 종교를 만들고, 생존을 위해 알 수 없는 교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대중으로 전락시켜왔다. 예수는 자신을 ‘에흐에’ 즉 ‘IAM’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에흐에’는 신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알려준 이름이다. 모세는 이집트 이름으로 ‘태어난 자; 어린아이’라는 뜻인데,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높은 산, 데이빗 브룩이 말하는 ‘두번째 산’에 올라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그는 그저 ‘태어난 자’가 아니라, 자신과 인류를 구원할 자로 변모한다. ‘모세’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물에서 건져내는 자; 구원자’라는 뜻이다.
모세가 ‘태어난 자’에서 ‘자신과 히브리인들을 구해 내는 자’가 되는 과정에 시내산이 있다. 시내산을 아주 높은 산이라, 자기-응시의 수련을 오랫동안 한 자만이 입장할 수 있는 산이다. 모세는 이집트 궁궐에서 태어났다. 이집트인이 히브리인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모세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던 정의감이 살아나,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자신을 응시하는 공간이 광야로 들어간다. ‘광야’란 히브리 단어 ‘미드발’은 ‘신의 말씀이 존재하는 공간’이란 의미다. 그는 이 공간에서 40년동안 자기와 자연응시를 수련한다. 이 인내의 응시가 그를 시내산으로 인도한 것이다. 그가 시내산에서 신의 존재를 발견한 곳은 굉장한 물건이 아니라, 바람이 불면 금새 날아가는 가시덤불이다. 신비하게 시내산과 가시덤불은 히브리어로 모두 같은 단어인 ‘서내’다. 모세는 결국 우리 삶의 먼지나 펄펄 나부끼는 일상이 거룩한 장소란 사실을 깨닫는데, 40년이란 세월을 훈련한 것이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입례음악을 선정한다. 내가 오늘 수업을 위해 선정한 음악은 비틀즈의 Let It Be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당황하여 자신의 이름을 세 번이나 바꾼다: 1) 에흐에; 2) 에흐에 아쉘 에흐에; 3) 야훼/여호아. 에흐에가 ‘IAM’이라면 ‘야훼/여호아’는 Let It Be다. 이 문장을 풀어 쓰면, Let It Become whoever you are 혹은 Let It Become whatever it is다. 살아 있는 생물이나 혹은 생명이 없는 바위나 돌로, 그것 자체가 되는 것이 신의 섭리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돌들이 느끼나?’Do Stones Feel?이란 시에서 Let It Become whatever it is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Do stones feel?
Do they love their life?
Or does patience drown out everything else?
When I walk on the beach I gather a few
white ones, dark ones, the multiple colors.
Don’t worry, I say, I’ll bring you back, and I do.
돌들도 느끼는가?
돌들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가?
혹은 돌의 인내는 모든 것을 익사시키는가?
제가 해변을 걸을 때, 흰색, 어두운 색, 다양한 색
돌들을 모음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도로 가져가 놓을꺼에요. 정말이에요.
올리버의 공감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돌이 느낀단다. 우리는 이 놀라운 공감을 출애굽기 3장을 기록한 3000년전 고대 시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시덤불 안에 말하는 신이 존재하고, 모세가 그 안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예수는 세상에 태어난 IAM이 되기로 결심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YOUARE로 살라고 혹은 S/HEIS로 살라고 아우성친다. IAM를 실천하기 위해, 대중과 종교가 원하는 you are와 sheis에 굴복하지 않고 자시만의 십자가를 진 것이다. 예수의 마지막을 처음부터 지켜본 로마 백부장이 있었다. 그가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고 <마가복음> 15장 39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십자가 쥐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로마 백부장은 예수가 처첨하게 구타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마지막 외침을 듣고 그가 죽는 것을 지켜본다. 그 병사는 예수의 죽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무시무시한 십자가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마감한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고백한다. <마가복음>의 서두 말씀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1:1)을 고려할 때, 백부장의 고백은 예수의 수난의 절정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 순간이다.
성경공부 참여자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런 삶을 매일 사는 IAM이 되면 좋겠다. 그래야 비틀즈의 노래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자신으로 온전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