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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 (61st/365, 日曜日) “인간중심에서 생명중심으로”

2025.3.2. (61st/365, 日曜日) “인간중심에서 생명중심으로”

(봉은사 일요법회 강연)

     

내 주일아침에는 일과는 이렇다. 동네 교회나 천주교에 가만히 가서 찬송을 조용히 부르고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정해주시는 성경 구절을 깊이 묵상하나 샤갈-예쁜이와 야산 중턱에 마련된 메카로 올라가 수리아 나마스카라 ab를 5번 반복하면서 다가오는 일주일을 지난 일주일과는 다른 시간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내려온다.

     

오늘은 강남 봉은사에서 오전 11시 일요법회시간에 ‘인간중심에서 생명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날이다. 주지스님께서 항상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 법회를 인도하시는데, 그 소중한 시간을 내주셨다. 누군가의 강력한 압박이 들어갔거나, 내가 뜻있는 분들과 진행하고 있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생명운동’의 취지를 공감하셔서, 선뜻 이 시간을 할애해 주신 것이다. 작년에 남영주에 있는 교종본찰인 봉선사奉先寺에서 ‘선명상과 반려견’을 주제로 강연하였다. 호산스님의 파격적인 배려로 반려견들이 견주와 함께 법당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봉선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10시였다. 주차할 공간이 없어 10분가량 기다리다 겨우 주차공간을 찾았다. ME & PET 운동을 실천하는 박인호 보노몽대표, 남산 충정사 주지인 덕운스님, 봉선사 사무국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주지스님인 원명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뒤 뜰로 갔다. 골든 리트리버 천수가 가장 먼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맞이하였다. 원명스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미물微物이라 할지라도, 모두 붓다다’라는 화두를 주셨다. 이 진리는 원래 종교이자 미래 종교가 간직해야 할 가장 소중한 교리다. 모든 생명안에 인간의 과학으로는 도무지 헤아리거나 조작할 수 없는 신의 지문인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아힘사ahimsa’는 불교교리의 핵심이자 모든 종교의 근간일 수 밖에 없다.

     

11시가 되어 법당으로 들어가면서 내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왼편 뒤에 배석한 합창대가 찬불가는 부르고 있었다. 많은 분들이, 족히 300명이상이 되는 불자들이 무릎을 꿇고 내 강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분들은 강의를 경청하기 위해 마음을 가지런히 놓았는데, 정작 강의할 자인 내가 마음을 정돈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당황하였다. 불교방송 및 여러 매체가 촬영하고 있었다. 강연 전까지, 양옆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을 이용하여 준비한 PPT파일을 통해 전송된 화면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했다. 강연 집중도를 위해, PPT파일 없이 진행하기로 결심했지만, 현장에서 몇몇 분들이 화면을 보여주는 편이 좋겠다고 강력하게 나를 설득하였다. 리모트 콘트롤과 컴퓨터가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강의의 흐름이 자주 끊겼다. 내가 강의 환경을 미리 숙지하지 못해, 생명 운동의 핵심을 좀 더 선명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세계는 코로나를 경험하면서. 더 움츠려드렸다. 인간은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인터넷과 SNS와 보내면서, 인터넷의 사용자 이름으로 전락하였다. 최근 등장한 AI는 더욱 강력하여, 인간은 이제, 전대미문의 성능을 지닌 하이테크-표절 기계인 AI에 자료를 제공해주는 로봇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이전과는 다른 혁신적인 삶의 문법을 제공하지 않는 한, AI를 다루는 소수의 인간이 대부분의 인간을 인터넷으로 지배하는 끔찍한 디스토피아로 이미 진입하고 있다.

     

교육과 종교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실마리를 쥐고 있지만,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져버리고, 자기발견이 아닌 외부와의 경쟁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자기각성이 아닌 외부숭배를 교리로 삼는 종교가, 다시 태어나야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율 국가라는 오명을 지난 10년동안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은 아마도 명이 50억년전에 등장하여, 생명보전과 번식이라는 것을 포기하기 심지어 생명을 자신것이라고 착각하고 죽이는 죽음의 문화가 판을 치는 유일한 동물집단일 것이다. 요즘 우리의 가임여성이 아이를 낳은 확률을 계산하는 출산율이 0.7이 넘었다는 소식을 전하지만, 그 출산율은 OECE 평균 1.5의 절반이며, 내년엔 다시 0.6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교 1학년 취학예정 학생수가 10년전보다 21%나 줄었고 올해만 초중고 137곳이 문을 닫았다.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미디어를 통해 보는 정치인들이 상대편에게 내뱉든 말들은 우리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절망으로 인도하는 대못질들이다. 그들이 일주일만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침묵의 효과를 본 그들과 국민들이 말을 삼갈 수도 있다.

     

대한민국과 전세계를 살릴 유일한 방안은 인류문화를 ‘인간중심에서 생명중심으로의 대 이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래 걸리는 과정이지만, 유일한 희망이다. 희망은 역설적으로 이미 폐허가 된 혁신적인 학교와 새로운 종교에서 찾아야 한다. 학교는 이 세상에서 타인과 어울려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는 덕德을 가르쳐야 하고, 종교는 신은 순간을 사는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교리나 규율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良心이란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그 희망은 우리 각자의 타고남에 있다. ‘타고남’이라고 번역한 이탈리아어는 ‘세멘자semenza’로 ‘씨앗; 정자’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희망의 실마리는 우리 각자 마음 속 가장 깊은 곳, 심연에 있다. 짐승처럼, 세상의 경쟁적인 가치들, 예를 들어, 돈, 명예, 권력과 같은 바람을 쫓지 말고, 우리 각자의 심연에 있는 덕과 양심을 완성하기 시작해야 한다.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생명의 씨앗을 발견, 발굴, 발휘하는 ‘생명존중운동’이 우리 교육의 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

     

나는 시골에 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게 되는 행운을 얻었지만, 동시 1m줄에 묶인 개들을 보는 불운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학대받는 개들을 구조하게 되었고, 반려견들과의 만남을 통해 대한민국의 희망을 심고 싶다. 우리가 속한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을 보면, 반려견과의 도움으로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짐승으로 세상에 등장하였다. 30만년 전, 오늘날 북아프리카에 처음으로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는 8만년 전경, 오늘날 중동지방으로 건너와 거주하였다. 당시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40만년 전부터, 시베리아와 아시아 지역에서는 데니소바인이 20만년 전부터 거주하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짐승이 아니다. 독수리 날개뼈로 오음계 피리를 만들고, 몸 장식을 위한 다양한 목걸이를 제작하고, 불을 다루며, 추상적인 예술작품을 남겼다.

     

호모 사피엔스는 5만년경, 네안데르탈인들과 데니소바인들이 거주하는 유라시아 지역으로 다시 이주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들과 성관계를 맺을 정도로 유전자가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들은 각각 4만년경에 지구상에서 소멸한다. 이들의 소멸이 아직도 과학자들이나 인류학자들에게 수수께끼이지만, 나는 그 이유를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당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들과 같은 유인원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유적이 있다. 그것은 인류가 최초의 동굴벽화를 그린 쇼베동굴입니다. 프랑스 아르데슈 Ardeche 강의 석회암 고원 지대에 위치한 쇼베동굴은 인류가 처음으로 그림을 통해 창작활동을 시작한 유적지다. 이곳에 남겨진 가장 오래된 벽화는 탄소연대측정에 의하면 3만4천년 전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호모 사피엔스의 승리를 알려주는 흔적이 남아있다.

     

쇼베동굴 안쪽에 어린아이와 늑대가 함께 걸어가는 발자국이 남아 있다. 2만 60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발자국들은 아직 마르지 않는 진흙 위에 찍혔고 45.72미터 길이에 빼곡히 남겨져 있다. 쇼베동굴이 1994년에 발견되면서, 이 신비한 동행의 발자국도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4천6000년이란 시간을 초월하여, 이 발자국들은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가?

     

인간 발자국은 8세에서 10세 아이의 맨발이며 진흙에 남긴 발의 압력을 계산해 보면, 키가 140cm 정도다. 발자국들은 아이가 뛰지 않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사람처럼, 조용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고 있었다. 진흙이 굳지 않아, 아이가 미끄러진 흔적도 남아있니다. 아이는 아마도 칠흑과 같은 동굴을 밝히기 위해 한 손으로는 횃불을 들었을 것이다. 발자국들 중간에 횃불에서 떨어진 목탄 흔적이 발견되었다.

     

구석기시대 한 어린아이가 미켈란젤로의 그림으로 가득한 로마의 시스틴성당과 같았던 쇼베동굴 벽화와 동굴 맨 끝에 마련된 곰 두개골을 감상하러 들어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는 한 손에 횃불을 들고 입구에서 200m정도 들어왔다. 아이의 부모가 벽화들과 곰 두개골이 놓여있는 의례장소를 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이는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괴물이 나올 것만 같은 미궁의 동굴을 자신의 베스트프렌드인 반려견과 동행한다. 바로 그(녀)는 바로 자신과 같이 지내는 늑대-개였다. 늑대-개의 발자국도 신기하게 어린아이 발자국 옆에 나란히 찍혀있다. 그 크기로 보아 어린아이보다 훨씬 큰 회색 늑대-개였다.

     

우리는 최근까지 인간은 기원전 9000년경 농업을 발견하고 잉여농산물이 생기면서 개를 사육하기 시작했다고 믿어왔다. 이 이론에 의하면, 개는 빙하기가 끝나고 인간이 농업을 시작하면서 등장한다. 회색 늑대가 농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인간이 남긴 농산물, 축산물 혹은 쓰레기를 훔쳐 먹었고 늑대는 먹잇감을 찾기 위해 다른 동물들, 특히 인간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개들은 인간의 남긴 음식 먹을 얻기 위해 유순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더욱 유순해지고 인간은 늑대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개량시켰다. 이 설명은 최근 고고학적 발굴과 DNA분석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허물어졌다.

     

새로운 이론은 이것이다. 인류와 개는 함께 공진화하였다. 우리가 늑대를 전략적으로 선택하였고 동시에 늑대도 인간을 선택하였습니다.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 되었다. 이 둘의 관계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각자가 지닌 개성을 부각시키는 상호존경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인간과 개가 공존하여 2만6000년전부터 흥미진진한 역사를 함께 기록하였다. 이 두 집단은 긴밀한 협력으로 짐승상태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신적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로, 회색 늑대의 일부가 인간의 마음을 한순간에 알아버리는 신적인동물인 ‘개’로 변모하였다. 개는 인간을 짐승에서 온전한 인간으로 변화시킨 운명의 동반자同伴者다. 다시 한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을 통해, 생명중심의 문화로 이동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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