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2. (71st/365 水曜日 英詩默想) “A Dog Has Died”
샤갈과 산책에 나섰다. 차를 차고 6.5m를 달리면 연인산 입구가 나온다, 그곳에 1km정도되는 비탈진 언덕이 나온다. 오늘 아침에 이 언덕에 올라갔다. 입구에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 근처에 차를 대로 오르기 시작했다. 숲에는 아직 눈이 쌓여있다. 길가에는 잔설들이 진흙과 엉켜져 우리의 발을 더렵히지만, 산책이 주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 둘 하나 둘, 13살된 샤갈와 나는 구령에 맞춰 오르기 시작했다. 샤갈은 작년에 오른발 대수술 후에, 다이어트와 운동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그 결과 어느때 보다 건강하다. 역시 고통은 개선의 유일한 통과의례다. 작년에 벨라를 떠나 보낸 후, 짠한 우울증에 종종 시달리는 나를 달래기 위해, 샤갈은 아침과 저녁 산책을 심하게 보챈다. 그 덕에 내 가슴에 응어리진 서먹서먹한 시린 얼음이 거의 녹아내렸다.
언덕 위 반환점을 돌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한 참 내려오는데, 한 주민이 말을 건낸다. “오늘은 한 마리만 데리고 오셨네요?” 샤갈과 나는, 이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였다. “네, 벨라는 작년 9월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어요.” 나의 고요한 대답에 그 분은 말을 잊지 못했다. 우리가 얼마나 즐겁게 산책했는지를 알기에, 그 분은 고개만 끄덕였다. 샤갈과 나는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서, 벨라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작년 9월 23년 새벽 6시 15분이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할 때, 벨라가 세 번 몸을 일으켜 나에게 눈으로 무엇인가를 말했다. 회광반조를 통해 벨라는 그 당시 나에게 ‘아빠, 매일 운동하시고, 모든 것을 사랑하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
벨라의 유언이 오늘 새벽에 읽은 <마가복음> 16장 후반부에 등장하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전한 유언과 유사하다.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았다.” 믿음이란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교리나 종교인의 근사한 말을 신봉하라는 말이 아니다. 예수가 누차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는 말과 같이, 자신의 고유성, 자신의 자기됨을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정하라는 당부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 모양 이 꼴이 나의 모습이며 놀랍게도 신의 모습이다. 나는 신의 거울이다.
내가 거울을 자세히 보면, 진정한 내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신의 형상이다. 만물이 저마다 다르게 생겼듯이, 나다움에 신이 이 세상에 나를 보낸 유일한 미션의 비밀이 숨겨져있다. 세례는, 매일 아침 인생의 초보자가 되어 다시 태어나라는 명령이다. 세례는 숨을 멈추게 하여, 우리를 죽음직전까지 몰고 가는 의례다. 어제의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군인이 아니라 용사처럼 행하라는 명령이다. 세상이 군인은 많지만, 용사를 드믈다. 군인은 동일한 제복을 입고, 타인의 명령을 따는 로봇이다. 그러나 용사는,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위해 전쟁터로 나간다. 그의 무기는, 자신의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용감이다. 인간은 어제의 나를 극복하여 오늘 조각해야 할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오늘 벨라가 몹시 보고 싶다. 다시 조우할 날을 고대하며,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시를 다시 번역해 보았다.
My dog has died BY PABLO NERUDA
제 개가 죽었습니다. 칠레 시인 파울로 네루다
My dog has died.
I buried him in the garden
next to a rusted old machine.
제 개가 죽었습니다.
그를 녹이 슨 오래된 기계 옆,
정원에 묻었습니다.
Some day I'll join him right there,
but now he's gone with his shaggy coat,
his bad manners and his cold nose,
and I, the materialist, who never believed
in any promised heaven in the sky
for any human being,
언젠가 제가 거기에서 그와 합류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털이 난 외투를 입고 가버렸습니다.
그의 고약한 습관도, 그의 차가운 코도 함께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물론자인 저는 어떤 인간에게도
하늘에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믿은 적이 없습니다.
I believe in a heaven I'll never enter.
Yes, I believe in a heaven for all dogdom
where my dog waits for my arrival
waving his fan-like tail in friendship.
(그러나) 저는 제가 결코 들어가지 않을 천국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모든 견공犬公들을 위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제 반려견이 우정의 상징으로 부채같이 큰 꼬리를 흔들려
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Ai, I'll not speak of sadness here on earth,
of having lost a companion
who was never servile.
His friendship for me, like that of a porcupine
withholding its authority,
was the friendship of a star, aloof,
with no more intimacy than was called for,
with no exaggerations:
he never climbed all over my clothes
filling me full of his hair or his mange,
he never rubbed up against my knee
like other dogs obsessed with sex.
아, 저는 여기 지상에서
삶의 동반자를 잃은 슬픔에 관해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결코 비굴한 적이 없습니다.
저에 대한 그의 우정은
권위를 스스로 억누르고 있는 호저처럼,
필요 이상으로 친한 척하지 않는,
결코 과장하지 않는,
멀리 떨어져 빛나는 별의 우정과 같습니다.
그는 제 옷에 올라가
자신의 털이나 옴을 옮긴 적이 없습니다.
그는 결코 섹스에 사로잡힌 다른 개들처럼
제 무릎에 대고 문지른 적이 없습니다.
No, my dog used to gaze at me,
paying me the attention I need,
the attention required
to make a vain person like me understand
that, being a dog, he was wasting time,
but, with those eyes so much purer than mine,
he'd keep on gazing at me
with a look that reserved for me alone
all his sweet and shaggy life,
always near me, never troubling me,
and asking nothing.
그러지 않았습니다. 제 반려견은 저를 응시하면서
제가 필요한 관심을 주었습니다.
저처럼 허망한 인간이
‘개로서’ 그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필요한 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제 눈보다 훨씬 순수합니다.
그는 저만을 위해 예약된 시선으로
계속해서 저만 응시합니다.
그의 달콤하고 털복숭이 생명은
항상 제 곁에서, 저를 괴롭히지 않고
저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Ai, how many times have I envied his tail
as we walked together on the shores of the sea
in the lonely winter of Isla Negra
where the wintering birds filled the sky
and my hairy dog was jumping about
full of the voltage of the sea's movement:
my wandering dog, sniffing away
with his golden tail held high,
face to face with the ocean's spray.
아, 제가 그의 꼬리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우리가 이슬라네그라 작은 섬에서 보낸 외로운 겨울,
그 해변에 함께 산책할 때입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온 철새들이 하늘을 메우고
털이 많은 제 반려견은 바다의 움직임처럼
엄청난 힘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Joyful, joyful, joyful,
as only dogs know how to be happy
with only the autonomy
of their shameless spirit.
아, 기쁘다, 기쁘다, 기쁘다.
오직 개들만이
그들의 창피해하지 않는 영혼을 지닌 자율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There are no good-byes for my dog who has died,
and we don't now and never did lie to each other.
So now he's gone and I buried him,
and that's all there is to it.
지금 죽은 제 반려견을 위해 작별인사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영원히 서로에게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 지금 그는 가버렸습니다. 제가 그를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입니다.
사진
<벨라,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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