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1. (70th/365 火曜日) “다른 모습”
(<마가복음> 16장 9-13절)
백부장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를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예수는 ‘사랑’은 동물인 인간을 신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유일한 가치라는 진리를 자신의 목숨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후에 막달라 마리아, 이름을 밝히지 않는 두 제자, 그리고 무서워 떨고 있는 11제자에게 나타났다. 이 때 등장한 ‘부활한 예수’의 모습은, 그들이 이젠에 보던 예수와는 ‘다른 모습’이다. <마가복음> 16잘 9-13절에서는 ‘부활한 예수’를 다른 모습으로 보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한 예수를 ‘흰 옷을 입은 청년’( 여인들은 흰 옷을 입은 청년(νεανίσκον... περιβεβλημένον στολὴν λευκήν)을 보았고 두 제자는 ‘다른 모습’(ἐν ἑτέρᾳ μορφῇ) 만났다.
막달라 마리아에 나타난 흰 홋을 입은 청년은 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이 청년을 천사라고 번역해왔다. 천사란 용어도 애매한 번역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존재를 성서에서는 흔히 ‘천사’ 혹은 ‘신’으로 표현해왔다. 마리아는 그를 다른 복음서에서는 묘지를 관리하는 정원 관리인으로 여겼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장면들을 간략하게 묘사하여, 막달라 마리아와 두 제자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존재를 어떻게 부활한 예수로 인식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원래 마가복음의 일부가 아니다. 후에 예수의 부활 후 모습을 독립적으로 요약하여 첨가하여, 서술이 거칠고 서투르다. 상상을 동원하고 다른 복음서의 도움을 받아 해석을 시도해야한다.
이 두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부활한 예수를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랑하는 예수를 그리워하며, 로마제국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마치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의 주인공 안티고네처럼, 반역자로 죽은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무덤으로 갔다. ‘간절한 마음’과 그것을 ‘실천하는 행위’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하는 유일한 통로다. 두 제자 이야기에서는 자세한 이야기가 <누가복음>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두 제자가 어두운 산길을 가려는 낯선 자에게 음식과 음료를 대접하려는 자비와 그것을 실천한 대접이, 이 낯선 자를 부활한 예수로 둔갑시킨 것이다.
부활한 예수는 누구인가? 부활한 예수는 우리가 ‘다른 모습’을 다가오는 낯선 자에 대한 친절과 배려다. 그 친절과 배려를 통해, 낯선 자가 부활한 예수가 된다. 우리의 사랑의 실천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 심지어 자연까지도 신으로 둔갑시키는 유일한 무기다. 다음은 <마가복음> 16장 9-13절 번역과 해설이다.
II.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다(마 28:9-10; 요 20:11-18)
9.
Ἀναστὰς δὲ πρωὶ πρώτῃ σαββάτου ἐφάνη πρῶτον Μαρίᾳ τῇ Μαγδαληνῇ, παρ' ἧς ἐκβεβλήκει ἑπτὰ δαιμόνια.
והוא כאשר קם מן המתים באחד בשבת נראה בראשונה
אל מרים המגדלית אשר גרש ממנה שבעה שדים
일주일의 첫날 새벽에 일어난 후, 그는 맨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내쫓아 주신 여자였다.
(해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9-20절은 원래 마가복음의 일부가 아니다. 후에 예수의 부활 후 모습을 독립적으로 요약하여 첨가하였다. 이 구절의 그리스어 본문에는 주어가 없다. 예수가 ‘일어났다’라고 가정할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를 ‘그가 일곱 귀신을 “그가 일곱 귀신을 쫓아낸 자”라는 내용은 처음 언급되었다.
10.
ἐκείνη πορευθεῖσα ἀπήγγειλεν τοῖς μετ’ αὐτοῦ γενομένοις πενθοῦσι καὶ κλαίουσιν·
ותלך ותגד לאנשים אשר היו עמו והם מתאבלים ובכים׃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κἀκεῖνοι ἀκούσαντες ὅτι ζῇ καὶ ἐθεάθη ὑπ’ αὐτῆς ἠπίστησαν.
וכאשר שמעו כי חי ונראה אליה לא האמינו לה׃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마리아가 예수를 목격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다.
(해설)
마리아는 16:7에서 천사가 명령한 것을 수행하기 위해 제자들을 찾아간다. 제자들이 애도하는 있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기념하는 동안, 참회하였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울지는 않았다. 그녀가 예수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거했지만 제자들이 그녀를 믿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평범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III. 예수께서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눅 24:13-35)
12.
Μετὰ δὲ ταῦτα δυσὶν ἐξ αὐτῶν περιπατοῦσιν ἐφανερώθη ἐν ἑτέρᾳ μορφῇ πορευομένοις εἰς ἀγρόν·
ואחרי כן נראה בדמות אחרת לשנים מהם בהיתם מתהלכים בצאתם השדה׃
그 뒤에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내려가는데, 예수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κἀκεῖνοι ἀπελθόντες ἀπήγγειλαν τοῖς λοιποῖς· οὐδὲ ἐκείνοις ἐπίστευσαν.
והם הלכו ויגידו לאחרים וגם להם לא האמינו׃
그들은 다른 제자들에게 되돌아가서 알렸으나,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해설)
이 구절은 분명 누가복음 24:13-35에 등장하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다. 마가복음 저자는 이 이야기에 ‘제자들은 그들의 말로 믿지 않았다’란 구절을 첨가하였다. 제자들도 자신의 두 분으로 직접 봐야만 예수의 부활을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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