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31.(金曜日)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새벽부터 싸라기눈이 내린다. 다음 주면 입춘인데 겨울이 물러가기 싫다고 심술을 부린다. 오늘 오후에 서울에 미팅이 잡혀 걱정이다. 야산에 붙은 언덕 집에 사는 사치엔 그 대가가 있다. 특히 겨울엔 그렇다. 온 세상을 덮는 눈이 얼기 전에 치워야한다. 점심때쯤, 서울로 향해야하는데, 차가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는지, 가름해야한다. 샤갈과 나는 뒷산 산행을 포기하고, 마을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차를 몰고 마을로 내려갔다. 다행이 쌓인 눈이 빙판으로 되기 전이다. 샤갈과 나는 마을 운동장 두 바퀴 돌고 막스 리히터의 Nature of Day Light 음악에 발 맞춰, 수변 데크를 왕복했다. 마을로 내려가겠다는 결심과 실제로 차를 움직이는 ‘오늘 아침’의 결행이 하루를 값지게 만들 것이다,
내일 공부할 <마가복음> 5장 후반에 유대 회당장 중에 하나인 야이로의 열두살 난 딸의 죽음과 살음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복음서 저자는 그 중간에 열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 5장 24-35절에 살짝 끼워 넣었다. 사실 ‘살짝’이 아니라 ‘신앙’이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알려주는 이야기다. 다음은 그리스어 원문, 히브리어 번역, 그리고 내 번역이다. 히브리어 번역은, 지금은 잃어버린 ,마가복음 저자가 참고했을 히브리어/아람어 복음서 원문에 담긴 힌트를 간간히 주기 때문에, 나는 병렬시켰다.
24.καὶ ἀπῆλθεν μετ’ αὐτοῦ. καὶ ἠκολούθει αὐτῷ ὄχλος πολύς, καὶ συνέθλιβον αὐτόν.
וילך אתו וילכו אחריו המון רב וידחקהו׃
예수가 그(야이로)와 함께 떠났다. 큰 무리가 그를 따랐고 그를 에워싸며 밀치게 되었다.
25. Καὶ γυνὴ οὖσα ἐν ῥύσει αἵματος δώδεκα ἔτη,
ואשה היתה זבת דם שתים עשרה שנ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었다.
26. καὶ πολλὰ παθοῦσα ὑπὸ πολλῶν ἰατρῶν καὶ δαπανήσασα τὰ παρ’ αὐτῆς πάντα,
καὶ μηδὲν ὠφεληθεῖσα ἀλλὰ μᾶλλον εἰς τὸ χεῖρον ἐλθοῦσα,
והיא סבלה הרבה תחת ידי רפאים רבים והוציאה את כל אשר לה ולא להועיל ויהי חליה חזק מאד׃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다.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병세가 심해졌다.
27. ἀκούσασα τὰ περὶ τοῦ Ἰησοῦ, ἐλθοῦσα ἐν τῷ ὄχλῳ ὄπισθεν ἥψατο τοῦ ἱματίου αὐτοῦ
ויהי כשמעה את שמע ישוע ותבוא בהמון העם מאחריו ותגע בבגדו׃
그녀는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댔다.
28. ἔλεγεν γὰρ ὅτι Ἐὰν ἅψωμαι κἂν τῶν ἱματίων αὐτοῦ σωθήσομαι.
כי אמרה רק אם אגע בבגדיו אושע׃
그녀는 생각/말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내가 치유될 것이다.“
29. καὶ εὐθὺς ἐξηράνθη ἡ πηγὴ τοῦ αἵματος αὐτῆς,
καὶ ἔγνω τῷ σώματι ὅτι ἴαται ἀπὸ τῆς μάστιγος.
וייבש מקור דמיה פתאם ותבן בבשרה כי נרפא נגעה׃
그 즉시, 그녀의 혈류가 말랐다. 그는 몸으로 자신이 괴로움 낫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30. καὶ εὐθὺς ὁ Ἰησοῦς ἐπιγνοὺς ἐν ἑαυτῷ τὴν ἐξ αὐτοῦ δύναμιν ἐξελθοῦσαν,
ἐπιστραφεὶς ἐν τῷ ὄχλῳ ἔλεγεν Τίς μου ἥψατο τῶν ἱματίων;
וברגע ידע ישוע בנפשו כי גבורה יצאה ממנו ויפן בתוך העם ויאמר מי נגע בבגדי׃
예수는 자기에게서 어떤 힘이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알아차렸다. 그는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31. καὶ ἔλεγον αὐτῷ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Βλέπεις τὸν ὄχλον συνθλίβοντά σε,
καὶ λέγεις Τίς μου ἥψατο;
ויאמר אליו תלמידיו אתה ראה את ההמון דוחק אתך ואמרת מי נגע בי׃
그의 제자들이 말했다. “당신께서 무리가 당신을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니, (그 질문이 말이 됩니까?)
32. καὶ περιεβλέπετο ἰδεῖν τὴν τοῦτο ποιήσασαν.
ויבט סביב לראות את אשר עשתה זאת׃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자를 보시려고 둘러보았다.
33. ἡ δὲ γυνὴ φοβηθεῖσα καὶ τρέμουσα, εἰδυῖα ὃ γέγονεν αὐτῇ,
ἦλθεν καὶ προσέπεσεν αὐτῷ καὶ εἶπεν αὐτῷ πᾶσαν τὴν ἀλήθειαν.
ותירא האשה ותחרד כי ידעה את אשר נעשה לה ותבא ותפל לפניו ותגד לו את האמת כלה׃
아, 그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었다.
그리고 그에게 와서 엎드렸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진실을 말했다.
34. ὁ δὲ εἶπεν αὐτῇ
Θυγάτηρ, ἡ πίστις σου σέσωκέν σε·
ὕπαγε εἰς εἰρήνην, καὶ ἴσθι ὑγιὴς ἀπὸ τῆς μάστιγός σου.
ויאמר אליה בתי אמונתך הושיעה לך לכי לשלום וחיית מנגעך׃
예수가 말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으로 들어가라. 네 괴로움에서 이제, 나와 항상 건강하게 되어라.“
여기 실의에 찬 여인이 있다. 혈루증으로 12년동안 앓았다. 12년은 그 사람의 일생이다. 이제 치유를 포기할 만한 시기를 훨씬 넘겼다. 그녀는 용하다는 의사를 다 찾아가 치료를 받았지만, 재산만 축내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혈루증(ἐν ῥύσει αἵματος)이란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샘명의 근원인 피를 헛된 곳에 사용하여, 삶의 의욕을 잃고 실의에 찬 사람의 증상이다. 그녀는 자신이 선망하는 외부가 그에게 삶의 기쁨을 줄 것이라고 착각했다. 이리저리 그 쾌락을 쫓아 다녔지만, 자신의 재능을 썩히고 자신을 축내 실의에 차있었다.
어느 날, 예수가 그 길을 지나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예수는 다른 가짜 종교인이나 치료자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직감했다. 예수는 아무리 실의에 차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살리는 기적을 일으켜도 사람들을 그를 배척하고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심지어는 그의 가족도 그랬다. 예수가 바알세불이라는 귀신에 붙들려 기적을 행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그의 가족이 그를 체포하러 온 이야기가 <마가복음> 3장 21절에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καὶ ἀκούσαντες οἱ παρ’ αὐτοῦ ἐξῆλθον κρατῆσαι αὐτόν· ἔλεγον γὰρ ὅτι ἐξέστη.
וישמעו קרוביו ויצאו להחזיק בו כי אמרו יצא מדעתו׃
“예수의 친척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
이 여인은 예수를 통해 자신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한 자신의 회복을 믿은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둘러싸 밀고 밀치는 가운데, 거의 죽게 된 이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군중을 뚫고 들어간다. 그리고 팔을 뻗어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는 그의 옷자락을 만졌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내가 치유될 것이다.’
그녀가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그 즉시 그녀의 혈루가 말랐고, 몸으로부터 괴로움이 가시는 경험을 한다. ‘혈루가 말랐다’는 말은 혼돈을 상장하는 강물처럼 흐르는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아 ‘마른 땅’이 되었다는 우주창조와 모세의 홍해를 건널 때 일어난 기적이 그녀의 몸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예수는 이 여인의 간절한 손길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병들은 자신의 눈길을 보고 자신도 아이의 아픔을 느끼는 공감의 능력을 통해 힘이 빠져나가고 연결되는 전율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그를 에워싼 수많은 군중들을 향해 몸을 돌려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은 예수의 이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셀 수 없는 많은 군중들이 예수를 에워싸고 밀고 당기는 와중에 그에 옷에 손을 댄 사람은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에게 “당신께서 무리가 당신을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니, (그 질문이 말이 됩니까?)라고 대답한다. 예수는 제자들의 이 대답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는 이 일을 행한 자를 보려고 주위를 가만히 돌려 보았다. 그런 후, 그의 시선은 한 여인에게 머물렀다. 그는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그 여인은 자신의 몸에 일어난 새로운 기적을 체험하고 있었다. 이제 혼돈가운데 마른 땅에 드러나, 그녀는 모세가 홍해 바닥을 건너가는 것처럼, 마른 땅에 발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것이다, 그녀는 두려워했고 그 결과 몸을 떨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과 삶에 일어난 기적을 경험한 후, 이 기적에 대해 두려워했고, 자신은 희열에 몸을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참된 기쁨, 고요한 희열이 벅차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예수에게 와서 자신이 예수를 통해 일궈낸 자기-확신과 그 확신으로 기적을 완성한 진리를 덤덤하게 고백하였다.
진리는 자기신뢰를 기반으로 자기행위를 통해 확인해 가는 삶의 여정이다. 그것이 믿음이며 그 믿음이 진리다. ‘진리’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는 ‘알레쎄이아’aletheia로 밖에 번역할 수 없지만, 히브리어 에메쓰, 아람어 아무나의 근본적인 의미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한순간에 입으로 시인하고 망각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가려내고, 그것을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매일 매일 실천하는 상태다. 그러므로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며, 동사의 진행인 형용사다. 영어단어 Believe가 그 의미를 잘 알려준다. 우리가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Liebe)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기꺼이, 강력하여(Be) 정렬시키는 삶이다.
그러자, 이 여인의 행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예수가 이렇게 말한다. 34절이다.
Θυγάτηρ, ἡ πίστις σου σέσωκέν σε·
ὕπαγε εἰς εἰρήνην, καὶ ἴσθι ὑγιὴς ἀπὸ τῆς μάστιγός σου.
ויאמר אליה בתי אמונתך הושיעה לך לכי לשלום וחיית מנגעך׃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으로 들어가라. 네 괴로움에서 이제, 나와 항상 건강하게 되어라.”
예수는 자신이 그를 기적적으로 고쳤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 문장에서 ‘헤 피스티스 수’의 번역과 해석이 예수의 말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너의 믿음’이란 문구는 다음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네가 지닌 신에 대한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네 자신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전자 해석인 ‘신에 대한 믿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신에 대한 믿음을 표시할 수 있을까? 그 믿음은 말인가? 아니면, 마음가짐, 말, 그리고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삶의 태도인가? 신에 대한 믿음은 그 신앙을 가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위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후자해석은 ‘자기-자신을 깊이 신뢰하는 태도’다. 이 여인은, 예수라는 청년에게 달려가면, 주위를 헤아리지 못하고, 쓸데 없는데 흘리는 피를 멈출 수 있디고 믿었다. ‘자기신뢰’다.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믿고, 그것을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예수는 그녀에게 ‘내가 너를 고쳤다’ 혹은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너의 믿음’ 즉, 자기 신뢰가 그를 고쳤다고 말했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나는 내 자신을 신뢰하는가? 무엇이 이 여인을 구원시켰는가? 그것은 여인의 자기신뢰다.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인간으로 수행하는 자는, 이미 구원을 성취한 자다. 그는 언제나 어제 일기에서 말한 ‘고요한 승복’ 게라센하이트Gelassenheit를 유지할 수 있다.
사진
<혈루병 여인>
4세기 마르켈리니우스와 베드로의 지하묘지 벽화
로마 남동쪽 3km 떨어진 비아 라비카나 Via Labic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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