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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30. (木曜日) “고요한 순응”

2025.1.30. (木曜日) “고요한 순응”

     

오늘 아침, 산너머 나를 찾아오는 햇빛에 감사하고 들숨과 날숨을 통해 맑은 공기로 몸을 채울 수 있어 감사하다. 고요하게 눈물이 머금는다. 그제 저녁, 내가 김포에서 홍콩행 에어부산 비행기에 탑승하고, 그 비행기가 20분 지체하지 않고 정시간에 하늘을 날았다면, 나는 이 아쉬운 인생을 공중에서 마감했을 것이다. 아, 오늘에 감사하기 위해, 샤갈과 나는 야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등산화에 맨 아이젠도 소용이 없다. 단맛이 없는 차가운 백설탕 눈이 온 산을 뒤덮고, 지난 이틀 한파에 얼어붙었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발바닥에 미끄럼 방지 가죽을 장착하고 태어난 샤갈은 네 발로 잘도 걸어올라간다.

     

샤갈이 야산을 오르다 갑자기 멈춘다. 저 높은 전나무와 소나무 위에서 뜸부기가 울고 딱따구리가 부리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보금자리를 만들고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새들이 우리의 산 진입을 반응한다. 샤갈이 멈춰서 앉으니, 비로소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자연의 소리를 언제나 우리를 애타게 부르지만, 우리가 바쁨과 중독이라는 귀마개로 귀를 막고 안대로 눈을 가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며칠 전 복음서 공부 한 도반이, 마음 공부를 하면서 자꾸 여러 이미지들이 떠오른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그것들이 자신의 이기심때문인지, 혹은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이정표인지를 물었다. 그 해답도,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그 분에게 있다. 나는 단지, 자신을 더욱 깊이 경청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과 자연에게 친절한지를 점검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 분의 질문은 구약성서 <사물엘 상>에 등장하는 어린 시절 사무엘 이야기와 중첩되었다.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를 찾아가 제사장 훈련을 받기 위해 함께 지냈다. 그런데 한밤중에 누군가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급하게 전달할 때, 상대방을 꼭 두 번 부른다. 사무엘은 이 한 밤중에 그를 부를 자는 엘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엘리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누군가 3번 불렀고, 그 때마다 사무엘이 엘리에게 갔다. 엘리는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고 있다고 확신시켜주었다. 이제 눈을 감고 고요하게 있으니, 다시 하나님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불렀다. 그 때 사무엘이 말한다.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신은 사무엘은 외부에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부른 것이 아니라, 사무엘만 들을 수 있도록, 그의 양심良心을 통해 부른 것이다. 사무엘이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 고요를 유지하지, 자신의 양심에 온전히 승복할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심장에, 자신의 오장육부에 신의 음성이라는 양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일생, 외부의 소리에 경도되어 날뛰며, 그렇저렇산다. 인간이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두 번째 산이 등장한다. 첫 번째 산은 생계를 위해 올라가야 할 산이었다면, 두 번째 삶은 자신이 누구인지 찾기 위한 산이다. 뉴욕타임즈 기자이며 작가인 데이빗 브룩스가 The Second Mountain이란 책에서 말한, 자기-자신이다.

     

우리의 공부는 각자가 정복해야할 두 번째 산을 올라는 나침판이다. 그 나침판의 끝은 항상 북극을 향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흔들림은 자기의심이며 동시에 자기확신이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종말론적으로 살기 위해서, 아침에 명상을 통해 마음을 가지런히 조율하고 산책을 통해 자연의 섭리에 고요히 승복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갈아엎는 작업을 수행한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생각훈련을 위해서다. 생각만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이 자주 생각하는 그 만큼이다. 그러기에 명상은 쓸 데 없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하루에 10분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어제까지 담고 있었던 그 ‘있음’을 걷어내고 ‘없음’으로 만들 때, 엘리야가 들었던 신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명상은 우리 안에 없음이라는 공간을 개간하는 작업이다. 이 개간이 두 번째 산을 정복할 수 있는 우리의 등산장비다. 이 내적인 고요, 그리고 그 고요안에서 들이는 소리에 완전하게 승복하는 삶이 기쁨이다. 기쁨이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삶에 대한 흐뭇한 태도다.

     

독일 신학자이자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 ‘고요한 승복’을 독일어로 게라센하이트Gelassenheit라고 명명하였다. 후에 그의 후계자임을 자처한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도 대화를 위한 준비를 이 개념으로 설명한다. 마음을 고요하게 개간하여, 그 안에 말씀이 뿌려지면, 신의 섭리로 나에게 어울리는 싹, 줄기, 열매를 맺는다. 물론 겨울도 삶의 계절의 중요한 한 부분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샤갈과 내가 야산에 올라 고요하고 평온하게 자신의 섭리에 승복하고 있는 나무들의 기운을 받았다. 한 순간에 우리는 주저앉아 한참 기운을 느꼈다. 신의 구원은 언제 오는가? <애가서> 3.26와 <시편> 25.4-5에 다음과 같이 그 방법을 제시한다.

     

טֹ֤וב וְיָחִיל֙ וְדוּמָ֔ם לִתְשׁוּעַ֖ת יְהוָֽה׃

야훼로부터 오는 구원은, 조용하게 기다리는 자에게 옵니다.

아, 얼마나 달콤한지!

<애가서> 3.26

     

     

דְּרָכֶ֣יךָ יְ֭הוָה הֹודִיעֵ֑נִי אֹ֖רְחֹותֶ֣יךָ לַמְּדֵֽנִי׃

제게 당신의 길을 알려주십시오. 오 주님,

당신의 길을 가르쳐주십시오.

הַדְרִ֘יכֵ֤נִי בַאֲמִתֶּ֨ךָ ׀ וְֽלַמְּדֵ֗נִי כִּֽי־אַ֭תָּה אֱלֹהֵ֣י יִשְׁעִ֑י אֹותְךָ֥ קִ֝וִּ֗יתִי כָּל־הַיֹּֽום׃

당신의 섭리를 믿는 진리로 저를 인도하고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저를 구원하시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을 하루종일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시편> 25. 4-5

     

게라센하이트Gelassenheit, 고요하고 평온한 순응이 오늘, 이번 달을, 2025년을 흐뭇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복음서 도반들이, 이 글을 읽은 도반들이 저와 함께 매일 아침 고요한 순응을 수련하면 좋겠다. 그들에게 루미의 <벙어리 연습>이란 시를 바친다.

     

Dumb Experiment by Rumi

벙어리 실험, 루미

 Break open your personal self

to taste the story of the nutmeat soul.

여러분의 이기적인 자아를 깨뜨려

그 안에 견과류 속살과 같은 영혼의 이야기를 맛보십시오.

     

These voices come from that rattling

against the outer shell.

이 목소리는 당신의 겉을 장식하는 껍데기에

대항하여 덜컬거리는 소리입니다.

     

The nut and the oil inside

have voices that can only be heard

with another kind of listening.

그 안에 있는 견과와 기름은

종류가 다른 들음, 경청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목소리입니다.

     

If it weren't for the sweetness of the nut,

the inner talking, who would ever shake a walnut?

견과의 달콤함이 없다면,

그 내면의 말이 없다면, 누가 호두를 흔들겠습니까?

     

We listen to words

so we can silently

reach into the other.

우리는 그 말을 경청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또 다른 우리로

조용하게 진입할 수 있습니다.

     

Let the ear and mouth get quiet,

so this taste can come to the lip.

우리의 귀와 입을 조용하게 만듭시다.

그래야 이 맛이 우리 입술에 올수 있습니다.

     

Too long we have been saying poetry,

talking discourses, explaining the mystery outloud.

우리는 오랫동안 시와

대화와 신비를 큰 소리로 지껄여왔습니다.

     

Let us try a dumb experiment.

이제 우리가 벙어리 실험을 시도해 봅시다.

     

사진

<벙어리 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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