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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30. (月曜日) “개판과 선명상”

2024.9.30. (月曜日) “개판과 선명상”

     

어제 남양주 봉선사는 야단법석野檀法席이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선명상축제’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반려견과 함께 참석하였다. 교회건, 성당이건, 절이든, 젊은이들이 요즘 좀처럼 종교시설을 방문하지 않는데, 어제는 예외였다. 내가 작년에 보노몽의 박인호 대표와 시작한 M&Pet캠패인이 후원하여 봉선사에 제안하였다. 근엄한 선명상을 반려견과 함께 시작하면 어떨까? 호산스님께서 흥쾌이 수용하셔서, 어제 봉선사에서 그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어제 봉선사 일대는 교통마비로 차가 움직일 수 없었다. 호산스님도 이렇게 반응이 hot할줄 몰랐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렇죠. 가을이 왔는데, 낮에는 온도가 30도가 넘어요!’라고 말하자, 스님은, ‘아니 젊은이들이 많아 왔어요!’라고 말씀하시면 웃으셨다. 나는 날씨를 말하는데, 스님은 사람들의 반응을 말씀하셨다. 스님께서 이전에 시무하시던 영천의 은해사銀海寺에 계실 때부터 키웠던 반려견 쿠니가 우리를 반긴다. 사찰이 개판이었고, 심지어 내가 오후에 강의한 법당에 반려견들이 들어와 견주들과 함께 앉았다. 성스러운 강대상에 개들이 좌정해 있다고 상상해 보시라!

     

이 광경이 너무나도 흥분되고 생경하다. 소멸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처한 실정과 대비되는 희망의 빛이다. 50억년전에 생물이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처음으로 한 생물집단이 자기-보전이라는 숭고한 본능을 거부하였다. 바로, 호모 코리아나Homo koreana, 한국인들이다. 출산율이 0,7로 지난 10년간 세계 꼴지를 자랑스럽게 유지하고 있다. 자신이 수치러운 집단이라는 것을 모른다. 또한 자살율도 단연 지난 세계일등이다. 2위가 현저하게 자살율이 낮은 리투에니아다. 이와 더불어,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구가 꾸준히 늘어, 현재 수면제를 복용하는 인구가 78만명이다. 실로 대한민국은 지옥이고, 그 원인은 무너진 교육과 종교에 있다.

     

어제 봉선사 법당에 젊은이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앉아, 명상하고 반려견을 통해, 인류를 지금까지 지탱해온, 사랑, 자비, 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 봉선사사건이 소멸해가는 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겠다.

     

벨라가 떠난지, 일주일이 되어도, 가슴과 목에 무거운 석면과 같은 것이 눌러 숨쉬기가 불편하다. 오늘 샤갈과 산행을 다시 시작하였다. 벨라와 함께, 지난 12년동안 가던 길이지만, 이젠 샤갈과 나 영혼에 벨라의 영혼을 장착하고 걷는다. 산행길에 샤갈에게 ‘아이러브유’를 100번 반복하였다. 샤갈도 벨라의 부재를 함께 극복할 것이다. 나와 같은 펫-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반려견에 관한 시를 하루에 하나씩 번역하여 선물하고 싶다. 영시를 번역하면서, 내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시들은 벨라가 우리 모두에게 준 선물이다. 나는 이전에 게스트의 Can’t를 번역한 적이 있다. 평범한 일상을 깊이 보고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진 시를 쓰는 게스트가 반려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벨라의 펫-로스 반려인들을 위한 선물 1.

     

The Dog by Edgar A. Guest

개, 미국시인 에드가 게스트 (1881-1959)

     

I like a dog at my feet when I read, Whatever his size or whatever his breed. A dog now and then that will nuzzle my hand As though I were the greatest of men in the land, And trying to tell me it’s pleasant to be On such intimate terms with a fellow like me.

제가 독서할 때, 발밑에 있는 반려견이 좋아요.

크기와 품종과 상관이 없어요

반려견은 손에 자신의 코를, 킁킁거리며 예나 지금이나 디밀죠.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해요.

그리고 저와 같은 친구와 이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기분쫗다고 저에게 말하는 것 같아요.

     

I like a dog at my side when I eat, I like to give him a bit of my meat; And though mother objects and insists it is bad To let dogs in the dining room, still I am glad To behold him stretched out on the floor by my chair. It’s cheering to see such a faithful friend there.

A dog leads a curious life at the best. By the wag of his tail is his pleasure expressed.

He pays a high tribute to man when he stays True to his friend to the end of his days.

제가 식사할 때, 곁에 있는 반려견이 좋아요.

제 고기 한 조각을 주면, 너무 좋아해요.

엄마는 개들이 식당방에 들이는 것을

좋지 않다고 반대하지만, 그래도 저는

식탁 의자에 묶어 식당방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반려견을 보는 것이 좋아요.

거기에서 그렇게 충성스런 친구를 보는 것이 얼마나 살맛나게 만드는지!

반려견은 최선을 다해 호기심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요.

자신의 꼬리를 흔들며 자신이 얼마나 즐기는지 표현하죠.

반려견은 생을 마칠 때까지,

자신의 친구에게 진실한 친구에게,

최고의 존경심을 표현하죠.

 And I wonder sometimes if it happens to be That dogs pay no heed of the faults which men see.

Should I prove a failure; should I stoop to wrong; Be weak at a time when I should have been strong; Should I lose my money, the gossips would sneer And fill with my blundering many an ear, But still, as I opened my door, I should see My dog wag his tail with a welcome for me.

그리고 반려견들이 사람들이 흔히 보는 저의 약점들을

상관하지는지 때때로 궁금해요.

그래서 제가 일부러,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어떨까요?

혹은 몸을 구부려 못된 짓을 해 볼까요?

제가 강해져야 할 때, 약한 모습을 보여줄까요?

제가 돈을 모두 잃어, 사람들의 험담이 냉소적이고

제가 실수한 많은 것들로 사람들의 귀를 채워볼까요?

그러나, 아직도 기다리며, 문을 열었을 때,

제 반려견이 저를 반기며 꼬리를 흔드는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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