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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29.(日曜日) “반려견의 힘”The Power of the Dog (1922) by Rudyard Kipling반려견의 힘, 영국 소설가,시인 러디야드 키플링 (1865-1936)     

2024.9.29.(日曜日) “반려견의 힘”

The Power of the Dog (1922) by Rudyard Kipling

반려견의 힘, 영국 소설가,시인 러디야드 키플링 (1865-1936)

     

우정과 자비를 알려준 벨라를 보내고, 저와 똑같은 기쁨과 슬픔을 경험할 반려견 가족을 위해, 반려견에 대한 시를 자주 번역하여 올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늘 오후에는 경기도 봉선사에서 “반려견과 함께하는 선명상축제”에 참가하여 “인간중심에서 생명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인간과 개의 유구한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중심의 문화의 폐해가 자살률과 출산률로 지난 10년동안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생명중심사상이라는 산소 호흡기에 대해 이야기할 작정이다.

     

생물에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이다. 자신이 잠시 산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간은, 슬픔으로 가득 찬 인생을 헤쳐나갈 세 가지 비상 장비를 추구한다: 어려움을 들어주는 우정友情, 상대방을 위해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비慈悲, 지금-여기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에 집중하는 몰입沒入이다. 세상의 반려견은 이 세 가지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온 천사들이다.

     

소설 <정글북>과 시 <만약>으로 유명한 러디야드 키플링은 이미 슬픔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에, 또 다른 슬픔, 너무 짧은 삶을 살고 떠나는 반려견을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 슬픔은 변려견이 생전에 주는 기쁨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으로 들어온 강아지는, 그 첫날부터, 우리에게 우정, 자비, 몰입에 대해 배운다. 신은, 묘하게, 반려견의 수명은 14-5년으로 잡아놓았다. 반려견이 주인보다 훨씬 일찍 세상을 떠난다. 반려견의 짧은 삶은,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는 동시에, 무한한 슬픔을 준다. 이미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에,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더해 준다. 4만년전 빙하로 덮인 북유럽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늑대-개는 서로 의지하면서 살자고 약속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내려오는 이 관계는 종을 넘어서 서로에게 최선을 만들어 주는 공진화과정을 거쳐왔다.

     

우리의 인생 스승, 반려견에 떠나면, 그 사랑, 짖는 소리, 꼬리 흔들기, 웃는 얼굴, 신나 뛰는 걸음걸이.. 이런 것들이 영원히 침묵한다. 이 침묵이 가져다주는 슬픔은, 자연스럽게 인간을 찾아오는 다른 슬픔보다도, 심지어, 사랑하는 일가친척의 죽음보다고 더 견딜 수 없다. 반려견만이 그 주인을 영원히, 그리고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이다. 키플링은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가져오는 반려견의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There is sorrow enough in the natural way

From men and women to fill our day;

And when we are certain of sorrow in store,

Why do we always arrange for more?

Brothers and Sisters, I bid you beware

Of giving your heart to a dog to tear.

우리 모두에게, 이 세상에는 원래 슬픔이 충분합니다.

주어진 인생을 충분히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켜켜이 쌓인 슬픔을 확신하면서도,

왜 우리는 항상 더 많은 슬픔을 준비합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반려견에게 심장을 내주었기에,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Buy a pup and your money will buy

Love unflinching that cannot lie--

Perfect passion and worship fed

By a kick in the ribs or a pat on the head.

Nevertheless it is hardly fair

To risk your heart for a dog to tear.

강아지 한 마리를 사십시오. 당신이 돈을 주고 산 그 강아지로,

당신은 거짓말하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사신것입니다.

자신의 갈빗대를 계속차고 당신이 그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 주어도,

그 반려견은 당신에게 완벽하게 열광하고 당신을 신처럼 숭배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심장을 반려견에게 내어주고,

눈물을 흘리는 슬픔은, 세상에서 일어나서는 않되는 일입니다.

     

When the fourteen years which Nature permits

Are closing in asthma, or tumour, or fits,

And the vet’s unspoken prescription runs

To lethal chambers or loaded guns,

Then you will find-it’s your own affair--

But… you’ve given your heart to a dog to tear.

자연이 허락한 십사년이

천식, 종양 혹은 발작으로 마감될 때,

수의사가 무통 도살실이나 권총으로 마감하자고

암묵적으로 처방전을 내릴 때,

그 때 당신은 알게 될것입니다. 물론 당신이 결정해야할 일이죠.

그러나,...당신이 반려견에게 심장을 내어주었기에, 눈물을 흘릴것입니다.

     

When the body that lived at your single will,

With its whimper of welcome, is stilled (how still!).

When the spirit that answered your every mood

Is gone-wherever it goes-for good,

You will discover how much you care,

And will give your heart to a dog to tear.

당신의 의지로 살았던, 그 육체가

당신을 반기며 킁킁대던 소리가 조용해 졌을 때, (아, 얼마나 조용한지!)

당신의 모든 기분에 반응하던 그 영혼이,

어디론가, 영원히 가버렸을 때,

당신이 얼마나 그 반려견을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반려견에게 심장을 내어주었기에, 눈물을 흘릴것입니다.

     

We’ve sorrow enough in the natural way,

When it comes to burying Christian clay.

Our loves are not given, but only lent,

At compound interest of cent per cent.

Though it is not always the case, I believe,

That the longer we’ve kept ’em, the more do we grieve:

For, when debts are payable, right or wrong,

A short-time loan is as bad as a long--

So why in-Heaven (before we are there)

Should we give our hearts to a dog to tear.

우리에게 이미 세상의 슬픔은 원래 충분합니다.

우리가 흙으로 돌아갈 반려견을 묻을 때,

우리의 사랑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차용된 것입니다.

한푼 두푼 복리도 더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돈으로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반려견을 오래 간직하면 할수록, 그 만큼 더 우리는 슬픔니다.

왜냐하면, 그 빚을 갚을 수 있을 때, 그것이 옳던 그르던,

단기융자도 장기융자만큼, 한 없이 슬픈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가지 않는 하늘이시여!

왜 우리가 심장을 반려견에게 주어,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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