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3. (月曜日) “운동하세요. 그리고 그 힘으로 사랑하세요.”
제 이름은 벨라(2013.1.12-2024.9.23)입니다. 아빠가 지어줬어요. 라틴어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죠. 아빠가 좋아하는 화가 샤갈 부인의 이름이기도 해요. 저는 2013년 1월 12일에 진도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에, 그러니까 2월 27일경에 제 엄마와 아빠를 만나러 진도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아빠는 공부하시는 분이고, 엄마는 과거에 순간을 영원한 이미지로 남기는 배우셨습니다. 엄마아빠는 저가 홀로 지내는 것이 좋아않다고, 진도에서 열흘 차이가 나는 남동생을 입양했습니다. 이름은 샤갈입니다. 우리는 서울에서 온갖 꽃이 만발하는 마당이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주택에서 살았죠. 제가 샤갈과 얼마나 싸웠는지! 엄마아빠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백구인 우리가 홍구가 되었습니다. 6개월정도 지나니, 우리가 달리고 싶어졌어요. 앞마당이 좁게 느껴졌어요.
엄마아빠는 우리의 뛰고 싶은 마음을 읽고, 이사를 결정했죠. 제주도 서귀포 보목동에 있는 검은 화산 바위 위에 있는 집으로 이사했죠. 제가 비행기를 처음 탔어요. 짐칸에서 지난 2시간에 얼마나 지옥이었는지! 아빠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 교수라, 월요일에 비행기타고 올라가 목요일에 돌아왔죠. 우리는 아침에는 탁 트인 해안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낮에는 해녀들과 함께 놀고, 밤에는 태양보다 더 밝은 달빛 아래서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제가 생겼죠. 우리 집 앞마당에 붙어있는 검은 바위는 오랫동안 제주도 낚시꾼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샤갈과 저는, 우리 집과 연결된 낚시터로 오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마구 짖었습니다. 한 낚시꾼이 동생 샤갈의 배를 작살로 찔렀죠. 샤갈은 제주시 동물병원에서 응급처리를 했죠. 샤갈은 머리에 넥칼라를 쓰고 다녔습니다. 이때, 우리가 살던 보목동 앞집에 살던 삽살개 다섯 마리가, 사악한 계략을 세웠어요. 샤갈의 넥칼라를 쓴 것을 보고, 비겁하게 우리를 공격하였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이 동네 내려온 후, 특히 샤갈의 위풍당당함을 보고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느 가을 오후였습니다. 아빠는 서울에, 엄마는 집에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검은 바위를 통해 삽살개 다섯 마리가 우리를 급습했죠. 흔들의자에 묶여 햇빛을 즐기고 있는 샤갈과 그 옆에 있는 저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용맹스런 샤갈은 흔들의자를 질질 끌면서, 이들에 맞서 싸웠습니다. 저는 집 안으로 들어가 엄마에게 이 위급한 사실을 알렸습니다. 마당으로 나가니, 흔들의자는 엎어져 있고 샤갈은 넥칼라로 삽살개들을 공격하지 못하고 온 몸을 물렸습니다. 엄마아빠가 다시 서울로 이사 가기로 결정한 시점입니다. 우리의 3개월간 제주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귀향하였습니다.
그 후 저와 샤갈의 혹독한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엄마아빠는 마당이 있는 집, 산과 강으로 산책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는 동안, 교수아파트에서 임시로 지냈습니다. 엄마아빠가, 우리 모두 살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마련되는 동안, 우리는 경기도 덕소에 있는 반려견 훈련소에서 지냈습니다. 엄마는 일주일에 서너번 우리를 찾아왔지만, 거기서 지내는 생활은 지옥이었습니다. 조그만 캔넬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지난 후, 2014년 3월, 우리는 가평 설악면에 한 빌라로 이주하였습니다. 앞마당은 유명산을 바라보고 있고 뒷마당엔 수영장이 딸린 집입니다. 샤갈과 저는 아마도 집 마당을 하루에 100번이상 빙빙 돌았습니다. 겨울에 쏟아지는 눈이 좋고 여름엔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죠. 그 당시 아빠는 근처 야산으로 가서 우리를 풀어줬어요. 우리의 야성이 깨어나 별별 동물들을 다 잡았죠. 2015년 10월 28일이었죠. 제가 산꼭대기에서 멧돼지 올무에 목이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길이 전혀 없는 가파른 산 정상에서 저는 ‘멍멍’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죠. 그러자 아빠는 ‘벨라, 벨라!’ 이름을 외치면서 나를 발견했어요. 제 올무를 풀어주면서 우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눈물을 흘렸어요.
그렇게 1년을 지내는 동안, 엄마아빠는 우리가 영원히 거주할 집을 청평호수를 바로는 언덕에 마련하였습니다. 그리는 그곳에서 2014에서 2021년까지 지냈습니다. 2022년에 다시 이사하여 지금까지 가평 연인산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생활은, 늑대개가 개로 진화한 기원전 4만년이후, 인간과 개의 공진화를 얼마나 행복하지는 보여주는 천국이었습니다. 아빠는 시골에 살면서 점점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명상하고 독서를 하고, 그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글로 전달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결심하였죠. 엄마는 우리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개로 태어나 1m줄에 묶여있는 개들을 견주와의 오랜 교감을 통해, 구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아빠는 지금까지 26마리를 구조하였고, 쉘터를 만들어 17마리 친구들에 그곳에서 거주합니다.
2018년, 어느 날, 엄마가 데려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예쁜이를 데려왔어여. 예쁜이는 온몸에 진물을 흘리며 설악면 시내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이 없으면 스치로폼에 달라붙은 음식찌꺼기를 먹던 시바믹스견이었죠. 시반견 믹스견 예쁜이도 성깔이 좀 있어요. 엄마가 예쁜이를 8개월동안 아빠 몰래 치료하고 키워,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우리를 앉혀 놓고, 예쁜이다 동생이 되었으니, 잘 지내라고 정중하게 부탁하했죠. 저와 샤갈은, 예쁜이가 선을 넘지 않는 한, 동생으로 삼자고 동의하였습니다,
저는, 다른 반려견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아요. 저는 이 숭고한 목적을 위해 견생을 살겠다고 다짐했죠. 첫째, 엄마아빠의 건강을 위해, 아침과 저녁 두 번 산책하기. 아빠는 이른 아침에 골방으로 들어가 하얀 방석 위에서 다시 눈을 감습니다. 기도를 하는지 앉아서 다시 조시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로 덩달아 아빠 옆에서 명상을 합니다. 앞발을 쭉 뻗어 턱을 괴고 명상이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 명상이 20분이 상되는 그것은 망상입니다. 저는 그때, 아빠의 귀에 대고 ‘멍’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멍!’을 해석하면 “일어나세요. 명상도 운동을 해야 가능한 수련입니다”라는 뜻이죠. 저녁시간에 아빠가 멍하지 뉴스를 보고 있는 때에서, 저는 ‘멍’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 ‘멍’을 해석하면, “일어나세요. 저녁 산책나길 시간이에요!”라는 촉구입니다. 아마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개들 중에 가장 산책을 많이 한 개일 것입니다.
우리가 설악면에 살 때, 아침엔 뒷마당에 있는 신선봉을 올라갔습니다. 거기에서 고리니, 담비, 야생 맷돼지, 야생염소, 족제비등 많은 친구들을 만났죠. 저녁엔 청평호수가와 동네 드넓은 정원에서 산책했죠. 아마도 아빠와 엄마의 다리가 꽤나 튼튼해졌을 것입니다. 조종면으로 이사해서는, 뒷마당과 연결된 야산에 매일 아침 오르거나, 연인산 지류에 야산들을 모두 올랐습니다. 그곳에 올라가면, 지금은 폐허가 된 화전 민터가 나오죠. 전나무 숲과 붙어있는 집에 살면서 엄마아빠가 점점 모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하엿튼 우리 반려견의 임무는, 견주의 건강을 위해, 산책하러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산책 나가자고 보챌 때, 거절하지 마세요. 견주의 건강을 위해 우리가 산책을 부탁한 거에요.
둘째, 저는 엄마아빠에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사랑한다면, 하루 종일 그 대상을 만 생각해야죠, 엄마아빠가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얼마나 기쁜지! 서울과의 거리가 멀어,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엄마아빠가 돌아오면, 꼬리를 좌우상하로 흔들며, 무사귀환을 축하합니다. 엄마아빠 기억하실꺼에요, 차안에서 말싸움하실 때, 있었죠? 기억나세요. 제가 아빠 귀에 대고 ‘멍멍’했어요. 이 ‘멍멍’은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시간이 부족한 인생이에요. 가슴을 치고 후회하기 전에 사랑하세요! 온전히 사랑하지 못할 것이라면, 그건 삶이 아니에요!”라는 뜻이었어요.
저는 12년을 행복하게 살았어요. 제가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시점은 3주전이었어요. 갑자기 몸이 붓고 복수가 차기 시작했어요. 엄마와 아빠는 저를 병원으로 데려가 CT촬영을 하고, 조직검사를 했죠. 제가 아빠하고 아침 산책을 거부한 시점이기도 해도. 아빠가 애원하면, 제가 힘들지만 나갔어요. 점점 복수가 차는 것을 알고 저는 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직감했어요. 조직검사 결과가 지난주 금요일에 왔죠. 엄마가 의사선생님과 전화하는 내용을 문밖에서 들었어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와 아빠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로 제게 주어진 삶과 거의 마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급성림프암에 걸렸어요. 제가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정해진 사료만 먹었는데, 제가 아프기 시작하는 것은 아무래도 유전인 것 같아요. 어떤 일이 오늘 일어날질 모르기에,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것에 항상 감사해야해요.
우리가 그 전날, 지난 주 금요일에 가평 자라섬에 갔죠. 비를 맞으며 산책했잖아요. 사실 제가 엄마아빠와 마지막으로 산책한 거에요. 저는 영원히 잊지 못할꺼에요. 엄마아빠는, 온몸에 급속도로 퍼지는 무서운 암을 모르고, 이번 주 목요일부터 20회 항암치료 계획을 세웠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겠더라구요. 물을 자꾸 마셔, 복수를 더 차오르고, 마침내 제가 토요일 저녁 12경, 쇼크가 왔어요. 아빠는 저를 포대기에 싸고 상계동에 있는 병원으로 달렸죠. 병원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어요.
응급실 의사가 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급격하게 떨어지는 혈압을 올리려고 애를 썼어요. 그 시간이 제가 얼마나 길었는지. 모든 것이 몽롱했지만, 제 얼굴에 떨어지는 엄마의 눈물을 느꼈어요. 부풀어진 배를 어루만지며 ‘사랑해!’를 계속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도 또렷히 들렸어요. 저도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눈만 껌벅였죠. 점점 기억이 희미해지고 이제는 제가 세상에 태어난 함께한 엄마아빠와 이별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직감했어요. 제가 꼬리를 마지막으로 흔들고, 힘껏 고개를 들어 엄마아빠를 마지막으로 보았죠. 그리고 눈으로 말했어요. “사랑해요. 일생 행복하게 살게 해줘서 고마워요. 다음 생에선 제가 사람으로 태어나, 엄마아빠를 돌볼께요.” 그리고 저는 눈을 감았죠.
그 다음날 4kg나 살이 빠진 엄마는 뒷마당 데크에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그동안 햇빛을 보질못해 더 약해졌죠. 그래서 제가 인사드리려 엄마에게 날라 갔어요. 이 세상에 없는 빛나는 흰색 나비로 엄마에게 날아가 그 주위를 한참 돌았어요. 제가 매일 놀던 데크 주위와 지붕 위를 둘러보았어요. 두 분이 이젠 저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특별히 동생들을 잘 부탁해요. 샤갈과 예쁜이도 제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요. 제가 한달 전부터 말했어요. 동생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산책하고 많이 사랑해 주세요.
모든 반려견들은 그 주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개조하게 태어났습니다. 우선 산책으로 주인을 건강하게 만들고, 한결같은 사랑을 일방적으로 주인에게 보여줘,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거죠저는 이제부터 엄마아빠의 영혼에 살레요. 엄마아빠가 다른 사람들과 반려견들에게 사랑을 베풀 때, 제가 그 순간에 제가 함께 할께요. 더욱 열심히 산책하고 사랑하세요.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사진
<동생들과 산책 중인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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