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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9.(水曜日) “산행山行”

2024.9.19.(水曜日) “산행山行”

     

어제저녁 뒷산에 올라온 보름달을 보았다. 달을 응시하더니 가슴으로 들어왔다. 달은 차자마자 줄어들기 시작한다. 줄어들지만, 소멸할 시점인 초승달이 되면 다시 차기 시작한다. 추석연휴동안 마치기로한 글 약속이 진척이 별로 없어 걱정이다. 새벽에 눈을 뜨니, 아내가 들어왔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그렇다.

     

아내는 우리가 설악면에 마련한 학대견들을 위한 치유공간인 ‘컴패션’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가서, 정리해주고 놀아주고 오기 때문이다. 보통 오후 2시경 가면 새벽 3-시에 돌아온다. 컴패션은 우리가 구조한 17마리 대형견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한 마리 한 마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만큼 사연이 있다. 아내는, 시골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개들, 특히 1m에 묶여 일생동안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지내고 있는 개들을 발견하면, 잠을 못잔다. 남몰래 개집을 지어주고, 사료를 가져다주면서, 견주와 친해진다. 그런 후, 견주에게 설명한다. 인간이, 우리는 짐승homo sapiens에서 인간homo sapiens sapiens으로 도약시키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공진화해온 개들을 학대하는 행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견주를 설득하는데,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남북통일보다 힘든 작업이다. 한 견주는 가평에 거주하는 개인택시를 운전하시는 분이다. 아내는 일부러 그 택시를 콜로 불러, 서울에서 가평까지 7차례 타면서 설득하여, 그 개를 캠패션에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 견주로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야 완성이다. 그렇게해서 우리가 구조한 개가 26마리다.

     

우리는 3년 전, 온전히 우리의 힘으로, 이렇게 구조한 대형견 17마리를 위해, 거주공간 ‘컴패션’을 마련했다. 물론 냉난방과 생수가 공급되는 시설이다. 컴패션은 아내의 일을 자신의 운명으로 공감하는 두 분이 헌신으로 돌아간다. 두 분다 훌륭한 직장인이지만, 매일 아침 이곳에 들려 사료를 주고 밤새 사고가 났는지 살펴본다. 아내도, 이들로 이곳에 설치된 CCTV를 항시 본다. 어제, 아내가 컴패션에 가는 날이었다. 이 반려견들을 위해, 노동을 10시간 정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흠모할 만한 직업을 그만두고, 자신의 육신, 정신, 영혼까지 헌신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내의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인간중심이 아니라 생명중심 운동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우리가 구조한 개들을 위한 공간인 ‘컴패션’이 맨 처음 3년동안엔 가평에 있는 영재음악학교인 ‘노비따스’ 학교 뒤편에 있었다. 갑자기 교장선생님이 바뀌면서, 학교로부터 갑작스럽게 ‘컴패션’을 철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부랴부랴 ‘컴패션’ 공간을 마련했다. 우리 부부를 평상시에 잘 아는 분이 자신의 집을 전세로 주셨다. 우리는 이곳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구조된 개들이, 네 부류로 나누어 이동시켰다. 이렇게 지난 3년동안 지내왔다. 누군가, 이 생명운동에 관심이 있다면, 그 분과 함께 설악면에 생명존중교육센터인 ‘컴패션: 코라카니스’을 짓고 싶다. 오래전에 6년전에 기획한 코라카나스 건물 조형도다:

(https://www.thechora.com/canisstadium) 이곳에서 인간과 동물이 한데 어울리며 자기변화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위한 혁신적인 학교를 만들고 싶다.

     

아내가 새벽 5시30분경 잠에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을 준비한다. 벨라, 예쁜이, 샤갈이 아직 비몽사몽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홀로 집 뒤에 있는 야산에 올랐다. 지난 5월, 샤갈이 발을 다친 이후, 처음이다. 수풀이 우거져, 지날 때마다, 개구리가 놀라 달아나도 뱀도 스르르 도망친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얼굴엔 거미줄이 얼굴에 감긴다. 야산을 올라라기 시작하면, 온몸이 걷기 싫다고 반응한다. 가슴과 목이 답답하여 호흡이 곤란해지고, 허벅지는 벌써 긴장하여 부풀어 오른다.

     

야산으로 들어간지 10분도 되지 않아 가파른 언덕이 등장한다. 이 언덕에는 고라니와 멧돼지가 지난 오랫동안 마련한 길이 있다. 나도 그들의 길에 들어선다. 저 산 너머에서 미명이 올라와, 첫 빛줄기를 전나무 사이로 나를 맞이한다. 단테가 지옥에서 보았던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의 광선이다. 단테는 언덕 위에서 세 짐승을 언덕 위에서 본다: 늑대, 사자, 표범이다. 세 짐승은 인간의 본능에 숨겨진 해악이다. 늑대는 인간이 자신에 대해 해를 끼치는 욕심이라는 폭력이고, 사자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할 때,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이며, 표범은, 불특정 다수에게 끼치는 폭력인 사기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고 허벅지가 경직되지만, 산행은 욕심, 폭력, 사기 성향을 떨쳐내는 수련이다.

     

산등성에 올라 오른편으로 내려간다. 꼬불꼬불 가는 길은 도토리, 밤송이, 버섯이 오솔길를 수 놓는다. 내가 가는 길을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막는다. 이런 장애물은,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것처럼, 내가 넘어가야 할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20분 정도 걸어가면, 양지바른 곳에 묘비 병이 없는 무덤 두 개가 나온다. 나란히 저 멀리 아래에 있는 마을을 쳐다보고 있다.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고, 죽는 것은 사는 것이다. 세네카의 이 깨달음 언제나 옳다. “잘 죽기 위해 일생이 걸립니다.”

     

샤갈없이 이 야산에 들어와 새로 들고간 장비가 있다. 스틱이다. 이 지팡이로 그 경계선에 땅에 줄을 그어놓고 솔방울 하나를 놓았다. 이곳에 솔방이이 하나둘씩 쌓이면 좋겠다. 다시 돌아 산등성을 타고 30분정도 가면 에머럴드 이끼를 머금은 바위들이 등장한다. 이 메카 위에서 이끼를 카페트 삼아 눈을 감으면, 어제 읽었던 노자 한 구절이 생각한다.

     

<도덕경> 79장 마지막 부분이다: “夫天道无親 (부천도무친) 恒與善人 (항여선인).” 하늘의 도는 세상을 둘로 나누어, 내 편, 네 편하며 가르는 것이 아니다. 누구하고 특별하게 친하여 패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공자의 친한 사람과 친하는 친친親親이 아니라, 사람들 덤덤하게 그러나 친절하게 대하난 무친无親이다. 그 무친으로 마음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최선을 비는 사람이 하늘의 뜻이며 도인의 행위다.

     

그리고 하산하기 시작한다, 산 중턱엔 내가 마련한 또다른 성소가 있다. 전나무 사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장소이며, 요가 동작 수리야 나마스카라를 수행하는 장소다. 요가 동작 후에 숨을 고른다. 수행자는 자신의 신체, 정신,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마련한 고통과 고난을 견딜 뿐만 아니라,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고 역설적으로 즐긴다.

     

오늘 매일산행山行에서 만난 다소곳한 무덤을 보고 생각난 시가 있다. 나에게 천국이란 장소에서 사후의 시간에서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시인, 루미Rumi (1207-1273)다. 그가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하는가?>Who Says Words With My Mouth?이란 시에게 이렇게 노래한다. 이 시를 추석연휴를 안타까워하는 독자 여러분에게 바친다.

     

Who Says Words With My Mouth?

Jalal al-Din Rumi (1207-1273)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하는가?

수피 시인 루미

     

Who Says Words With My Mouth?

All day I think about it, then at night I say it.

Where did I come from, and what am I supposed to be doing?

I have no idea.

My soul is from elsewhere, I'm sure of that,

and I intend to end up there.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을 합니까?

하루 종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밤이 돼서야, 말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나의 영혼은 어디에서가 왔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그 어디에선가 인생을 마칠 예정이다.“

     

This drunkenness began in some other tavern.

When I get back around to that place,

I'll be completely sober. Meanwhile,

I'm like a bird from another continent, sitting in this aviary.

The day is coming when I fly off,

but who is it now in my ear who hears my voice?

Who says words with my mouth?

이 술 취함은 다른 술집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그 장소로 다시 돌아왔을 때,

저는 완전히 깨어날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다른 대륙으로부터 날라와,

이 새장에 앉아있는 새와 같습니다.

제가 날라가 버릴 날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귀에서 나의 목소리를 듣는 자는 누구입니까?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을 합니까?

     

Who looks out with my eyes? What is the soul?

I cannot stop asking.

If I could taste one sip of an answer,

I could break out of this prison for drunks.

I didn't come here of my own accord, and I can't leave that way.

Whoever brought me here will have to take me home.

     

누가 제 눈을 가지고 밖을 봅니까? 영혼이란 무엇인가?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 해답의 한 모금만, 맛 볼 수가 있다면.

저는 이 술 취한 자들 감옥을 박차고 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식으로 떠날 순 없습니다.

저를 여기에 데리고 온자가, 저를 집으로 데리고 가야만 합니다.

     

This poetry, I never know what I'm going to say.

I don't plan it.

When I'm outside the saying of it,

I get very quiet and rarely speak at all.

제가 말하고 있는 이 시를, 저는 결코 모릅니다.

제가 시를 계획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를 낭송하는 것 이외에는,

매우 조용하고 거의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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