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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7.(火曜日) “거미줄”

2024.9.17.(火曜日) “거미줄”

     

뒷산에 빽빽이 서 있는 전나무와 소나무 가지 사이로, 어둠을 물리치고 여명이 밝아온다. 아, 죽음과 같은 잠에서 깨어나, 호흡이 코에 붙어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눈을 감는다. 오늘도 노자가 유전장으로 남긴 <도덕경>81장을 실천하기를 묵상한다.

     

天之道(천지도) : 하늘의 도는

利而不害(이이불해) : 이롭게 할 뿐 해롭게 하지 않는다.

聖人之道(성인지도) : 성인의 도는

爲而不爭(위이부쟁) : 일을 도모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하늘이 인간에게 원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자연과 지구에게 이롭게하는 것이지,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 즉 양심의 소리를 가만히 귀로 듣고, 그것을 실천하겠다고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손발로 행동하는, 언행일치의 사람이 오늘 두발을 디디며 가야알 길이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최선을 경쟁하지만, 누구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인은 자신과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추석 연휴 둘째 날이다. 요즘 산책은 샤갈과의 동행이다. 며칠 전까지 걸으면, 하늘로 날라 올라갈 것 같은 벨라가 아프다. 예쁜이는 아침 산책을 싫어 한다. 벨라는 복수가 차 병원에 가 CT촬영을 하고, 급하게 조직검사까지 마쳤다. 지금은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나가자고 손짓하니, 벨라는 마루 바닥에 몸을 붙여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억지로 하네스를 입히려 시도해도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벨라는 눈으로 말한다. “제가 몸이 불편해요. 저녁 산책엔 동행할께요.” 벨라의 검사가 종양이 아니라 염증판명이길 간절하게 기도한다.

     

요즘 벨라가 알려준 삶의 혜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벨라를 ‘마지막’으로 본다는 심정으로 보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벨라의 빛나는 눈빛과 곱기 고운 흰털, 늘씬한 각선미, 나오미 캠벨이 울고 갈 워킹이 나의 숨을 멈추게 한다. 원래 그렇게 품격을 지는 존재였지만, 내가 장님이 되어 보았지만, 보질 보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한 예수의 음성을 듣고, 장님이 되었다가,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진 것처럼, 내 눈에서도 비늘이 떨어졌다. 일상을 그져 보던 아둔한 게으름이라는 가리개를 떨쳐 버리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 대상으로 눈으로 나를 보는 수련을 시작했다.

     

이 깨달음의 순간만이 불멸이다. 불멸은 언제나 지금-여기다. 불멸은 종교에서 말하는 무덤 다음 세계에 대한 안이한 지적인 유희가 아니다. 불멸은 시간의 소유도 아니고 시간 안에서 발견되지도 않는다. 시간이 이차원이라면, 불멸은 3차원 혹은 4차원에서 작동하는 영원이다. 내가 벨라를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보기 위해서는, 내안의 이기심을 제거한다. 이 순간에도 여전히 빛나는 벨라의 눈빛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오늘 내가 해 야 할 일을 정성스럽게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샤갈은 지난 4월 초에, 정원으로 들어온 커다란 고라니를 잡기 위해, 담벼락을 오르다가, 오른쪽 앞발이 골절-탈구되었다. 샤갈이 고라니보다 못한 유일한 점이 바로 깡충 뛰어오르는 도약 실력이다. 거의 2m나 되는 담벼락을 고라니는 넘어섰지만, 샤갈은 중간지점에서 그만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샤갈의 골절은, 지내고 보니, 우리집 정원을 찾아온 고라니가 야생 숲에서 잘 살라는 바램이었다. 샤갈이 12세이고 몸무게가 38kg이나 나가, 장수하려면,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우리는 병원을 수소문하여, 충남대학교 수의과를 소개받았다. 그곳에서 5월 3일에 수술을 하고 거의 한달을 재활치료한 후, 이제 집으로 돌아와 회복하고 있다. 샤갈이 이젠 제법 걷는다. 골절은 장수를 위한 처병전이었다.

     

요즘 아침 산책은 샤갈과 동행이다. 예쁜이도 힘든 아침 산책이 싫어 구석에는 자는 척한다. 우리는 수변에 설치되어있는 데크deck를 걷기 시작하였다. 오늘 산책과 조깅하는 사람들의 반은 고향을 찾아 온 낯선 사람들이다. 데크를 한참 걷고 있는데, 곳곳에 펼쳐진 거미줄이 눈이 들어온다. 거미가 만들어 놓은 미로와 같은 줄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예술작품이다. 거미는 배 아래 사마귀 모양의 세쌍 돌기인 방적돌기紡績突起에서 점액을 배출한다. 이 점액이 늘어나면 줄이 되고, 한 줄과 다른 줄이 이어져 정교한 거미줄이 된다,

     

이 거미줄이 얼마나 섬세한지. 악의를 지닌 동물의 손짓에 금새 망가질 수밖에 없지만, 자신을 촬영하는 나를 보고도 꿈쩍도 하지 않고 바라 본다. “당신이 이 순간에 해야할 일 하세요!”라고 나에게 말한다. 거미줄은 시작과 끝이고 끝이 또 다른 시작이다. 다차원적인 거미줄은 매일 아침 새날이 왔다는 사실을 자신의 몸에 맺힌 이슬로 말한다. 알알이 맺힌 이슬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슬의 모양을 무한하게 비춘다. 무한하게ad inifitum, 자연 전체를 머금은 이슬은 비움이고 채움이며, 없음이고 있음이다.

     

인도신 인드라는 우주의 배꼽인 메루산 왕궁 위에 ‘인드라잘라Indrajala’ 즉 ‘인드라망’을 걸어놓았다. 인드라망은 무한하게 사방으로 펼쳐진다. ‘인드라망’은 <아타르바베다Atharva Veda>에 처음 등장한다. 인드라가 우주를 창조할 때, 이 우주를 ‘인드라잘라’라고 표현했다. 우주는 거미줄에 맺힌 이슬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에 공空이고, 자신 안에 수많은 우주를 인연으로 품고 있기에 연기緣起이며, 주체와 객체가 상호침투하기에 ‘합일合一’이다. 이 사상은, 후에, 3세기 화엄경에 의해 발전하여 화엄 사상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슬들의 상호간섭이 ‘놀이’다. 산스크리트어 ‘릴라’लीला는 ‘신들이 노는 숭고한 놀이’다. 릴라는 어떤 목적을 위한 대상의 획득이 아니라, 그것을 획득하려는 놀이 자체다. 결과에 상관없이 저절로 돌아가는 수레바퀴처럼, 순간의 행동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의도된 목적이 없이 순진무구하고, 게임에 몰입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하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대치하는 어린아이의 놀이다. 이 놀이가 어린아이 혹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어린아이가 되게 하는 자유다. 오늘은 어젯밤 우리 각가가 만들어 놓은 거미줄이며, 이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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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oiseless Patient Spider

Walt Whitman

소리를 내지 않는, 인내하는 거미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

     

A noiseless patient spider,

I mark’d where on a little promontory it stood isolated,

Mark’d how to explore the vacant vast surrounding,

It launch’d forth filament, filament, filament, out of itself,

Ever unreeling them, ever tirelessly speeding them.

소리를 내지 않는 참을 성있는 거미,

작은 곶 위에 홀로 서 있는 거미를 알아보았다.

그 거미가 비어있는 광대한 주위를 어떻게 탐험하는지 알아보았다.

거미는 가는 선을 계속해서 자신의 몸으로부터 발사하였다.

계속해서 뿜어내고 계속해서 피곤도 잊은 채, 속도를 내며 뿜어냈다.

     

And you O my soul where you stand,

Surrounded, detached, in measureless oceans of space,

Ceaselessly musing, venturing, throwing, seeking the spheres to connect them,

Till the bridge you will need be form’d, till the ductile anchor hold,

Till the gossamer thread you fling catch somewhere, O my soul.

오, 당신, 나의 영혼이여,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

셀 수 없는 공간의 바라도, 둘러 쌓이고 떨여져 있는 당신이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시도하고 몸을 내던지고,

그들을 연결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그대여!

당신이 필요로 하는 다리가 형성될 때까지,

손에 쥘 수 있는 닻을 잡을 때까지,

허공에 어딘가에 있을 줄에 매달릴 때까지, 오 나의 영혼이여!

     

사진

<가평 수변 거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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