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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8.8. (木曜日, 黎明默想) “평온平穩”

2024.8.8. (木曜日, 黎明默想) “평온平穩”

     

누구나 예루살렘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곳은 우리 각자의 최선最善이 숨겨진 장소이며 시간이다. 누구나, 예루살렘을 찾기시작하면, 이미 자신의 삶에서 실현되는 궁극의 장소다. ‘샬롬shalom’이란 단어는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누구를 반갑게 만날 때 나누는 ‘안녕’ 정도 인사이지만, 사실은 그 보다 깊은 의미를 품고 있다. 아주 오래전, 고대 바빌로니아 신전문서, 특별히 대차대조표에 등장하는 경제용어다. 당시 대부분 사람들은 신전에서 토지나 가축을 빌려 노동하고 소출된 농작물을 세금으로 내는 소작농이었다. 이 행태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아, 오늘날 우리 대부분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이자를 갚느라 노동한다. 만일 어떤 소작농이, 아카드어로는 ‘뮤수케늄’mushkenum이라 부르는데, 신전에서 빌린 돈을 다 갚아, 더이상 채무관계가 없다면, 그는 ‘샬리마’shalima가 된다. ‘샬리마’는 빚을 다 갚은 사람이란 의미다.

     

같은 어원인 히브리어 ‘살렘’과 아랍어 ‘살림’은 경제적인 의미에서 출발하여, 후에 정신적이며 영적인 의미를 추가하였다. 우리 각자는 주어진 인생이란 무대에서, 맡겨진 배역과 임무가 있다. 내가 무대에 올라가, 그 배역을 훌륭하게, 후회 없이 소화해 낸다면, 나는 ‘평온’한 자가 된다. 평온이란,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를 초월하여, 자신에게 온전하여, 그 온전함이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로 드러나는 가치다.

     

새벽이면 뒷산에서 태양에 올라온다. 오늘 세상을 자신의 빛과 열로 변화시키겠다는 전령 여명黎明이다. 우리는 이 여명을 맞이하기 위해 해야할 일이 있다. 손발을 단속하여 움직이지 않고, 눈귀를 닫아, 여명이 다가오는 모습과 소리를 관찰觀察하고, 입을 단속하여 여명이 오늘 말하는 소리를 경청傾聽한다. 오늘로 장마때 내린 비를 다 흘려 내려보내지 못한 시냇물은 자신이 만세전이 만들어 놓은 유일한 길을 내려간다. 성급한 매미가 자신의 삶을 아쉬워하며, 생명연장의 고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암컷을 부르며 울기 시작하고, 새벽이 오기 전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부인否認하지 말하고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다들,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서, 빅뱅이 후, 맞이하는 첫 번째 날, 새날을 준비한다. 그 태양을 나를 찾아 왔다. 그리고 나에게 “너는 오늘 예루살렘에 올라올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

     

2000년전 예수라는 청년은, 40일 광야에서의 자기시험과 침례를 통해, 비둘기와 같은 영이 자신에게 내려와 하나가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그는 ”천국은 이미 와있다“라는 복음을 세상에 알리기도 결심하였다. 그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동지 12명을 선별하였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이 도반들을 항상 곁에 두고 새로운 가치로 개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희로애락이 자신의 희로애락이 되었다. 사랑만이 세상을 바꿀 유일한 힘이다. 사랑은 강력하여 원수를 용서할 수 있고 심지어 원수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 사랑은 차별하지 않아, 대가를 바라지도 않으며, 학대받는 동물들을 구조하여, 천국을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예루살렘을 품어야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 우리는 지금 당장 예루살렘 안으로 올라 와야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자’라고 말하지 않고, ‘와야한다’라고 말한다. 예루살렘은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란 우리 각자의 삶이며, 우리의 발견되는 않는 발견되지 않는 경내, 마음속 깊은 곳이다. 예수가 시몬에게 말한 그 ‘깊은 곳’이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루살렘이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도성인데, 저 낮은 곳, 깊은 곳으로 올라 와야하는 장소를 반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 새로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 즉 ‘사람의 아들’ 인자人子라고 말한다. 인자는 우리 모두다.

이것은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영원한 진리였다.

     

세상은 자신의 마음에서 예루살렘을 발견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인자를 혐오한다. 위대한 것을 오해받는 것이며, 인류의 성현들이 그렇게 살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어온 사상, 즉 편견과 다른 진리를 거짓으로 낙인찍는다. 예루살렘이 저 너머 세상에 있다고 믿는 ‘이방인’들은 온갖 그럴듯한 권력을 동원하여, 그를 희롱하고 모욕하고 오명을 붙일 것이다. 심지어는 채찍질하여, 그를 살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사람의 아들’이 ‘신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통과의례다. 요나가 망망한 지중해에서 모디빅 뱃속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성소 예루살렘을 발견한다. 그는 그곳에서 3일 밤낮을 기도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살아났다. 예수 자신도 3일 만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의 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말이 제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진리였다. 그들이 스스로 예수와 같은 삶을 살아야, 그 숨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거룩한 씨앗이다. 계절을 지나면서 온갖 비바람, 안개와 열기를 통해, 서서히 드러나 싹을 틔울 꽃이기 때문이다. 오늘 새로운 마음으로 여명묵상黎明默想을 시작한다. 이 묵상을 통해 평온平穩한 매일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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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31-34

(원문)

31 Παραλαβὼν δὲ τοὺς δώδεκα εἶπεν πρὸς αὐτούς Ἰδοὺ ἀναβαίνομεν εἰς Ἱερουσαλήμ, καὶ τελεσθήσεται πάντα τὰ γεγραμμένα διὰ τῶν προφητῶν τῷ Υἱῷ τοῦ ἀνθρώπου·

32. παραδοθήσεται γὰρ τοῖς ἔθνεσιν καὶ ἐμπαιχθήσεται καὶ ὑβρισθήσεται καὶ ἐμπτυσθήσεται,

33. καὶ μαστιγώσαντες ἀποκτενοῦσιν αὐτόν, καὶ τῇ ἡμέρᾳ τῇ τρίτῃ ἀναστήσεται.

34. καὶ αὐτοὶ οὐδὲν τούτων συνῆκαν, καὶ ἦν τὸ ῥῆμα τοῦτο κεκρυμμένον ἀπ’ αὐτῶν, καὶ οὐκ ἐγίνωσκον τὰ λεγόμενα.

(번역)

31. 그(예수)가 12명을 곁에 두시고 말씀하셨다. “자,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 안으로 올라와야 한다.

그러면, ‘사람의 아들’에 관하 예언자들이 기록한 모든 것들이 완성될 것이다.

32. ‘사람의 아들’이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사람들은 그를 희롱하고 모욕하고 침을 뱉을 것이다.

33 사람들은 그를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만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34 그들은(제자들은) 그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말씀은 그들로부터 숨겨져있어, 그들은 예수가 말한 것들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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