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2.(金曜日) “불편不便”
뉴욕에 살고있는 딸이 1년전쯤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하프 마라톤을 여러 번 뛰었다. 대학졸업이나 취직보다도 자랑스럽다. 스트라바strava라는 달리기 어플로 딸이 어디로 뛰는지 알수 있다. 두 딸중 정말 걷기도 싫어했던 둘째가 달리기를 시작한 사건은, 나에게 한없는 기쁨이다. 자신을 매일 극복하려는 수련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불편이다. 불편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오늘을 편함과 보람으로 만들어주는 주는 마술이다. 편함은 불편을 감수할 때, 저절로 슬며시 그리고 갑자기 등장하는 애꿏은 장난이다. 오늘을 새로운 날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날들의 중요힌 구간區間으로 만들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트레드밀에 올랐다. 이전에는 묵상을 하던 하얀 방석이 예루살렘이었지만, 지금은 트레드밀이 예루살렘이며 에베레스트산이다.
내가, 누구나, 가장 싫어하는 것이 뛰는 일이다. 오래전 고산유격장에 훈련받던 생각이 난다. 나는 1983년, 이 유격장에서 완전군장하고 2주간 훈련을 받았다. 1983년 10월 31일에, 이용의 노래 ‘10월의 마지막 날’을 동료들과 함께 부르며 때, 마침, 행군중에 첫눈이 내려,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유격장을 퇴소하는 날, 마음이 한없이 고요했다.
몇 달전 한 출판사가 ‘달리기’에 관련된 책을 쓰기로 계약하고, 쓰기를 차일피일 미뤘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러너가 되지 않으면, 그 책은 가짜다. 오랫도안 산책을 하고 명상하여 <심연> 시리즈 책을 출간하였다. 산책은 하루를 편하게 만들고 가능할 일이 무엇인지 묵상하게 만들었다면, 달리기는 나의 하루 시작을 불편하게 만들어, 불가능하는 일을 추구하라고 호통치는 빨간색 모자를 쓴 유격조교다. 달리기는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고통은 쾌락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깨달음이다. 달리기 (혹은 빨기걷기)는, 글쓰기와 함께 자기치유의 길이다.
오늘은, 내가 다시 뛰기로 작심作心한 날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가장 도달하기 싫은 장소가 트래드밀이다. 침대에서 그 곳까지 가는 길은, 골고다언덕이다. 내 몸에 베어 있는 땀과 눈물을 빼내지 않으면, 하루를 가볍게 시작할 수 없다. 인생은 언제나 갈림길이며 선택이다. 내가 각성하지 않고 어제 가던 길, 편한 길, 넓은 길을 선택하면, 그 길은 서서히 나를 유약하게 만들 것이다.
오래전 공부하는 법을 몰랐던 나에게 공부와 삶에 대해 알려준 선생이 달리기였다. 20대 후반, 유학을 시작하면서 학교가 위치한 캠브리지와 보스톤을 가르는 찰스강 수변들 달렸다. 달리기를 신봉하는 종교인이 되어 매일 10km를 달렸다. 그 달리기로 책을 오랫동안 정독할 수 있었고, 고전어 문장들을 암송할 수 있었다.
트레드밀에 올라가, 달리다 보면, 없이 것들이 몸에서 분출한다. 땀이다. 이마의 땀방울이 온몸을 적시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가슴에는 뭔가 답답한 것이 내 호흡을 곤란하게 만들고, 다리를 무겁게 당긴다. 땀이 이마에서 시작하여 가슴을 따라 흐르고 온몸을 적시기 시작하면, 불편한 호흡이 신기하게 안정되어 들숨과 날숨이 고르게 된다. 그 때 쯤이면, 이마의 땀방울이 가슴이 아니라, 운동화와 트레드밀 벨트에 떨어져 부딪친다. 그러면 손발이 가벼워진다. 나의 몸에 불편하게 만들던 수분이 흘러나와 몸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까지 정화한다.
달리기는 하루를 의미있게 시작하게 만드는 좁은 문이다. 예수는 <마태복음> 7.13에 다음과 말하지 않았던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리스원문)
Εἰσέλθατε διὰ τῆς στενῆς πύλης·
에이셀싸테 디아 테스 스테네스 퓔케스
ὅτι πλατεῖα ἡ πύλη καὶ εὐρύχωρος ἡ ὁδὸς ἡ ἀπάγουσα εἰς τὴν ἀπώλειαν,
호티 플라테이아 헤 퓔게 카이 유뤼코로스 헤 호도스 헤 아파쿠사 에이스 텐 이폴레이안
καὶ πολλοί εἰσιν οἱ εἰσερχόμενοι δι’ αὐτῆς·
카이 폴로이 에이신 호이 에이세르코메노이 디 아우테스
(원문번역)
“불편하고 좁은 문으로, 자신을 강제로 들여보내라. 왜냐하면, 넓고 이미 열린 문은, 너의 최선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 재기하지 못하게 너의 뿌리 마져 뽑아 버리는 길이다. 그 편한 문을 자발적으로 가려는 사람이 많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정신은 육체 안에 존재하는 어떤 것의 이름일 뿐입니다.” 내가 육체를 훈련하지 않고는 정신과 영혼을 각성시킬 수 없다. 불편하고 좁은 문은 하루를 의미있고 보람되게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내 자신을 강제로 불편을 감수하는 일을 습관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하루를 어제처럼 그렇게 영영 흘러가 버릴 것이다. 사람들은 넓은 길, 나의 애씀이 필요가 없는 길을 선호한다. 예수는 그 길은 나의 근간을 파괴하는 죽음의 길이라고 말한다. 2024년 7월 12일은, 머나먼 땅에서 37년전 달리기를 시작하던 심정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자신과의 약속인 매일 달리기가 나를 변화시키고, 여러분에게 속보 혹은 달리기로 이어지길 바란다. 불편을 감수해야, 편함이 슬며시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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