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7. (金曜日) “개가 죽었습니다”(파울로 네루다 시)
오늘 저녁 반려견 강연에서 두 시를 소개할 참이다. 내가 좋아하는 두 시인의 작품이다. 한 명은 칠레 시인 파울로 네루다의 A Dog Had Died와 다른 한명은 미국 시인 매리 올리버의 How It is with Us다. 반려견에 관한 시들 중 칠레 시인 파울로 네루다의 시, <개가 죽었습니다>라는 시는 각별하다. 유물론자인 그가 천국을 믿게 된 이유를 적어놓았다. 반려견들의 유일한 결점은 인간의 1/7을 산다는 것이다. 신은 소중한 생명을 먼저 데리고 가신다는 말을 실천하시나 보다. 다음의 그 번역이다.
A Dog Has Died
BY PABLO NERUDA
개가 죽었습니다.
파울로 네루다
My dog has died.
I buried him in the garden
next to a rusted old machine.
제 개가 죽었습니다.
그를 녹이 슨 오래된 기계 옆,
정원에 묻었습니다.
Some day I'll join him right there,
but now he's gone with his shaggy coat,
his bad manners and his cold nose,
and I, the materialist, who never believed
in any promised heaven in the sky
for any human being,
I believe in a heaven I'll never enter.
Yes, I believe in a heaven for all dogdom
where my dog waits for my arrival
waving his fan-like tail in friendship.
언젠가 제가 거기에서 그와 합류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털이 난 외투를 입고 가버렸습니다.
그의 고약한 습관도, 그의 차가운 코도 함께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물론자인 저는 어떤 인간에게도
하늘에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믿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결코 들어가지 않을 천국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모든 견공犬公들을 위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제 반려견이 우정의 상징으로 부채같이 큰 꼬리를 흔들려
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Ai, I'll not speak of sadness here on earth,
of having lost a companion
who was never servile.
His friendship for me, like that of a porcupine
withholding its authority,
was the friendship of a star, aloof,
with no more intimacy than was called for,
with no exaggerations:
he never climbed all over my clothes
filling me full of his hair or his mange,
he never rubbed up against my knee
like other dogs obsessed with sex.
아, 저는 여기 지상에서 슬픔에 관해 말하지 않겠습니다.
결코 비굴한적이 없는
동반자를 잃은 슬픔말입니다.
저에 대한 그의 우정은
권위를 스스로 억누루고 있는 호저豪豬처럼,
필요이상으로 친한 척 하지 않는,
결코 과장하는 않는,
멀리 떨어져 빛나는 별의 우정과 같습니다.
그는 제 옷에 올라가
자신의 털이나 옴을 옮긴적이 없습니다.
그는 결코 섹스에 사로잡힌 다른 개들처럼
제 무릎에 대고 문지른적이 없습니다.
No, my dog used to gaze at me,
paying me the attention I need,
the attention required
to make a vain person like me understand
that, being a dog, he was wasting time,
but, with those eyes so much purer than mine,
he'd keep on gazing at me
with a look that reserved for me alone
all his sweet and shaggy life,
always near me, never troubling me,
and asking nothing.
그러지 않았습니다. 제 반려견은 저를 응시하면서
제가 필요한 관심을 줍니다.
저처럼 허망한 인간이
‘개로서’ 그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필요한 관심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제 눈보다 훨씬 순수합니다.
그는 저만을 위해 예약된 시선으로
계속해서 저만 응시합니다.
그의 달콤하고 털복숭이 생명은
항상 제 곁에서, 저를 괴롭히지 않고
저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Ai, how many times have I envied his tail
as we walked together on the shores of the sea
in the lonely winter of Isla Negra
where the wintering birds filled the sky
and my hairy dog was jumping about
full of the voltage of the sea's movement:
my wandering dog, sniffing away
with his golden tail held high,
face to face with the ocean's spray.
아, 제가 그의 꼬리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우리가 이슬라네그라에서 보낸 외로운 겨울,
그 해변에 함께 산책할 때입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온 철새들이 하늘을 메우고
털이 많는 제 반려견은 바다의 움직임처럼
엄청난 힘으로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Joyful, joyful, joyful,
as only dogs know how to be happy
with only the autonomy
of their shameless spirit.
아, 기쁘다, 기쁘다, 기쁘다.
오직 개들만이
누구를 부끄러워지 않고 지율적으로
행복해 질수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There are no good-byes for my dog who has died,
and we don't now and never did lie to each other.
So now he's gone and I buried him,
and that's all there is to it.
지금 죽은 제 반려견을 위해 작별인사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영원히 서로에게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 지금 그는 가버렸습니다. 제가 그를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입니다.
사진
<네루다와 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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