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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27. (水曜日) “두꺼비”

2024.6.27. (水曜日) “두꺼비”

     

앞다리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샤갈이 다시 입원했다. 혈압수치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12년동안 나와 매일 산책을 하다, 요즘 2달간 산책을 하지 못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의 아침산책 동무는 벨라와 예쁜이다. 요즘 나와 단둘리 산책을 많이 나가는 벨라는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 새로 사준 핑크색 하네스를 착용하고, 천사처럼 날라 다닌다. 벌써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반면에 예쁜이는 내가 산책을 애원해야 한다. 불행했던 예쁜이의 과거를 상쇄시켜주기 위해, 내가 산책을 애원한다. 예쁜이는 못 이기는 체하고, 차 앞까지 가지만, 오르지 않는다. 내가 온갖 아양을 떨어야지만, 그 거만하고 앙증맞은 앞발과 이용하여 껑충 차에 오른다.

     

우리는 차를 6.5km 떨어진, 연인산 입구에 주차하고 약간 경사진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반려견들은 항상 수풀이 우거진 후미진 곳에서 자신의 배를 비우는 의례를 거행한다. 언덕 산책을 왕복하면, 발바닥이 더워지고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몸안에서 순환이 시작되었다는 증거다. 그런 후, 우리는 연인산 지류로 올라가는 자물쇠로 잠겨진 옆에 난, 비밀 통로를 통해, 널찍한 공터에 들어섰다.

     

그 안에는 뿌리를 땅에 묻고,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던 야생 식물들이 더위에 연두색 옷을 갈색으로 갈아입고, 늘어져 있었다. 자코메티가 1940년대 말, 어머니와 동생을 잃고 조각하기 시작한 길쭉한 여인상모양이다. 축쳐진 입들의 무게를 견디며, 저 아래에서 끌어올린 생명수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나무와 풀들은, 지구의 원칙은 중력을 거스릴뿐 만 아니라, 그 저항의 힘으로 살아 간다.

     

벨라와 예쁜이는 작은 시냇가를 건너, 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고 나를 보챈다, 나는 이들에게 다음 날을 기약하고 간신히 설득하여 발길을 오던길로 옮겼다. 그 순간, 이들의 걸음에, 놀라지도 않고 천천히 움직이는 무언가 있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 가 다가가 보니, 두꺼비(학명: Bufo gargarizan)였다. 여름철 시골 논밭은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로 들썩인다. 조그만 움직임에도 반응하는 개구리와는 달리, 두꺼비는 눈에 자 띠지 않는다. 두꺼비는 느리지만, 개구리보다 빠르게 전광석화처럼 긴 혀를 목표물에 조준하여 순식간에 삼켜버린다.

     

개구리보다 큰 두꺼비 등은 다양한 흑갈색과 적갈색이고 그 위에 고동색과 검은색 반점이 오밀조밀하고 울퉁불퉁하게 덮여있다. 몸 옆에는 흑색 세로줄이 수놓아져 있다. 다른 개구리처럼 뛰지 못하고 엉금엉금 마음먹은 시점에만 기어간다.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360도 돌아가는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의 피부에 장착한 부포톡신이란 독을 내뿜을까 고민하다, 나의 순수한 호기심을 알아차리고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이전에 꿈에서 이렇게 앉아있는 두꺼비를 본 적이 있다. 앞마당과 뒷마당 사이에 두꺼비가 앉아, 나를 바라보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 당시 가깝게 지냈던 돌아가신 형님이 돌아가신 직후였다. 나는 고인이, 삶의 경계에서 나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두꺼비 모습으로 왔다고 확신하였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상들, 꿈이나 혹은 현실에 등장하는 특이한 장면들은, 상징象徵이다. 융이 말하는 공시성synchonicity의 원리처럼, 두꺼비가 이 시점에 나에게 나타난 것은 무엇을 상징하나? 그것이 어떤 것에 대한 상징이며, 만일 내가 그 상징을 풀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기억하여, 오늘과 내일의 삶에 적용하여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상상-기억-실행은, 인간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건들을 푸는 열쇠다. 개구리와 두꺼비와 같은 양서류는, 경계, 변신, 내적인 혜안, 적응력을 상징한다. 오래전 바다에 살던 양서류는 수백만년동안의 변신을 거쳐 지상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다.

     

두꺼비는 은닉隱匿의 상징이다. 자신을 주위에 떨어진 갈색 나뭇잎과 가지와 하나가 되어 멀리서는 좀처럼 구별하기 힘들다. 우리의 발길이 자신의 주위를 덮쳐 자칫 잘못하면 압사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저 커다란 눈을 사방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다음 동작을 생각하고 있다. 남이 알아주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로나 비트겐슈타인처럼,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아득한 곳에, 보금자리를 차려놓고,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연마한다.

     

두꺼비는 경계經界의 상징이다. 개구리같이 양서류로 물가와 땅 모두 두꺼비의 서식지다. 개구리는 물에서 주로 생활하여 피부가 미끌미끌하지만, 두꺼비는 땅에 굴을 파 아지트를 만든다. 경계의 상징이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훌륭하게 변신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양쪽에서 모두 생존하기 위해서, 사방을 두루 살피는 시선과 시각이 필요하다. 두꺼비는 또한 완벽完璧의 상징이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한번 움직인다면, 재빠르게 상대방을 제압한다. 두꺼비가 이 시점에 무엇을 상징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싶다.

     

사진

<연인산 두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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