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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28. (日曜日) “두친구”

2024.4.28. (日曜日) “두친구”

     

부천태권도장 사범님이 사비로 태권도 수련생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드셨다. 몇해 전에도 도장을 개선하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도장을 변신시켰다. 사범님의 마음은 타이탄 호에서 죽은 아들을 위해 거금을 투척하여 도서관을 희사한 하버드 대학의 와이드너 도서관보다 절실하고 웅징하다. 사범님은 그동안 아이들이 신체훈련장소와는 별도로 정신각성공간을 마련을 꿈꿔오셨고 마침내 그 성소를 마련하셨다. 오늘을 줌이 아니라, 아이들과 대면하고 싶어 일찍 집을 나섰다. 내가 사는 가평에서 부천 태권도장까지 96km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위해, 8시에 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한참 달려 10시 5분경에 도착하였다. 사범님은 이곳은 ‘빛차올’ 수련장으로 명명했다.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저 햇빛으로 충만하게 만든 공간과 시간이란 의미다. 아이들은 지난번 수업에서 다룬 메리 올리버의 시 When I am among the trees를 암송하였다. 이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구절처럼, 자신을 빛으로 가득 채워 스스로 빛이 나면 좋겠다.

     

나는 아이들과 수피 시인 루미의 ‘두친구’라는 시와 올리버가 폐암 진단을 받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쓴 THE FOURTH SIGN OF THE ZODIAC (PART 3) (황도십이궁의 네 번째 기호 (세번째 시))을 함께 감상하였다. 13세기, 유럽은 각성하고 있었다. 종교가 사람의 모든 것을 장악하던 교리가 머물러지기 시작하면서 그 틈을 ‘신비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근동지방에서 13세기는 전쟁과 혼란의 세기다. 십자군은 유럽에서 시작하여 아나톨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였고, 몽골군대는 아시아 평원에서 출발하여 중동과 유럽을 덮쳤다. 중세 유럽은 이 혼란을 거쳐 새로운 영적인 혁명을 경험한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신을 더 이상 경전이 아니라 일상에서 발굴하기 시작한다. 이 종교적 운동이 신비주의다. 아시시의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 (1182-1226), 독일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hhart (1260-1328), 스페인의 모세 벤 쉠-토브 Moshe ben Shem-Tov(1240-1305)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발릭의 제랄루딘 루미Jelaluddin Rumi (1207-73)이다.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 그리고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의 원조들이다.

     

루미는 1244년 10월 어느 날,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스승을 만난다. 타브리즈의 샴스Shams of Tabriz다. 그는 검은 망토를 걸치고, 일생 완벽한 영적인 친구 한명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의 지혜를 들으려하면, 그는 어김없이 검은 망토를 몸 전체를 감싸고 사라져버렸다. 전설에 의하면, 샴스가 신에게 친구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니, 신은 그에게 “너의 친구는 콘야에 있는 제랄루딘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샴스는 루미가 거주하는 콘야로 찾아간다. 루미는 자신의 아버지 책 <마아리프>를 동네 샘물가 근처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자 샴스가 갑가지 등장하여 군중을 헤치고 그에게 다가와 책을 모두 시냇가에 던져 버렸다. 루미는 놀라 이 낯선 자와 대화한다:

     

루미(R): “당신은 누구길래, 이런 행동을 하십니까?”

샴스(S): “당신은 이제 읽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사건 이후로, 루미와 샴스는 둘로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루미의 제자들은 그를 질시하여 그를 살해하여 시신을 감췄다. 실의에 찬 루미는 정원에 있는 장대 주위를 돌려 영적인 친구를 그리워하며 황홀경에 빠져 시를 읊었다. 루미는 우주와 영혼의 움직임을 춤을 통해 표현하였고, 오늘날 수피 춤의 원형이 되었다. 루미는 샴스와 나눈 영적인 대화를 기억하여 ‘디바네 샴세 타브리지Divan-e Shams-e Tabrizi)’ 즉 ‘샴스-타브리즈의 저서들’이란 책을 남겼다. 루미가 남긴 <두친구>라는 시는 샴시와의 우정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Two Friends

두 친구

     

A certain person came to the Friend's door

and knocked.

'Who's there?'

'It's me.'

The Friend answered,

'Go away.

There's no place for raw meat at this table.'

어떤 사람이 그 친구 집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접니다’

그 친구는 대답했다.

‘돌아가십시오.

이 식탁에는 날고기를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The individual went wandering for a year.

Nothing but the fire of separation

can change hypocrisy and ego.

그 개인은 일년동안 거리를 헤맸다.

그들을 분리했던 불이

그 사람의 위선과 이기심을 변화시켰다.

     

The person returned

completely cooked,

walked up and down in front of the Friend's house,

gently knocked.

'Who is it?'

'You.'

'Please come in, my self,

there's no place in this house for two.

그 사람이 돌아왔다.

완전히 구워져 요리되었다.

그 친구의 집 앞에서 왔다갔다 거닐었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당신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내 자신이여!

이 집에는 두 사람들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The doubled end of the thread is not what goes through

the eye of the needle.

It's a single-pointed, fined-down, thread end,

not a big ego-beast with baggage.'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은

실의 양 갈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뾰족한 하나의 끝이며, 정교하게 다듬어진 실의 끝이어야합니다.

그것은 보따리를 가진 거대한 이기심이라는 짐승이 아닙니다.’

     

루미와 샴스는 처음에는 자신의 개성을 유지한 날것이었다가, 방황이라는 요리를 통해, 완벽하게 요리되고 구워지고 요리되고 숙성되어 하나가 되었다. 루미는 진정한 친구 하나를 얻는 것을 신과의 합일로 여겼다. 진정한 친구는 자신의 신분을 감춘 신이다.

     

태풍태권도장 아이들이 ‘빛차올’에서 자신만의 샴스 스승을 만나 스스로에게 행복하여 타인에게 친절한 21세기 새로운 인류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태풍 태권도 빛차올에서 아이들과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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