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23. (火曜日) “경청傾聽”
우리의 신체는 진화를 통해, 최적화된 기능을 지닌 구조를 가진다. 인류의 조상은 아주 오래전 네발로 기어 다녔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효율적으로 옮겨 다니기 위해 꼬리가 필수적이었다. 후에 지면으로 내려와 이족보행을 하면서,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기관들이 도태淘汰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엉덩이 나이에 ‘꼬리뼈’라는 이름으로 흔적을 가지고 있다. 앉을 때마다, 꼬리뼈는 원숭이가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거울을 보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눈이 두 개, 귀가 두 개, 콧구멍이 두 개다. 그러나 이상하게 입이 하나다. 오늘 내가 마주치는 것을 한번이 아니라, 두 번 보라는 경고다. 대충 보는 한번이 오해이고 편견이다. 두 번 봐야 관찰觀察할 수 있다. 어제까지 보아왔던 상相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들을 때, 한번이 아니라 두 번 들어 한다. 한 번 들으면 오해하지만, 두 번 귀를 기울여야 경청傾聽하기 때문이다. 입이 하나인 이유는, 두 번 보고, 두 번 들을 때까지, 제발 입을 열지 말라는 경고다. 침묵은 금이고, 침묵에서 만들어진 웅변은 기껏해야 은이다. 지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예쁜이가 동가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집은 약육강식만이 생존기술이 되는 아프리카 밀림지대가 되었다. 샤갈과 벨라가, 한동안 예쁜이와 마주치지 못하도록, 집 양옆으로 나 있는 좁은 공간에 철제 미닫이를 만들었다. 그때 나는 하루에 몇번씩 이 분리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였다. 예쁜이가 우리와 같이 살기 시작한 2019년 당시, 샤갈과 벨라는 이미 지난 6년동안, 나와 아내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었다. 갑자기 함께 살기 시작한 외부침입자 예쁜이로, 이들의 심기가 사나워졌다. 자신들이 우리의 관심 순위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샤갈과 벨라는 철장을 사이에 두고, 철장 넘어, 저 멀리 꼬리를 말고 한없이 불쌍한 표정을 짓는 예쁜이에 그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고 마구 짖는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항상 해결은 아내가 한다. 예쁜이가 우리와 동거한 지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훈련사들에게 전화해, 우리가 처한 난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들은 모두, 진돗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도와 집착이 심하기 때문에, 외부의 개가 갑자기 들어와 동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 그들은 모두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가 그런 객관적인 평가를 수용할 리가 없다. 아내는, 우리 동네 개 사육장을 밤에 찾아가, 주인과 대화하고, 후에 군청과 공무원을 동원하여 결국 사육장을 문 닫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쁜이가 우리와 동거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한 늦은 밤이었다. 아래층에서 아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아래층에서 진귀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내가 샤갈과 벨라를 앉혀놓고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이들은 몸을 바닥에 붙이고 두 발을 길게 뻗은 채로, 마치 이집트 스핑크스의 자세로 아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내가 무엇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자신들을 설득해 보라고 늠름하게 앉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을 제세하고 친절하게,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였다. 그 진지함은 교황이나 대통령을 만난 것보다, 더 진지했다. 그녀는 지난 6년동안 이들과 소통해온, 몇 가지 단어들을 동원하여 말하기 시작하였다.
“샤걀, 벨라, 엄마 말 들어” 이들은 그 커다란 눈망울로 아내를 쳐다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쁜이,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해! 너희가 ‘어흥’하고 짖고 ‘콱’ 물으면, 예쁜이도 아프고 엄마도 아파요. 우리 식구가 야, 샤갈-벨라 동생이야. 너희가 받아줘, 알았지!” 손짓-발짓-몸짓하며 온몸으로 말을 건냈다. “예쁜이, 너무 불쌍해. 너희가 예쁜이라고 생각해봐. 온 몸에 진물이 흘러, 아파. 사람들이 막 돌을 던져! 아무대로 갈데없어!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해!” 단지 몇 개의 단어로 천 개의 상황을 진심을 담아 전달하였다. 샤갈과 벨라도 또한 무언가를 눈빛으로 아내에게 자신의 의견을 쏟아 내며 대답하였다. 마치 영화 <ET>에서 주인공 소년 엘리어트와 ET와 같았다. 한참 대화를 나누었고, 아내와 샤갈-벨라는 서로를 경청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진심으로 설득하려는 아내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그 이후,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샤갈과 벨라의 변화다. 샤갈-벨라가 예쁜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7살이 되어 몸의 움직임이 줄어든 벨라와 샤갈은 예쁜이와 함께 어울려 놀며 다시 운동량이 늘고 건강해졌다. 예쁜이의 얼굴에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지고 영민함과 존엄함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예쁜이는 온몸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통증을 휘어 감고 거리에 버려진 채 얼어붙은 스티로폼을 뜯어먹고 있던 한 생명이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 대화는, 상대의 아픔과 그 역사를 추리할 때, 기적을 일으킨다.
예쁜이는 누군가의 자비로 인하여, 샤갈-벨라의 수용으로, 언제나 품위를 유지한 채가 내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예쁜이의 고통passion은 컴패션compassion을 일으키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예쁜이는 인간의 심연에 존재하는 ‘캠패션’을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견뎌낸 신적인 존재다. 예쁜이는 오늘도 나의 마음가짐과 행동가짐을 가만히 지켜본다. 대화와 경청은 기적을 일으키는 신의 선물이다. 오늘 나는 눈과 마음으로 말할 것인가? 아니면 입으로 말할 것인가? 고통 받고 있는 생명을 외면할 것인가, 돌볼 것인가?
사진
<산책중인 예쁜이, 샤갈, 벨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