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1. (月曜日) “사월四月”
눈을 뜨니 사월이다. 영겁의 물처럼 흘러간 것을 아쉬워하며, 2024년을 맞이했는데, 올해의 1/4이 저 멀리, 시냇물처럼, 저만치, 사라져버렸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시간이란 사실에 가슴이 저메온다. 그 애탄 심정 때문에, 시인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할 달이라고 노래했을 것이다. 그는 20세기 초, 현대문명과 문화가 허물어지는 상황에 경악하면서, <황무지>라는 제목의 시로 노래하였다.
그는 이 시의 서문에, 아쉬운 지난 석 달의 감정을 보통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비문을 고대 그리스, 라틴어, 이탈리아어 문구로 장식하였다. 이 비문은 1세기 풍자문화 작가 페르로니우스의 <사튀리콘>의 48장에 나오는 내용의 발췌문이다. 이 풍자문에 등장하는 트리말키오는 노예였다가 술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다. 그의 이름은 신기하게도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의 합자다. ‘세왕들’ 즉, ‘세왕을 합쳐놓은 듯한 권력을 가진 이’라는 의미다. 그는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 그리스 식민지였던 쿠마이에서 아폴로신의 신탁을 전해주는 여사제인 시빌을 만나 신탁을 받았다. 엘리엇은 이 신탁의 내용으로 <황무지>를 시작한다:
‘Nam Sibyllam quidem Cumis ego ipse oculis meis vidi in ampulla pendere,
et cum illi pueri dicerent:Σίβυλλα τίθέλεις;
respondebat illa :άποθανεîνθέλω.’
“내가 한번은 쿠마이에서 시빌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녀는 동굴에 매달려있었다.
소년들이 그녀에게 물었다. ”시빌이여! 당신은 무엇을 원합니까?”
그녀가 대답하였다. “죽고 싶어요.”
아폴로신은 시빌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다. 영생이다. 아폴로는 시빌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영원한 젊음을 주지는 않았다. 시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늙고, 작아지고 약해졌다. 이제 죽음이 시빌의 소원이 되었다.
엘리엇은 이 비문을 소개한 후, 시인 에즈라 파운드에게 다음과 같이 헌정하는 글을 썼다:
For Ezra Pound: il miglior fabbro"
“에즈라 파운드, 훌륭한 장인”
위문장은 단테 <신곡: 푸르카토리오>에 등장하는 문구다. 단테는 12세기 아틸리아 남부 서정시인은 아르나우 다니엘Arnaut Daniel을 ‘일 밀리오 파브로’로 불렀다. 엘리엇은 이 시를 자신에게 영감을 준 에즈라 파운드에게 헌정하였다.
‘4월은 잔인한 달’은 제1곡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에 등장한다. 4월은 지난겨울 죽었던 자를 충분히 기억하고 정성을 다하여 보내면, 그제야 다가오는 생명의 약동이다. 제1곡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April is the crueli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죽은 대지에서 라일락 번식해 나오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어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이 우리를 따뜻하게 품었다.
망각의 눈으로 땅을 덮고
마른 줄기로 조그만 생명을 살려주었다.
거짓말처럼 4월이 그리스도교의 부활절 다음날에 왔다. 부활復活이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야산에 있는 모든 풀들과 나무들은, 부활의 증거들이다. 부활절을 기념하여, 나와 반려견들은, 다른 날보다 더 높은 곳으로 등산하였다. 나무와 풀들은 바싹 말라 있어, 엘리엇의 고백이 진실이었다. 이들은 차라리 눈으로 덥힌 겨울이 좋았다고 메마르게 소리를 지른다.
우리는 오래전 빗물, 동물, 화전민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갔다. 그곳에는 모든 것을 메마르게 만드는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곳곳에 지난겨울 눈과 바람을 이기지 못한 소나무들이 자신의 뿌리를 지상에 드러낸 채, 장엄하게 누워있다. 이 무명 산 정상에 앉으니, 박새가 한 마리 날라와 소나무와 전나무 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곡예를 하며 날아다닌다. 박새는 자신의 몸을 검은 색, 갈색, 흰색으로 치장한 곤충학자昆蟲學者다. 그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아직 미몽사몽 중에 있는 곤충들을 자신의 메뉴로 정해놓고 차례로 잡아먹는다. 그리고 나서, 겨울눈이 만든 물이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가서 한 모듬 물을 마시고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4월은 희망의 달이다. 햇빛, 안개, 맑은 공기, 물을 통해, 바싹 마른 가지에서 충만한 연두색을 터뜨리는 결정적인 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4월, 우리 모두가 자신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영상
<4월 1일, 가평 무명산에서 노래하는 바람과 새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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