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4. (日曜日, 立春) “시 읽는 소녀”
봄이 조용하게 그리고 장엄하게 도래했다. 뺨에 스치는 바람이 차갑지 않다. 오전에 10시부터는 서초동 강남성모병원에서 <요셉이야기> 마지막 수업을 대면강의로 진행하였다. 그 후에 오후 3시부터, 대한민국의 스쿨닥터인 강윤형박사를 만났다. 지난 수십년동안 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과 학생들과 상담하면서 느낀 생생한 경험을 들었다. 비상이다. 625때보다 더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와 대한민국이 자살률이 1위인 이유가 유아, 초중등교육환경이란 사실을 다시 실감하였다. 내가 태풍태권도 아이들과 지난 4년동안 시를 암송하고 글쓰기를 하면서, 쌓은 경험과 성과를 대한민국의 모든아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기진맥진했지만, 문간에 샤갈, 벨라, 예쁜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면서 짖기 시작한다. “산책가요! 멍멍! 산책가요! 멍멍!” 오늘 아침 일찍 서울에 일찍 나가느라, 아침 산책을 걸렀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을 차에 태우고 멋진 산책코스를 택했다. 요즘 지방에도, 시골에도, 누구나 산책할 수 있도록 산책길이 조성되어있다. 강가를 따라, 데크를 깔아 놓았다. 시냇가를 중심으로 양편으로 2km씩, 모두 4km를 산책할 수 있다. 데크가 끝나는 지점은 오솔길로 이어진다.
그 끝에 시냇가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그곳으로 내려가면 시냇가를 건널 수 있도록 커다란 징검다리가 내려오는 물살을 견뎌내며 서 있다. 우리가 건너가도록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이 징검다리는 커다란 바위를 반듯하게 깎아낸 바위로, 양편으로 두 개씩 나란히 20개 이상 박혀있다.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기 되어 폴짝폴짝 발을 안전하게 징검다리에 디디고 넘어갔다. 이곳은 철새도래지로, 우리의 등장에 오리들과 백로가 놀라, 부리나케 도망쳐 날라간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건너편 산책길에 담벼락에 내가 사랑하는 시들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김소월, 김영랑, 한용운의 시가 줄줄이 큰 글자로 그림과 함께 그려져 있다. 데크 길은 프랑스 세느 강변보다 아름답고, 산책길은 뉴욕 센트럴파크보다 포근하다.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니! 신에게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시를 읽도록, 마음을 다잡아주는 담벼락 부조물이 있다. 한 소녀가 시집을 들고 있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었다. 의자에 앉았지만, 그녀는 점점 시가 전달해주는 단어,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과 침묵, 문장, 문장이 전달해주는 여운에 매혹되어, 점점 머리가 시집으로 기울러진다. 그녀는 분명 봄 햇살이 선사하는 따스함을 시를 통해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우산과 의자를 따라 글이 새겨져 있다. ‘詩와 함께하는 산책길.’ 몇 발자국을 띠니, 첫 번째 시가 등장한다. 김영랑(1902-1950)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란 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아. 봄이 왔구나! 동장군이 기꺼이 항복한 것이다. 그 견고하던 겨울이 봄에게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것은 하늘의 이치이며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성인의 도다. <도덕경> 81편 마지막에 이런 말이 생각난다: 天之道 利而不害 (천지도 이이불해) 聖人之道 爲而不爭 (성인지도 위이부쟁). “하늘의 도는, 만물을, 누구라도, 이롭게 할 뿐, 해치거나 해롭게 만들지 않습니다. 자신의 임무를 알고, 그것을 입으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고요히 완수하는 성인은 만물과 만인을 위해서 행할 수 있지만, 조금 다르다고 해서 다투지 않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부쟁하지 않고 봄햇살처럼 따스하게 살고 싶다.
사진
<시 읽는 소녀를 보는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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