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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2. (金曜日) “결혼結婚과 간격間隔”

2024.2.2. (金曜日) “결혼結婚과 간격間隔”

     

오늘 아침에 <요셉이야기> 9번째 수업시간에 내준 글쓰기 숙제를 조용히 읽었다. 14분이 ‘용서’에 관한 글을 보내주셨다. 분량도 내용도 다양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용서’라는 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고백들이다. 우리가 아는 숭고한 단어들의 특징은 자기모순이다. 용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포용이다. 마치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품는 것처럼. 인내는 인간의 한계로는 인내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 참아내는 도력이다. 마치 마라톤 선수들이 마의 30km를 ‘러너스 하이’라는 그의 뇌에서 분출되는 도파민의 도움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둔갑시킨 이족보행 걷기도 마찬가지다. 두발이 번갈아 가며 한 걸음 한 걸음 나갈 때 전진한다.

     

수강생들의 글을 읽은 후에,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관하여’라는 시와 내가 이전에 쓴 ‘간격’이란 글이 생각났다. 신은 우리에게 남자나 여자에게 낯선 자를 짝으로 맺어주셨다. 그리고 그 대상을 사랑해보라고 명령하신다. 우리가 상대방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만을 볼 때, 사랑의 씨앗이 상대방 마음에서 움이 튼다. 지브란의 시 ‘결혼에 관하여’라는 시와 내가 이전에 쓴 ‘간격’이란 글을 수강생들과 여러분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On Marriage

BY KAHLIL GIBRAN

결혼에 관하여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

     

Then Almitra spoke again and said, And

what of Marriage, master?

And he answered saying:

그리고 알마트라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리고 말했다.

“스승님,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You were born together, and together you hall be forevermore.

You shall be together when the white ings of death scatter your days.

Ay, you shall be together even in the ilent memory of God.

But let there be spaces in your togetherness,

And let the winds of the heavens dance etween you.

     

“너희들은 함께 태어났다. 그리고 함께 영원히 지낼 것이다.

너희들은 죽음의 하얀 날개가 너희 생애를 마칠 때까지 함께 지낼 것이다.

오, 너희들은 심지어 신을 조용히 기억할 때조차, 함께 지낼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의 ‘함께’에는 그 사이에 공간空間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바람이 너희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Love one another, but make not a bond f love:

Let it rather be a moving sea between he shores of your souls.

Fill each other’s cup but drink not from ne cup.

Give one another of your bread but eat ot from the same loaf.

Sing and dance together and be joyous, ut let each one of you be alone,

Even as the strings of a lute are alone hough they quiver with the same music.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을 한데 묶지 마라.

너희 영혼들의 해변 사이에 움직이는 거대한 바다가 있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한 잔에서 마시지 말아라.

서로에게 빵을 주되, 동일한 덩어리에서 먹지 마라.

함께 춤을 추고 기뻐하되, 각자가 홀로 있게 하라.

심지어 류트의 현들도 동일한 음악에 소리를 내지만, 혼자 있지 않은가!

 

Give your hearts, but not into each ther’s keeping.

For only the hand of Life can contain our hearts.

And stand together yet not too near ogether:

For the pillars of the temple stand apart,

And the oak tree and the cypress grow not in each other’s shadow.

너희의 심장을 주되, 서로가 그것을 간직하고 독점하려 하지 마라.

그래야, 삶이란 신비한 손이 너희들의 심장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 마라.

왜냐하면 신전의 저렇게 서 있는 이유는, 기둥이 떨어져서 서 있기 때문이다.

저,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에서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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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격’間隔

배철현

     

나를 지금-여기에서 존재하게 만드는 실질적이며 물질적인 환경은 무엇인가? 무엇이 나를 홀로선 인간으로, 두발을 굳게 딛고 일어선 자립하는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들까?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말하는 것처럼, ‘코기토 에르그 숨’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처럼,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나라는 ‘레스 코기탄스’res cogitans라는 존재가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인가? 생각하는 내가 나를 너와 구분시키고 나라는 존재를 확정해 주는가? ‘생각’만큼 나를 나로서 정의하는 것은 관계關係다. 그 관계의 핵심은 간격間隔이다. 간격이 존중될 때, 관계가 온전해지고 나는 독립적인 나로서 존재한다.

     

나를 포함한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그럴 듯하고 그러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나와 너, 그리고 불특정 다수인 3인칭과 구별을 지워주는 ‘사이’ 즉 ‘간격’이다. 나와 너와의 관계에서 그 물리적이며 질적인 ‘사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가 무너진다. 나와 그(녀) 혹은 그들과의 관계에서 이 둘을 구별하는 시공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를 포함은 어떤 것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나와 너 사이라는 차이差異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을 자연스럽고 독립적으로 만드는 필요조건이다. 이 구별이야말로 숭고하고 거룩하다. 유대인들은 ‘거룩’이란 개념을 ‘코데쉬qodesh’ 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코데쉬’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간격; 구별’이다. 내가 구별하여 그 간격을 인정하고 존경한 것만이 거룩하다.

     

나는 거울을 본다. 거울에 반영된 나를 나로 인식할 수 있는 이유, 나와 거울간의 공간空間때문이다. 나와 거울 사이의 ‘빔’(空)이라는 공간이 나를 살아있는 존재로 만든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로만 야콥슨Roman Jacobsen(1896-1982)은, 인류의 진지한 생각을 담아 문명을 만든 ‘텍스트’에는 두 가지 언어가 있다고 기술한다. 한 언어는 문법적으로 분석가능한 정보다. 예를 들어, “You love me.”라는 영어 문장에서 ‘You’는 나를 사랑하는 주체이며 주어다. ‘me’는 네가 사랑이라는 동작을 통해 그 동작의 대상이다. 그리고 ‘love’라는 동사는 네가 나라는 존재에게 가하는 마음의 상태이자 동작이다. 여기서 이 가시적인 ‘You’ ‘me’, 그리고 ‘love’라는 단어는 문법적이며 가시적인 언어다. 야콥슨은 이 언어를 ‘버벌 랭귀지’verbal language라고 불렀다.

     

그는 이 언어만큼 혹은 이 언어보다 더 중요한 언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언어는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언어다. 바로 ‘넌버벌 랭귀지’non-verbal language다. ‘넌버벌 랭귀지’는 이런 것들이다. 영어문장의 첫 글자는 ‘대문자’로 쓴다. 대문자는 이 단어가 문장의 시작이며, 이 문장을 읽는 우리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신호를 준다. ‘You love me.’라는 문장에서 ‘You’와 ‘love’와 ‘me’사이의 간격이 이 셋을 각자로 존재하게 만든다. 만일 그 간격을 무시한 ‘youloveme’라고 표현은 문장이 아니다. 거기에는 대문자,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격, 그리고 문장이 끝났다는 상징인 마침표인 점(.)이 필요하다. 만약 내가 이 문장에 ‘물음표’인 ?을 맨 끝에 붙이면,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You love me?’ 이 물음표라는 문장부호를 더해, 이 문장은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혹은 사랑하지 않는지 존재적인 고민의 표현이다. 혹은 ‘You, Love me!’라는 문장도 전혀 다르다. 이 문장은 제발 나를 사랑해 달라는 표현이다.

     

‘You love me.’라는 문장에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격’은 이 단어만큼이나 함축적이다. 말과 글로 정보를 주지 않으면서도, 이 문장 전체의 의미를 확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 침묵이다. 이 간격의 침묵이야 말로 웅변이다. 인류가 남긴 위대한 예술작품에는 항상 이 침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심연을 자극하여 자신의 삶을 노래하게 만든다. 예술의 특징은 바로 ‘엘로?시아 엑스 실렌시오’eloquentia ex silentia, 즉 ‘침묵 속에 웅변’이다.

     

     

나와 너 사이를 맺어주는 위대한 감정인 사랑엔 간격이 필요하다. 이 절제된 간격이야 말로, 내가 너를 한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표현이다. 간격이 사랑의 완성이다. 보헤미안 오스트리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게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시인이 되고 싶은 19살 난 군인 프란츠 캅푸스(1883?1966)와 1902년에서 1908년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라이너는 일곱 번째 편지에서 ‘사랑’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은 선합니다. 사랑은 어렵습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완수해야할 가장 어려운 임무일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궁극적이며 인간이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이며, 인간이라는 마지막 증거입니다. 사랑은 준비입니다...사랑은 합치는 것, 상대방에게 나를 온전히 주는 것, 그리고 함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연합은 불명하지 않고, 완결되지 않고 한 사람들 다른 사람에게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과의 간격을 존중하는 연습이다. 그 간격은 대상을 온전한 인간으로, 온전한 세계를 가진 가치로 인정하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공간空間, 시간時間, 그리고 내가 장악해야할 순간旬間에도 모두 ‘간격’이 있다. 간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선진사회다. 나는 오늘 그 간격을 인정하고 발견하고 존중하고 싶다. 당신은 그 간격을 존중합니까? 아니면 무시합니까? 당신은 동료와, 부인과 혹은 남편과, 자식과 형제자매와, 반려견과 반려묘와, 자연과의 간격을 인식하고 존중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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