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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19.(月曜日) “충고忠告”(잠언 1장 1-7절 번역과 해설)

2024.2.19.(月曜日) “충고忠告”

(잠언 1장 1-7절 번역과 해설)

     

<모세와 된인간> 줌수업을 하면서 처음에 잠언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반들에게 <잠언>도 차근차근 번역해주기로 약속했다. 오늘 아침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다. <잠언>은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나에게 귀가 따갑도록 읽어 주셨다, 특히 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면, <잠언> 1장 7절-9절을 시시때때로 암송해주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잠언>은 어린 나이, 심지어 최근까지, 이해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여호아, 경외, 지식, 훈계, 관, 금 사슬... 나이가 들고, 아이가 결혼할 나이가 되니, 어머니가 <잠언>을 읊어준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잠언>은 언제나 나에게 묵상 거리를 선물로 준다. 하루를 차분하고 선명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다. 마치 트레드 밀에 올려 한바탕 달리가를 하고나면, 평안이 찾아오듯이, <잠언>을 읽고나면 하루를 상쾌하게 보낼 수 있다.

     

<잠언>은 신이 유대인들을 통해 인류에게 알려준 삶의 실용적인 지혜가 담긴 충고忠告다. 충고는 부모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샘물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경험만이 가져다주는 삶의 이정표里程表이자 거친 바닷길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해도海圖다. <잠언>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다고, 그 목적지에 쉽게 도착할 수 있는 요령이나 반칙이 아니다. 우리의 최선,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불러일으키는 격려다.

     

1장은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절에서 7절까지는 잠언의 목적, 8-19절까지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다음은 잠언의 목적 (1-7절) 번역과 그에 대한 해설이다:

     

1.

מִ֭שְׁלֵי שְׁלֹמֹ֣ה בֶן־דָּוִ֑ד מֶ֝֗לֶךְ יִשְׂרָאֵֽל׃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箴言들은

(해설)

<잠언>은 그 내용이나 언어를 분석해 보면, 기원전 6세기경으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솔로몬 시대부터 구전으로 회전되는 동양의 <논어>와 같은 경구들이 누군가에 의해 집대성되어 수집되었을 것이다. 후대 저자들은, 이런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경구들은, 지혜의 왕인 솔로몬이 영감을 받아 간직한 내용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 첫 구절에 이스라엘 왕이며, 다윗의 아들이 솔로몬을 저자로 기록하였다. 잠언箴言이란 삶의 살아가는 실용적인 가르침이다. 스토아철학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 위한 지침서다.

     

2.

לָדַ֣עַת חָכְמָ֣ה וּמוּסָ֑ר לְ֝הָבִ֗ין אִמְרֵ֥י בִינָֽה׃

지혜와 수련을 깨닫고

분별의 말을 이해하고

(해설)

2-3절은 잠언을 깊이 묵상하고 자신의 삶에서 실천할 때, 그 수련자들이 얻는 ‘마음의 근육들’을 열거하였다: 지혜와 수련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 분별의 말을 가려낼 수 있는 이해력, 현명, 의로움, 판단력, 정직을 수련을 통해 자신의 삶에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다. 지혜智慧는, 시행착오를 통해 얻는 삶의 혜안이다. 젊은이들은 ‘정보’를 알지만, 부모는 인생의 경험으로 완성된 지혜를 습득한 자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삶의 정수를 알아가는 축복의 과정이다. 수련修鍊은 인생엔 공짜가 없다는 가르침이다. 수련을 통해서만 매일 조금씩 전진한다. 그 더딤이 곧 완성이다. 수련은 불편을 감수하고 원칙을 지킬 때, 처음에는 손해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이득인 삶의 철학이다. 잠언은 이 지혜와 수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인생이란 항해에서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해주는 분별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아직 자신이 우연히 접한 정보가 옳다고 착각하고, 그 안에서 마치 컴퓨터 알고리즘과 같은 회로에서 달리다 지친다. 분별의 말이나 가르침을 이해하고 추구하는 것은 행운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남녀노소 구별하지 않고 우울증이라는 늪에 빠진 이유는, 분별의 말을 배우지 못했고, 그 말을 자신의 삶에 옮기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3.

לָ֭קַחַת מוּסַ֣ר הַשְׂכֵּ֑ל צֶ֥דֶק וּ֝מִשְׁפָּ֗ט וּמֵישָׁרִֽים׃

현명, 의, 정의, 정직을 수련을 수용하여,

(해설)

현명賢明이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둠 속이 아니라 빛 속에서 정확하게 보는 능력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 대상을 자신의 경험 안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자신이 그 아둔에 휩쌓여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현명한 자는 자연스럽게 ‘의義’를 실천하는 자다. 정의란 하던 일을 멈추고止 자신이 발견한 인생의 하나一의 원칙으로 스스로我를 대의를 위해 희생양羊으로 기꺼이 바치는 용기다. 의로운 자는 자신에게 한 점 부끄럼이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자다. 자신의 의무이자 임무인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에게 의로운 자는 남들에게도 의롭다. 우리는 그 의로움을 정의正義라고 말한다. 의는 내면적이라면 정의는 외면적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희로애락을 자신의 희로애락올 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화신이다. 정의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표현된 가치가 정직正直이다. 정직이란,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고, 외부의 법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이엔 복종하는 불복종이다. 잠언은, 이 현명, 의, 정의, 정직이란 가치가 수련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고 따르겠다는 결의문이다.

     

4.

לָתֵ֣ת לִפְתָאיִ֣ם עָרְמָ֑ה לְ֝נַ֗עַר דַּ֣עַת וּמְזִמָּֽה׃

단순한 자에게 기민함을, 젊은이에겐 지식과 신중을 준다.

(해설)

단순單純한 자는 외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자다. 섬세纖細한 자는 자신의 그물을 촘촘히 짜서, 왠만한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는 자다. 단순한 자는 자신의 삶에 to-do-list는 있지만, not-to-do-list가 없는 자다.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이란 사실을 무위無爲가 정교한 인위人爲란 사실을 모르는 자다, 잠언은 그런 단순한 자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구별하는 기민機敏함을 준다. 기민을 의미하는 ‘아르마’란 히브리단어는 에덴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했던 뱀의 속성이기도 하다. 예수도 신약성서에서 너희가 뱀처럼 지혜롭기를 주문하였다. 젊은이가 이 기민으로 자신을 장착하면, 이젠 지식知識과 신중愼重을 얻게 된다. 여기서 사용된 지식은 정보가 아니다. 경험이 가져다주는 혜안과 사물, 사람, 사건에 대한 분별을 더한 삶에 대한 총체적인 깨달음이다. 신중愼重이란,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 침묵할 때와 말해야 할 때를 아는 정교한 중심이자 중용中庸이다. 신중이란 용기와 같은 것으로 무작정 적에게 달려가는 만용도 아니고, 적 앞에서 도망하는 비겁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이다. 그 어디를 아는 것이 신중이다.

     

5.

יִשְׁמַ֣ע חָ֭כָם וְיֹ֣וסֶף לֶ֑קַח וְ֝נָבֹ֗ון תַּחְבֻּלֹ֥ות יִקְנֶֽה׃

지혜로운 자는 경청하고 학식을 매일 추가한다.

명철한 자는 삶의 방향을 얻는다.

(해설)

지혜로운 자의 특징은 경청傾聽이다. 그에게 선생은 모든 사람이고 모든 사건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그에게 삶의 신중하게 살라는 가르침이다. 그는 경청은, 세상을 깊이 보고 듣는 마음가짐이다. 지혜로운 자는 대부분 침묵하고 말을 해야 한다면, 간단명료하게 마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행들은 소위 리더들이 침묵하지 못해서 생긴다. 그들이 차라지 벙어리라, 필답으로 대화했다면, 세상이 오래전에 개선되었을 것이다. 지혜로운 자의 다른 특징은 지속적인 배움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실을 너무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운다. 배움이 그치면, 그 사람은 과거에 머무르기 때문에 죽은 자다. 사물을 분별하고 세상의 이치를 아는 명철明哲한 자는 목적지가 아니라 삶의 방향方向을 아는 자다. 방향이란 나의 자세, 발의 위치, 손동작, 생각에서 출발한다. 지금-여기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각도가 맞지 않는다면, 그 미세한 각도가 점차로 엉뚱한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방향이 목적지다.

     

6.

לְהָבִ֣ין מָ֭שָׁל וּמְלִיצָ֑ה דִּבְרֵ֥י חֲ֝כָמִ֗ים וְחִידֹתָֽם׃

잠언과 비유와 현자들의 말과 그들의 심오한 뜻을 헤아릴 수 있다.

(해설)

만일 젊은이가 잠언, 비유, 현자의 말들을 공부하고, 자신의 삶에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다. 알고, 행하고, 실제로 현장에서 적용해보고, 가르쳐보고, 평가해 본다면, 남들이 알지 못하는 심오深奧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지혜는 한번 보고 사라지는 신문에 있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인류가 간직해 온 경전과 고전 안에서 발굴해야 할 보물이다. 그 보물은 흔하지 않기에 심오하다.

     

7.

יִרְאַ֣ת יְ֭הוָה רֵאשִׁ֣ית דָּ֑עַת חָכְמָ֥ה וּ֝מוּסָ֗ר אֱוִילִ֥ים בָּֽזוּ׃ פ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를 깨닫는 시작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 훈계를 멸시한다.

(해설)

솔모몬은 1-6절에 등장하는 모든 것 7절에서 요약한다. ‘야훼를 경외敬畏한다’라는 말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이 과학자가 우주를 관찰하면서 ‘신비’와 ‘경외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야훼’는 하늘 높은 곳에서 휜 수염을 날리며 내가 잘못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할 일 없는 할아버지가 아니다. ‘야훼’는 생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생명의 약동이며 신비다. 겨울에 죽었다가 봄이면 살아나는 나무와 풀을 보고, 경탄하는 마음이 지혜 공부의 시작이다. ‘야훼의 경외’는 인간으로 우연히 태어난 우리가 짧은 일생동안 해야 할 임무를 발견하는 것이고, 그것에 매진하는 노력이다. 어리석은 자는 이 가르침을 멸시하고, 자신이라는 이기적인 본능과 욕심을 위해 살다 금방 사라진다. 시간은 멈춘적이 없어, 지금 이 시간이 내가 세상에 태어난 시간이면, 내가 세상을 떠날 시간이기도 하다.

     

사진

<잠언 히브리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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