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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8. (日曜日) “주사酒邪”

2024.12.8. (日曜日) “주사酒邪”

     

12월 3일 늦은 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선포와 어처구니 없는 포고령은, 그의 수준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우리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선택한 대표가, 이 정도라니 창피하기 그지없다. 그는 일생 자신이 한 말을 녹음기를 통해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타인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타인의 녹음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도통 모르는 술주정뱅이의 주사酒邪같다. 평상시 말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급은 사려가 깊은 생각, 공감을 유도하는 생각, 감동을 자아내는 생각을 살해한다. 이 기회에 우리 정치인들은 자신이 하는 말을 돌아보길 기대한다. 칼릴 지브란의 <말에 관하여>라는 시를 통해 말에 관한 몇가지 혜안을 얻을 수 있다:

     

On Talking by Khalil Gibran

말에 관하여, 칼릴 지브란

     

And then a scholar said,

Speak of Talking.

And he answered, saying:

그리고 나서 한 학자가 말했다.

“말에 관해 말해주십시오.”

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You talk when you cease to be at peace with your thoughts;

And when you can no longer dwell in the solitude of your heart you live in your lips,

and sound is a diversion and a pastime.

And in much of your talking, thinking is half murdered.

For thought is a bird of space,

that in a cage of words may indeed unfold its wings but cannot fly.

“당신은 자신의 생각과 평화를 유지하기를 멈출 때, 말을 한다.

당신이 자신의 심장의 고독에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할 때, 당신은 입술에 거주한다.

그러면, 그 소리는 기분전환이고 오락이다.

말을 많이 하면, 생각은 반쯤 살해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은 공간에 갖힌 새라

단어란 새장에서 생각의 날개를 펴지만 날 수 없기 때문이다.”

     

There are those among you who seek the talkative through fear of being alone.

The silence of aloneness reveals to their eyes their naked selves and they would escape.

And there are those who talk, and without knowledge or forethought

reveal a truth which they themselves do not understand.

And there are those who have the truth within them, but they tell it not in words.

In the bosom of such as these the spirit dwells in rhythmic silence.

당신들 가운데 혼자 있기가 두려워 수다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로움이란 침묵은 그들의 눈엔, 자신들을 벌거벗은 모습이기에 도망친다.

지식이나 숙고없이 말하는 사람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진리를 드러낸다.

그들 안에 진리를 품은 사람들은 단어로 진리를 표현하지 않는다.

진리를 품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영혼이 율동적인 침묵에 거주한다.

  

(해설)

여기 세상을 책으로 이해한 학자가 한 명있다. 세상을 몸으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책으로 그 일부를 알게 된 편견과 오만 덩어리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지식은 정보라면, 지혜는 정보를 가능하게 만들고 배열하는 예술이다.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학자의 물음에 예언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와 그 말이 생각하는 능력에 끼치는 영향을 말한다. 고요한 생각을 더 이상 조절할 수 없을 때, 말이 등장한다. 수다쟁이의 말, 생각없이 뱉은 소리는, 그의 머리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는 말장난일 뿐이다. TV나 동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소리는, 가슴에서 올라오는 말이 아니라, 머리에서 튕겨 나오는 지껄임이다. 그 지껄임은 ‘반쯤 살해된 생각’이다. 생각은 고요한 묵상의 결과다. 묵상은 침묵과 평온한 마음이 필요하다. 말은, 종종 의미가 담긴 생각을 생산하는 침묵을 방해한다. 진리를 품은 사람의 영혼은 율동적인 침묵을 수련하는 사람이다.

     

When you meet your friend on the roadside or in the market place,

let the spirit in you move your lips and direct your tongue.

Let the voice within your voice speak to the ear or his ear;

For his soul will keep the truth of your heart

as the taste of the wine is remembered

When the colour is forgotten and the vessel is no more.

당신이 길거리에서 혹은 시장에서 친구를 만날 때,

당신 안에 있는 영혼이 당신의 입술을 움직이고 당신의 혀를 인도하게 허용하십시오.

당신의 목소리 안에 있는 목소리가 당신의 귀에 혹은 그의 귀에 말하게 허용하십시오.

왜냐하면, 포도주의 색이 잊혀지고 병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포도주의 맛이 기억되는 것처럼, 그의 영혼은 당신 심장의 진리를 간직할 것입니다.

     

(해설)

예언자는 심사숙고를 통해 말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인간 안에 존재하는 ‘영혼’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 영혼은 생명을 지닌 존재라면 모두 소유하고 있는 신적인 침묵이다. 예언자는 우리의 목소리 안에 존재하는 목소리가 말하게 하라고 조언한다. 그 목소리가 상대방의 심장과 영혼과 연결된 귀에 말하게 하라. 이 목소리는 엘리야가 시내산에서 들은 ‘침묵의 소리’이며 무함마드가 히라동굴에서 들은 알라의 소리이며, 우리의 내면에서는 울려 나오길 바라는 ‘옴’Aum이며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발설한 최초의 음, 즉 원음原音이다. 그러기 위해서 말하는 사람 자신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나는 내 말을 먼저 듣는가? 그 말은 심장에서 직조된 언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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