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7.(金曜日) “우리는 어둠 가운데 있는가?”
불법적이며 어리석은 비상계엄과 이어지는 탄핵들로 한반도에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다. 이 난리 가운데도, 한 소년이 복숭아 껍질 까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짙은 갈색으로 빛바랜 복숭아를 깎고 있다. 앞에 있는 복숭아는 아직도 분홍색과 붉은 색을 띠고 있지만, 그의 손에 잡을 수 없는 우주의 주인이 만든 시간이 선사한 시듬을 상징하는 깊은 갈색이다. 오른손에 든 칼끝이 시계방향으로 나선형으로 솟아오르고 있는 껍질 사이로 날카롭게 비쭉 나와 있다, 그는 이 작업에 온전히 집중하여 고개를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였다. 그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쌍가풀 진 두 눈은 복숭아를 간신히 볼 정도로 지그시 감았다. 집중하니 입은 저절로 오무려졌다. 왼쪽 입술 부분이 더 두툼하여 올라왔다. 그는 과일을 깎기 위해 최적화된 옷을 입었다. 느슨한 아마포 옷은16세기 말, 로마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최신 유행 셔츠였을 것이다. 이 느슨한 흰색 셔츠의 중앙은 명치까지 V자로 깊이 파여있다.
그는 식탁 위에 올려진 복숭아 껍질을 정성스럽게 벗기기 위해, 의자에 앉았을 것이다. 식탁과 의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을 감상하려는 여러분과 내가 상상을 동원하여 채워 넣어야 할 소품들이다. 그는 치렁치렁한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렸다. 최대한 몰입하기의해, 과일을 담고 있던 가는 가지를 엮어 만든 바구니를 뒤엎어 과도를 들고 있는 오른 팔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바구니에 쏟아져 나온 솔방울과 복숭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과일을 잡고 있는 왼손이 과도를 잡고 있는 오른 손에 비해 커 보인다. 왼손 엄지와 검지로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과도가 효율적으로 껍질을 벗기도록 적당하게 잡고 있다. 오른손 엄지는 복숭아 뒷부분을 밀고 있고 오른손 나머지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밀고 쥐고 있는 과도는 그의 의도대로 복숭아 살을 파고 들어갔다. 껍질이 마치 우리 은하계가 빅뱅으로 탄생할 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나선형 모형으로 튕겨 나가고 있다.
이 그림은 이제 막 화가로서 인생을 시작한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첫 번째 작품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미리시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라는 도시의 장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 카라바조에서 1571년 9월 29일에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를 카라바조 동네 출신이기에, 원래 이름보다는 동네 이름인 ‘카라바조’로 그를 불렀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밀라노를 다스리던 프란체스코 스포르자 1세의 건물을 장식하고 관리하는 ‘무라토레’ 즉 벽돌공이었다. 어머니 루치아 아나토리는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카라바조는 난폭하고 다혈질의 성격으로 종종 범죄를 저질러, 일생 동안 감옥을 드나들었지만, 그때마다, 외가쪽 귀족들이 그를 출소하게 만들었다. 그가 여섯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역병으로 죽었고 그의 가족 후원자였던 스포르자 1세도 1583년에 죽어, 그는 어려서부터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카라바조의 어머니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친척 콜로나 가문의 추천으로 밀라노의 유명한 화가인 시네모 페테르짜노의 문하생이 된다. 페테르짜노는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고 있던 소위 ‘전성기 르네상스’의 예술방식인 ‘매너리즘’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표현하려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실감이 나게 표현하려는 사실주의 화가였다. ‘매너리즘’이란 1520년경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유럽 전체를 풍미한 미술 양식으로, 표현의 대상을 지적이면서도 인공적으로 묘사하였다. 카라바조의 첫 번째 스승인 페테르짜노를 통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따른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라는 자연주의를 섭렵하였다.
카라바조는 4년동안 페테르짜노로부터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화풍을 연습한 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그림들을 감상하였다. 1595년, 그가 24세가 되었을 때, 카라바조는 밀라노에서 경찰과 시비가 붙어 칼로 찌른 후, 유럽의 집시들이 몰려들어 익명성을 보장하는 로마로 도망한다. 그는 우연이지만 운명적으로 예술의 중심지인 로마에 도착한 것이다. 그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돈이 한 푼도 없었고, 그를 도와줄 친척도 없었고 집도 없었고, 그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사람도 없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카라바조가 도마에 도착한 첫해에, 10번이나 거주지를 옮겼다. 그는 로마를 돌아다니며 르네상스 시대 천재적인 건축가들의 건물과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실망했다. 자신이 연결 할수 있는 강력한 심리적인 고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로마의 뒷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이 앞으로 구가할 미술의 희망의 불빛을 발견한다.
한동안 정체 없이 집시처럼 돌아다니던, 카라바조는 판돌포 푸치라는 화가의 집에 머물면서 숙식을 해결하였다. 그는 푸치 밑에서 다른 화가의 그림을 베껴 그리는 습작작업을 한다. 푸치가 연습생들에게 준 음식은 샐러드 밖에 없었다. 카라바조는 그를 ‘몬시뇰 샐러드’ 즉 ‘샐러드만 주는 꼰대’라고 불렀다.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1593년)은 카바라조가 푸치의 집을 떠나, 저명한 화가 주세페 체사리가 운영하는 화실에서 일하기 시작한 시점에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이곳에서 주로 ‘꽃과 과일’을 그리는 정물화에 집중하였다. 오늘날 적어도 4년의 아주 유사한 그림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당시 로마에서 잘 팔리는 정물화였을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델은 후에 등장하는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 (1595)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앉고 있는 천사와 <젊은 음악가> (1595)에 등장하는 네 명의 악사중 맨 왼쪽에 등장하는 큐피드로 분장한 소년과 닮았다. 아마도 카라바조가 로마 길거리에서 만난 아무개었을 것이다.
이 소년은 마치 연극 무대에 홀로 앉아 있는 배우와 같다. 배경은 온통 암흑이고 강렬한 조명이 왼편에서 사선으로 그이 얼굴, 몸, 특히 손을 비추고 있다. 그 조명이 강렬하여 얼굴 왼편은 그림자로 그늘졌고 그의 구려진 셔츠도, 조명을 받는 부분은 흰색으로 빛나지만, 굴곡진 부분은 다양하게 어둠이 깃들었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과 특히 당시 유행하던 ‘매너리즘’ 그림과는 달리 배경이 암흑이고 혼돈이다. 빛은 바로 혼돈이 낳은 자식이다. 카라바조가 읽고 또 읽었을 구약성서 첫 번째 책인 <창세기> 1장1-3절은 다음과 같다. “신의 우주를 창조하기 시작할 때, 땅은 비어있고 형태가 없었으며, 어둠이 깊은 위에 있고, 강력한 바람이 물을 억누르고 있었을 때, 신이 ‘빛이 생겨라!’말하니 빛이 생겼다.”
카라바조는 틴토레토와 엘 그레코, 뒤러와 같은 확사들이 이미 실험하고 있는 소위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즉 명암을 통해 그 대상의 심리를 표현하려는 화법을 완성하였다. 키아로스쿠로는 ‘밝음’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와 ‘어둠’을 의미하는 ‘스쿠로’의 합성어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로 묘사하려는 대상을 평면이 아니라 그림자로 드러난 삼차원으로 표현하였다. 마치 연극무대 올라간 주인공의 얼굴이 내려 쏘인 조명의 도움으로, 관람자들은 자연스럽게 대상의 마음으로 입장한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건축가 필립포 브루넬레스키이 발견한 선형원근법에 의거하여 대상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카라바조은 르네상스 미술의 성배인 원근화법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배경을 검은색으로 처리하였다. 자신 표현하려는 대상에만 강렬한 빛을 발사하여, 마치 무대 위에 올라간 주인공을 보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
카라바조에게 삶은 어둠이며 예술은 빛이었다. 그에게 삶은 이탈리아어로 ‘소토보스코’sottobosco, 즉 한치의 앞도 볼 수 없는 ‘덤불’이었다. 소토보스코는 정물화에서 과일이나 식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위험한 어두운 숲은 의미한다. 이탈리아의 문호 단테가 빛이 존재하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어두운 숲속’(selva oscura)를 의미한다. 카라바조는 빛과 질서는 어둠과 혼돈의 자식이란 진리를 400년전에 발견하여 인류에게 선물하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현대문화을 활짝 연 예언자다. 카라바조 그림은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대한민국에, 그 끝에 빛이 있다고 알려주는 희망이다.
그림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1593년)
유화, 1593년, 68cm x 62.5cm
로마 폰다치오네 로베르토 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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