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3. (火曜日, 동지冬至 다음날) “경치景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동지 다음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을 나서 뒷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영하 13도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콧구멍이 말라 타 들어가, 그 안에 고드름이 매달리는 느낌이다. 앞선 걸어가는 샤갈의 수염엔 이미 투명하고 가느다란 얼음 막대기가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언덕을 오를 때마다 그의 입에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구름과자가 생겼다 이내 사라진다. 오늘은 진정한 의미의 새해 첫날이다. 낮의 길이가 급기야 길어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신이 ‘빛이 생겨라’ 멸영하여 어둠이 퇴거하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산에 들어서니 고요하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던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잠시 따스할 때까지 퇴거한 것이다. 우리가 입산하니 저 멀리 가시덤불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던 고라니가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닌 산등선 뒤로 사라졌다.
50억년전, 원-지구가 화성과 충돌하여, 산산 조각이 나 우주의 먼지가 될 뻔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지구는 23도 기울어지고, 그 충돌로 떨어져나 간 먼지들이 중력에 의해 뭉쳐, 기적적으로 달이 형성되었다. 달, 태양, 태양계가 서로 밀고 당기는 구심력과 원심력이라는 중력의 원리로, 지구는 현재까지 생명체게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 되었다. 태양은 달과 합세하여, 지구를 멀리 풀어주었다가, 그 절묘한 시점에 다시 당긴다. 만일 태양이 끌어 당지기 않는다면, 지구는 튕겨져 나가 우주의 미아가 될 것이다.
지구는 밀당의 천재다. 태양이 싫다고, 마치 탕자에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저 멀리 도망친다. 도망 친 장소가 자신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천국같지만,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급기야 돼지의 먹이로 배를 채워야하는 비참한 상태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다. 성서에서는 그 땅를 ‘머나먼 땅으로 깊숙이’ 그리스어로는 ‘에에스 마크란 코란’eis makran xoran이라고 표현하였다. 지구가 모체인 태양을 떠나 멀리 달려간 시점이 바로 동지冬至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로, 태양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영원한 추위가 지속될것만 같은 공포의 시간이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10만년전에 오늘날 유럽에 도착했을 때는 빙하기였다. 영하 20도에서 영하 5도사이 혹독한 추위가 기원전 만년까지 지속했다.
그들에게 동지는 죽음의 시간, 더 이 상 절망할 수 없는 자포자기의 죽음의 시간었다. 예수가 태어난 시점은 아마도 4월경이었을 것이다. 목동들이 들판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기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시대, 호모 사피엔스가 희망을 품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시점인 동지를 예수가 태어난 날로 잡았다. 동지에 삼일만에 부활한 예수를 기념하기 위해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잡았다. 신의 한수다. 크리스마스는, 절망 속에 희망이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선포한 날이다.
숲에 들어가니, 나무도 숨을 죽였다. 낙엽과 솔방울은 그제내린 눈으로 덮였있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이들이 충분하게 죽어지내니, 마침내 희망의 빛이 이들을 비춘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기마음대로 살겠다고 도망치는 지구를 우주을 관장하는 보이지 않는 힘인 중력이, 그 줄을 놓지 않고당기기 시작하였다. 태양과 지구의 밀당이 팽팽하여, 마치 태양이 멈췄있는 것처럼 보여, 서양에서는 이 날을 윈터 솔리스티스winter solistis라고 불렀다. 충분한 절망은 희망의 시작이다.
예쁜이는 우리를 뒤따라 오다, 발이 시려운지, 이내 집으로 내려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언덕위를 올라 산등선을 산보할 것이다. 오늘이 새해 첫날이기 때문이다. 미쳐 등산화에 장착할 아이젠을 마련하지 못해 낙엽 위에 쌓인 눈이 미끄러워, 비탈에서 엉덩방아를 여러 번 찌었지만, 이내 일어날 수 있었다. 낙엽과 눈이 푹신한 침대가 되어주었다.
산등선에 올라 앉았다. 마침 저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등선 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이 야산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지난 2년반동안 우리만 다녔으니, 우리 소유다. 지주는 땅을 소유하지만, 시인은 경치景致를 획득한다. 자연은 자신을 정성스럽게 찾는 이들을 위해, 자신이 품은 궁극의 모습인 경치를 매일매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선물해준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을 감상하지 못한다. 인간은 그 자연을 손으로 만져 해치려고 하지만, 자연이 품은 아름다움, 그 경관은 인간에게 숨겨져 있다. 영적으로 깨어난다는 말을 무엇 의미인가? 영적으로 각성한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산과 강, 나무와 꽃, 동물과 자신이 하나라는 진리를 깨닫는다. 당신은 땅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경치를 품고 있습니까? 우주의 중력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다시 품에 당겨주시니 감사하다. 오늘은 우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새해 첫날이다.
사진
<야산에서 태양을 맞이하는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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