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6.(土曜日) “대면수업對面受業”
오늘을 아방가르드 시즌 III: 요셉이야기 수업을 대면으로 진행하는 날이다. 토요일엔 항상 일찍 서둘러야한다. 반려견들과 연인산 근처 야산을 다녀왔다. 거제도에서도 올라오시는 분이 있어, 오늘 대면수업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하였다. 연인산 지류를 올랐다. 눈으로 덮인 산책길이라 반려견들도 놀라는 표정이다. 산책을 다녀온 후, 9시에 집에서 출발하였다. GPS를 보니 11시 10분에 도착이다.
이 수업은 배원기 원장님께서 자발적으로 봉사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이주전에 대면수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지난 가을 예수회센터에서부터 함께 공부해온 여덟분이 지혜를 모았다. 이분들이 모두 내가 이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하도록 돕는 분들이다. 남편분이 서초동 가톨릭 성모병원에 계신 분을 통해, 한 교실을 빌릴 수 있었다. 원장님은 이 장소를 답사하신 후, 사진을 내게 보내면, 장소가 좋은지 판단해 달라고 물으셨다. 저는 줌수업에 익숙한 분들이 대면수업에는 20명정도가 올것이라고 추측하였지만, 오산이었다. 전국에서 41분이나 오셨다. 가족이나 친구를 모셔온 분들도 있었다.
오전 11시에 강남 성모병원 본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공부하는 장소는 본관 건너편에 있는 건물 1층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원장님을 비롯하여 여러분들이 반갑게 인사하였다. 세미나실로 들어가니, 양편에 마련된 책상 사이로 간이 의자들이 정렬되었다. 나는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도착하여 여러 가지를 점검하는데, 그날은 그 의례를 처음부터 놓쳤다.
대부분 처음으로 대면하는 분들이다. 나는 옆 의자에 바바리, 목도리, 가방을 옆 책상위에 놓고, 가운데 마련된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생각해보니 오늘 함께할 교재와, 항상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나를 진정시켜주는 고동색 직사각형 알람시계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교재와 얼람시계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잠시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멀리서 이곳까지 오신 분들에게 최선의 강의를 할수 없다고 판단하여, 잠시 음악을 틀어놓고 눈을 감기로 결정했다.
우리 성경공부의 주제음악은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다. 이 음악은 영화 ‘셔터 아일랜드’와 ‘컨택트’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하다.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에서 이 음악을 찾아 잠시 틀어놓고 눈을 감았다. 저 멀리 거제도에서도 오시고 친구과 가족들까지 모시고 오신 분들을 위해, 나는 이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하는가?
항상 그렇듯이 영시로 시작하였다. 미국 시인 메이 사튼(1912-1995)의 ‘이제야 비로서 내가 되었네Now I Become Myself’라는 시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비로서 내가 되었다니!’ 이 시는 무엇을 말하는다. 사시인은 ‘나’와 ‘내자신’을 구분한다. 나는 가까이는 너와 구분되고, 멀리는 그(녀)과 구별되는 상대적인 명칭으로서 1인칭이다. 2인칭과 3인칭이 없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내 자신’은 주위사람들이 인식하는 객관적인 주체가 아니라, 1인칭이 의식하는 내면의 나다.
이 내면의 나인 Myself를 시인 월트 휘트먼은 Song of Myself의 첫 단락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s to you.
“저는 저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축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노래합니다.
내가 취한 것을 당신도 취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게 속한 모든 원자조차도 당신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교육과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내공을 길러, 남들이 보는 내가 아니라, 내가 존경하여, 타인이 흠모할 수 있는 내 자신의 수련이다. 참석자들이 자신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가슴에 착용하였다. 참석자중 20명정도가 매주 부과된 글쓰기 숙제를 제출하였다. <요셉이야기>에 맞춰, 이들은 다음 다섯가지 글을 제출하였다: 첫째, 파란만장한 삶; 둘째 시기라는 감정; 셋째, 구덩이에 빠진 난처한 사건; 넷째, 가식; 다섯 번째, 섭리.
내가 놀란 것은 이 어려운 주제로 글을 제출하는 분들이, 글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삶이 필연적으로 우리 삶에 던지는 직구, 커브볼, 데드볼을 덤덤하게, 그리고 가슴 에이게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내가 이 줌수업을 통해 획득한 성과는, 대면수업과는 달리, 수강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가감 없이 쓰도록 요구하고, 그들이 이 굉장한 요구를 수용하여 글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겐 화면에 등장하는 도우미로 생각하여,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 수업에 핵심인 질의-응답시간을 생략한 점이 가장 아쉽다. 열 번째 마지막 수업에는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한사람 한사람 그 사람만이 지닌 인생이야기를 듣고, 수업을 듣는 도반들과 공감하고 싶다. 수업을 마치고 7분과 함께 병원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오후 네시경 성모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경춘고속도로를 달렸다. 수강자이며, 누구 보다고 자기변신중인 작곡자 배준희선생의 음악을 틀었다. 의연한 음악으로 2024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아련하면서도 희망찬, 절망과 희망이 혼재된 감정의 소리가 내 심장을 두드린다.
이 대면수업에서 아쉬운점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10분 지각한 점
2. 질의-응답시간을 가지지 못한 점
3. 글쓰기와 코멘트에 대한 대화를 가지지 못한 점 (*언젠가 개인면담을 해야겠다)
4. 더 넓은 강연장을 확보하지 못한 점
영상
<작곡자 배준희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의연한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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