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4.1.25. (木曜日) “경구명상警句瞑想”

2024.1.25. (木曜日) “경구명상警句瞑想”

     

반려견들은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처럼보이나, 매 순간, 한 장소에 집중한다. 그들의 사전에 산만이란 단어는 없다. 나는 저 앞에 쓰러진 나무를 보고 건너갈 방법을 고민하지만, 반려견들은 자신 앞에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코로 분석한다. 그들은 언제나 여기-지금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아침을 여는 명상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짧은 글이나 일기로 된 사상가들의 글을 몇 번이고 읽고 쓰고 마음의 서판書板에 새기려고 노력해온 지 12년이나 되었다. 매일 반복하여 점점 깊어지는 방법을 찾아왔다. 내가 암송하는 구절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최근 에크나쓰 이스와란Ekanath Easwaran가 Passage Meditation이란 책에서 그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이 책은 1978년에 Meditation: Commonsense Directions for an Uncommon Life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었다. 나는 그의 경구명상을 좋아한다. 인류가 지난 5000년동안 남긴 경전이나 경전수준의 고전에서 인생의 지혜와 깨달음이 담긴 영적인 경구를 천천히, 자세히, 읽고, 암송하고, 느낀 바를 적는다. 이 경구들은, 그것이 성서든지, 우파니샤드든지, 혹은 도덕경이던지 특정 종교의 교리나 신조를 초월하고 포월한다. 이 경구들은 현자들이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높고, 깊고, 넓은 삶의 지혜를 추구한 경험에서 축출한 거룩한 씨앗이다. 이 경구는 화려하게 만개한 꽃이나 맛있는 과실이 아니라, 아직 종자의 형태로, 내 심장 속으로 들어와 품격을 지닌 훌륭한 나무로 자라날 가능성이다.

     

50살 이전에 명상은 나에게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잠꼬대로 폄하해왔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억지로 쓰고, 남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써왔고, 친구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 50세가 되면서 깨어났다. 루미의 시에 등장하는 포도밭의 벌레처럼, 잎을 야금야금 게걸스럽게 먹는 일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어느날, 내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냐? 네가 오늘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오랫동안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동서고금의 언어들과 경전들을 공부해왔지만, 나는 이 시급한 질문에 할 말이 없다.

     

이스와란은 여기에 소개된 경구들을 매일아침 경구명상으로 암송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도인이지만, 자신이 읽은 경전 구절들 가운데 , 가장 감동적인 네 개의 경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첫번째, 아시시의 성인 성 프란시스의 ‘평화를 위한 기도’

     

Lord, make me an instrument of your peace:

where there is hatred, let me sow love;

where there is injury, pardon;

where there is doubt, faith;

where there is despair, hope;

where there is darkness, light;

where there is sadness, joy.

O divine Master, grant that I may not so much seek

to be consoled as to console,

to be understood as to understand,

to be loved as to love.

For it is in giving that we receive,

it is in pardoning that we are pardoned,

and it is in dying that we are born to eternal life.

     

여기에 등장하는 주Lord는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하얀 수염이 달린 신이 아니다. 주는, 최선의 존재로 우리 밖에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분리되지 않는 분, 우리 에, 내재된 보물이며 우리의 본질이다. 그것은 우리의 몸보다 더 가깝고 우리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자기자신이다.

     

두 번째,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등장하는 상선약수다.,

     

上善若水(상선약수) :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 :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악) :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자신을 둔다.

故幾於道(고기어도) :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居善地(거선지) : 좋은 땅을 골라 거처로 삼고

心善淵(심선연) : 마음은 맑고 깊은 연못을 닮는다.

與善仁(여선인) : 착하고 어진 사람과 사귀고

言善信(언선신) : 말에는 신뢰가 있고

正善治(정선치) : 다스릴 때는 바르게 한다.

事善能(사선능) : 일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하고

動善時(동선시) : 때를 가려 움직인다.

夫唯不爭(부유부쟁) : 다투는 일이 없으니

故無尤(고무우) : 허물을 남기지도 않는다.

     

     

세 번째, 시편 23편에 등장하는 다윗의 노래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He maketh me to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eth me beside the still waters.

He restoreth my soul:

he leadeth me in the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Yea,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thou art with me;

thy rod and thy staff they comfort me.

Thou preparest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ine enemies:

thou anointest my head with oil; my cup runneth over.

Surely goodness and mercy sha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 ever.

     

네 번째는, 리그베다 10.85.47이다.

     

May we be united in heart. May we be united in speech. May we be united in mind. May we perform our duties As did the wise of old. May we be united in our prayer. May we be united in our goal. May we be united in our resolve. May we be united in our understanding. May we be united in our offering. May we be united in our feelings. May we be united in our hearts. May we be united in our thoughts. May there be perfect unity amongst us.

     

그리고 이 구절들을 명상하기 위한 준비는 이렇다:

     

1. 가만히 앉기.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몸을 가지런이 놓는다. 물론, 외부의 소리가 없는 조용한 새벽이면 더욱 좋다.

2. 조용기 암송하기.

먼저 이 구절들을 가만히 읽고 점차로 암송해야한다. 암송은 이 구절들의 단어, 개념, 뉴앙스, 사상을 우리의 심전에 심는 씨앗이다. 구절들이 적절한 시간에 싹을 틔울 것이다.

3. 살포시 눈감기

눈을 감는 이유는 눈을 통해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외부가 뇌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무에 앉은 새를 보거나,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집중할 수 없다. 우리의 오감, 눈, 코, 입, 귀, 피부는 뇌라는 몰입을 관리하는 소켓에 끼워진 전기줄들이다. 명상하는 동안, 이 전기줄을 소켓에서 뽑아내야 한다. 우리가 이 행위를 자유롭게 하게 되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치 피곤한 어린아이가 눈을 감듯이, 눈꺼풀으로 눈을 씌우면, 명상을 시작할 수 있다.

     

사진

<순간을 걷는 반려견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