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4. (水曜日) “사자인간”
니체는 깊은 공부와 사색을 통해,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오래된 경전형태로 저술하였다. 그것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다. 니체는 제 1권의 첫 이야기에서 인간의 세 가지 변모를 기술한다. 동물로 태어난 인간은 깨달음과 깨우침을 통해, 신적인 인간으로 변화해야한다. 니체는 이 변화의 과정을 낙타-사자-어린아이 단계로 설명한다. 동물 상태의 인간이, 변화를 희망하여 그것을 시도할 때 거치는 세 단계를 말한다, 그는 후회가 없는 삶을 살기 위한 영적인 변모의 과정을 동물의 특징을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낙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다.
두번째, 사자의 단계다. 인간이 낙타로 인생의 사막을 건너다보면, 자신의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니체는 그런 욕망을 지는 영혼을 사자로 비유한다. 사자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 싶다. 사자가 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니체는 사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은 독일어 문구로 표시한다: Ich will (이히 빌). ‘이히 빌’은 ‘나는-무엇을 하고 싶다’ 혹은 ‘나는 -을 할 것이다’라는 의미다. 인간이 낙타의 단계에서 사자의 단계로 진입하면, 남들이 부과한 짐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임무를 찾아, 그것을 행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자신의 임무가 된다.
이 두 번째 단계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하나있다. 여기 지금은 멸종된 맘모스 어금니 상아가 남아 있다.
그 상아로 정성스럽게 다듬어 만든 인형이다.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완벽한 인간이다. 나는 이 사자-인간을 ‘사인(獅人)’이란 이름을 붙었다. 가만히 숨을 가다듬고 이 조그만 형상을 응시해보라.
사자는 어슬렁거리며 고개를 떨구고 저 멀리 있는 먹잇감을 찾는다. 하늘의 별을 볼 리가 없다. 그러나 이 사인(獅人) 동상은 하늘의 별을 응시하고 있다. 두 팔과 손을 가지런히 몸에 밀착시키고 양발을 어깨 넓이로 벌려 안정된 자세를 취했다. 이 형상은 4만년 전 작품이다. 구석기 시대 빙하기에 한 예술가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이 아니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 ‘경계적 동물’을 제작하였다. 그녀는 사인을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장소에 은닉시켰다. 웅장한 산맥으로 유명한 독일의 동부 ‘스바비안 유라’라는 지역엔 가파른 절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사인’은 이곳에 위치한 홀렌스타인 스타델(Hohlenstein-Stadel)에서 1939년에 발견되었다. ‘홀렌’이란 독일어는 ‘텅 빈’이란 의미이고 ‘스타인’은 ‘바위’란 의미다. 그리고 ‘스타델’은 ‘헛간’이란 뜻이다. 그녀는 이 텅 빈 공간 하나를 발견하였다. 식구들을 피해, 이곳에 홀로 올라와 태양을 관찰하고 바람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유롭게 산을 다니는 사자도 보았다. 그녀는 이 은폐된 공간에서 조각하기 시작하였다.
인류가 이 기묘한 절벽과 동굴을 조사하기 시작한 시점은, 적어도 3만년 이상이 지난 시점인 19세기 말이다. 독일 고고학자들은 낭만주의에 심취하여, 인류의 기원이 될 단서를 찾고 있었다. 짐승으로 태어난 인간이 반인반사자 동물로 둔갑한 과정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1939년 지질학자 '오토 뵐찡(Otto Volzing)'이 이곳에서 200개 이상 맘모스 어금니 상아조각을 발견했다고 일지에 기록했다. 그러나 나치의 기승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고고학자들은 그 수많은 상아조각을 다시 흙으로 덮어 후대인의 손길에 맡기고 말았다.
고고학자들은 발견 당시,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는 사인(獅人) 조각상을 다른 뼈들과 함께 별다른 언급도 없이 상자에 아무렇게나 보관했다. 근처 울름 박물관 보관실에서 30년간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상자 속에 있었다. 어둠 속에 있던 상아조각들을 빛으로 인도하여 연구를 시작한 한 사람이 있었다. 1969년 독일 튀빙겐대학 고고학자 '야오킴 한(Hahn)'이다. 그가 없었다면 사인을 제작한 조각가의 작품과 천재성이 영원히 묻혀버렸을 것이다.
신은 언제가 호기심을 지닌 한 사람을 선택하여 자신의 비밀을 슬며시 알려준다. 한은 상아조각들이 가득한 상자들을 꺼내 책상에 늘어놓았다. 어린 아이처럼 한 조각 한조각 퍼즐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일정한 모양으로 완성하지 못해, 그는 박물관 유물함에 다시 담아놓았다.
고고학자 한은 거의 40년이 지난 뒤인 2008년부터 이곳을 다시 발굴하기 시작해, 2011년 조각상의 등 부위에 해당하는 두 조각을 마침내 찾아낸다. 한이 이를 조각상에 이리저리 꿰고 맞추면서 마침내 완벽한 형상으로 부활시켰다. 두 조각의 퍼즐이 조각상의 등 부위에 올려져 맞춰지자, 놀랍게도 사자머리와 인간의 몸을 지닌 사인(獅人) 인형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몸에 남아있는 붉은색을 탄소 연대 측정방법을 통해 측정한 결과, 그 제작연대가 무려 기원전 4만 년이었다. 그는 이 조각상을 독일어로 ‘뤠벤멘쉬(Lowenmensch)’ 즉 ‘사인’이라 불렀다. 이 사인 조각상은 현재 독일 울름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사인은 유인원(homo)이라는 학명을 지닌 동물이 창조한 최초의 예술작품이다. 인류의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 로댕, 그리고 자코메티는 사인을 조각한 무명 조각가의 창조 DNA를 물려받는 이들이다. 높이 31.1㎝, 너비 5.6㎝, 그리고 두께가 5.9㎝나 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조각상 아랫배에 튀어나온 부분을 남근이라고 해석하거나 혹은 이 부분을 여성의 둔부로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갈기가 없는 머리를 근거로 암사자의 모습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당시 동굴에 표현된 숫 사자들도 갈기가 없는 경우가 많아 암사자로 단정할 수는 없다. 아니 남성과 여성을 초월하는 원형이다. 이 조각상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 최초의 상징 예술작품이다.
상상해 보자. 한 조각가가 자신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 동물을 재현하기 위해, 맘모스 어금니 상아를 가져다 적당히 잘랐다. 31cm정도다.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석기 칼로 상아에 붙어있는 털과 살을 떨쳐내고 다듬었다. 딱딱한 맘모스 상아 어금니를 다듬는 작업은 예술적인 안목뿐만 아니라, 인내, 몰입, 그리고 정성이 필요하다. 같은 동굴에서 발견된 비슷한 크기의 상아어금니와 그 주변에는 그것을 둘러싼 살과 얇은 뼈를 긁어낸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예술가는 다양한 크기의 돌망치와 부싯돌을 조심스럽게 쪼아내고 베껴냈을 것이다.
학자들은 이런 상아를 만드는 과정은 적어도 370시간 이상의 노동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그녀는 사인을 조각하기 위해 적어도 수개월이 필요했다. 기원전 4만 년, 빙하로 덮혀있던 유럽에서, 대다수 인류는 하루 하루 연명하며 살았다, 맘모스와 같이 거대한 동물들을 효율적으로 사냥하기 위한 계략을 밤새 세웠을 것이다. ‘사냥과 채집’이란 산업은 ‘하루하루를 생존하기 위한 최선의 전략이었다. 낮에는 맘모스나 순록과 같은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저녁에는 불을 피워놓고 밤잠을 설치며 사나운 동물의 침입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한 예술가가 있었다. 그들은 당장 머리로 이해할 수 없고, 입으로 말할 수 없지만,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실마리가 그녀의 예술작업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는지 모른다. 이 창조적인 소수가 없었다면, 그 공동체는 약육강식만이 선인 야만사회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 동굴에서는 뼈로 만든 도구들, 사슴뿔, 구슬과 동물 치아를 엮어 만든 목걸이도 발굴되었다. 이 조각상이 발견된 곳은 아마도 보물창고였거나 중요한 의례를 행하던 장소였을 것이다. 반수반인은 신화에서 인간세계와 동물세계를 넘나드는 샤먼으로 등장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문화가 등장하면서 예술이 출현했고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샤먼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자신이 경험하지 않고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사후세계와 동굴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다. 근처 홀레 펠스(Hohle Fels)라는 동굴에선 풍요의 상징인 비너스 여신상도 발굴되었다. 그녀는 왜 사자-인간을 조각했을까? 나는 그 실마리를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찾았다. 니체는 초인을 수련하는 인간이 거쳐야 할 세 단계로 언급한다: 타인이 부과한 일을 하는 ‘낙타’의 단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의지를 가지고 자유롭게 추진하는 ‘사자’의 단계,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온전히 몰입하는 ‘어린아이’의 단계다. 사자의 삶의 방식은 한마디로 ‘의지’다. 낙타가 사자가 되면, 남들이 부과한 짐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그것을 수행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자신의 임무가 되는 것이다. 러나 사회는 그런 사자인간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용으로 등장하는 사회는 규범, 관습 심지어 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자에게 “너는 이런 것을 지켜야한다”라고 호통친다. 사자가 용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세 번째 단계인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순진하고, 주인을 망각하고,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새로운 시작이며, 그것은 일이 아니라 놀이며, 그 놀이는 자발적으로 돌아가는 바퀴와 같다. 한마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며 ‘거룩한 긍정’의 힘으로 순간순간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이 무명의 조각가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선정하여 매일 매일 몰입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것을 조각한 예술가는 생존에 관련된 다른 일들로부터 해방되어 사인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고, 공동체는 그의 작업을 용인한 것이다.
이 허용이 인류를 '유인원'이었던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변신-변형시켰다. 사인은 3만년 후에 등장한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단지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처럼,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입구를 지키는 라마수라는 괴물처럼, 삶과 죽음, 일상과 거룩, 밝음과 어둠의 경계를 지키고 있었다. ‘홀렌스타인 스타델’은 인류 최초의 신전이었고 사인은 동굴 맨 안쪽에 마련된 특별한 제단에 올라, 저 멀리 빛이 침투해 들어오는 입구(入口)를 응시했다. 사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 동굴로 들어와 자신을 응시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 두발로 우뚝 서시겠습니까? 당신의 눈을 자신이 찾은 하늘과 별에 사자처럼 두시겠습니까? 어린아이처럼, 그 별을 찾아 매일 매일 정진하시겠습니까?
사진
<독일 홀렌스타인 스타델에서 1939년 발견된 사자인간상>
4만년, 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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