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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 (日曜日) “요나”

2024.1.21. (日曜日) “요나”

     

오늘 아침 산책을 다녀온 후, 장편소설을 읽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헤르만 멜빌의 장편소설 <모디빅>을 꺼내 들었다. 오래전에 읽고 가슴이 뛰던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멜빌은 구약성서의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특히 <요나서>에 등장하는 주제를 <모비딕>으로 발전시켰다.

     

구약성서 <요나서>는 4장밖에 되지 않지만, 완벽한 서사구조와 해악, 인간 심리에 대한 혜안이 담겨있다. <요나서>는 항상 오래전 히브리어를 배우던 시절로 인도한다. 나는 이 책을 번역하고 읽으면서 고전 히브리어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1988년, 막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 고전 히브리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테디 히버트Theodore Hiebert라는 교수는 일주일에 3번, 수강생들을 토마스 램딘의 무지막지한 성서 히브리어 문법책으로 괴롭혔지만, 그의 친절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히브리어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 흥미를 놓칠 수가 없어, 그 다음 해, 여름 방학동안, 중급고전히브리어를 수강하였다. 폴 카임Paul Keim이라는 박사학위과정 후보자가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폴은 수강생 4명과 함께 <요나서>를 원전으로 자세히 읽었다. 재세례파였던 폴은,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추적하고, 우리에 대화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히버트나 폴 모두, 재세례파였다. 아직도 이들의 겸손함과 진지함을 잊을 수 없다.

     

<요나서>는 4장으로 구성된 짧은 예언서다. 하느님은 요나에게, 그의 조국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인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회개를 촉구하라고 명령한다. 애국자인 요나는, 그 명령을 수용할 수 없어, 니느웨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타르시스로 배를 타고 도망친다.

     

멜빌은 <모디빅>을 어원etymology’이라는 신기한 부분으로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내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고래’를 의미하는 Whale에 대한 다양한 번역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그는 ‘고래’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를 תז로 적어 놓았다. 아마도 ‘고래’를 의미하는 ‘탄니님’((תַּנִּינִים)을 적으려 시도했으나, 출판사의 잘못이던지, 멜빌의 실수였을 것이다. 하여튼, 제 1장 ‘아련한 것들’Loomings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현대 소설에게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Call me Ishmael. 이 책의 해설자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다. “나를 이스마엘이란 이름으로 불러다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이집트 여인 하갈을 통해 낳은 첫 번째 아들로, 신이 선택한 두 번째 아들 이삭에 밀려, 부랑자가 된다. 이스마엘은 인류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시기는 기원후 7세기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유대인들에게는 모세가, 그리스도교인에게는 예수가 있지만, 무슬림들에게는 신앙의 조상으로 삼을 성서인물로 이스마엘을 선택하여, 그를 이슬람 시조로 삼았다. 이스마엘인, 거의 2600년동안 추방자였다.

     

<모비딕>의 첫 행을 읽으면서 테드 히버트와 폴 카임을 떠올리고 다시 <요나서>를 펼쳤다. Calll me Ishmael만큼 충격적인 첫행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וַֽיְהִי֙ דְּבַר־יְהוָ֔ה אֶל־יֹונָ֥ה בֶן־אֲמִתַּ֖י לֵאמֹֽר׃

하야 더바르-야훼 엘-요나, 벤-아미타이, 레모르.

“야훼의 말씀이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에게 다음과 같이 요나에게 왔다.”

     

‘더바르-야훼’이란 단어로 시작한다. 이 구절을 번역하면 ‘야훼의 말씀’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단어는, 우리가 히브리어 사전에서 찾아 발견한 그 뜻으로는, 이 단어가 담고 있는 함축적이며 다의적인 의미, 그렇기에 우리가 생각하기엔 모순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내가 할 일은, 이 단어를 풀어 설명하는 것이다.

     

1절을 해설-번역한다면 다음과 같다: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힘을 지닌 신인 야훼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말에서 시작했지만, 반드시 행동이나 사건을 마무리 되어야 한다. 그 말씀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야훼는 느닷없이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를 부른다. 요나의 아버지의 이름은 ‘아미타이’로 ‘나의 진리’라는 의미다. ‘진리’란 자기-신뢰로,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신의 형상를 발견한 자다. 아미타이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나다. 요나는 진리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할 자로 그 의미는 ‘비둘기’다. 대홍수가 와서 온 세상이 물에 잠겨 멸망하게 되었을 때, 노아는 방주에서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비둘기는 희망의 상징인 올리브 잎을 입에 물고 돌아왔다. 요나는 인류에게 희망의 말을 전할 예언자로 선택받았다.”

     

언젠가 <요나서>를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는 책을 쓰고 싶다.

     

사진

<멜빌의 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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