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火曜日) “피습被襲”
(갑진년에 희망은 매일묵상쓰기다. 새해를 시작하여, 며칠 지났지만, 그동안 쓰지 못한 묵상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지난달 27일 배우 이선균이 사망하고 오늘 이재명대표가 흉기피습을 당했다. 이 두 사건은 대한민국이라는 이상한 장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참담한 사건이다. 정직과 약속을 기반으로 완성되는 문명과 배려와 안목으로 펼쳐지는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는 나라가 K-culture라는 이름으로 영화, 음악, 스포츠 분야에서 몇몇 천재적인 예술가를 통해 과분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고 이선균이 출연하여 미국 아카데미상을 네 개나 휩쓸었다는 성과는 자랑할만하지만, 이 영화에서 펼쳐진 끔찍한 사건은,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창피하다. 이재명 대표의 피습사건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주장은 항상 진리라고, 타인과 그가 속한 집단의 주장은, 설령 객관적으로 진리라 할지라도, 항상 거짓이다.
이 두 명은 우리가 중독된 ‘관음觀淫주의’와 ‘가학加虐주의’의 희생양들이다. ‘관음주의’는 부러움의 대상에 노골적으로 집착하는 정신병이다. 사회적으로 명성을 지닌 사람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처음에는 부러움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시기로 변질된다. 가학주의는 그 유명인이 실제로 불행해져야, 쾌락을 느끼는 정신착란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들 중 가장 고귀하면서 동시에 가장 비겁하고 잔인한 동물이 인간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궁지에 몰렸을 때, 상대방을 공격한다. 혹은 본능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잡어 먹는다. 약육강식이 동물 세계의 법칙이다. 그러나, 아무리 호랑이라 할지라도 배가 부르면, 지나가는 토끼를 거들떠 보지 않는다. 동물에겐,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공감의 능력을 이미 뇌의 변연계에 장착하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동물이라면 내재하고 있는, 무의식 안에, 공생하려는 마음이 자기만 생존하려는 마음보다 크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어렵게 구축한 문명과 문화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은, 홍수나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도 아니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같은 전염병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관음주의와 가학주의와 같은 치명적인 암이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가장 큰 악마이며 적이다. 로마시대 극작가인 플라우투스는 <아시나리아>라는 연극 495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Lupus est homo homini, non homo, quom qualis sit non novit. 이 라틴어 문장을 번역하자면, “인간은,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을 때, 다른 인간에게 인간이라고 보다는 늑대다.”
SNS시대 인류의 가장 큰 적은 핵이나 환경파괴가 아니라 집단정신병mass psychosis이다. 집단정신병이란 대부분의 인간이 현실감각을 잃고 망상에 빠진 상태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예들을 찾을 수 있다. 16세기와 17세기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집단을 마녀라고 지목하고 끔찍한 처형을 지행한 ‘마녀사냥’이 있었고, 20세기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대중이 참이고 선이기에 모든 권력을 소유해야한다는 전체주의가 등장하였다. 마녀사냥을 통해, 대부분 여성들이 그들이 저지를 범죄가 아니라, 희생양을 찾으려는 정신질환 집단에 의해 화형에 쳐해졌다. 당시 어떤 스위스 마을에는 마녀사냥으로 여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20세기 초에 소련, 나치스 독일, 북한, 중국, 캄보디아와 같은 국가에서, 현실과 동떨어지고 전지전능한 전체주의 지도자가 수백만을 살해하는 전체주의가 등장하였다. 전체주의는 집단정신병이다. 이성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 환자들은 거기에는 악을 상징하는, 그래서 제거되어야만 하는 정적이다. 그 전체주의는 100년이 지난, 21세기에서도 SNS를 타고 더욱 활개를 친다. 전체주의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미개하고 열등하다. 그들은 비이성적이고, 무책임하고, 감정적이며,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개인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범죄를 집단의 이름으로 자행한다.
집단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회 안에서 자신들과 타인들이 저지르는 만행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공공연하게 볼 수 있는 먹방, 술방, 혹은 조폭방송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영상들은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수용되면, 집단광기로 표출된다. 독일 나치스를 용인한 독일민족이 집단광기라는 병에 걸려, 유대인을 600만명 학살에 암묵적으로 동참하였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정신적인 병폐는 전세계 최고 자살율, 전세계 최저 출산율이 그 증거다. 이 문제는 어떤 정치적인 이슈나 경제적인 문제보다 시급하게 처리해야할 문제이다. 그 실마리는 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는 교육에 관한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사진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체크 화가 막스밀리안 퍼너
1901, 96cm x 47cm
Narodni gal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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