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9. (金曜日) “눈물”
내일 ‘요셉이야기’ 여덟 번째 줌수업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만나는 극적인 상황이다. 그들은 치렁치렁한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잘난체하는 요셉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형들이 요셉을 시기한 것이 아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시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인간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운이나 혜택을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이루었다고 착각하는 순간, 오만傲慢이란 덫에 걸린다. 오만은 그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결국 그는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복수를 당하게 된다.
요셉은 형들이 집어넣은 깊은 구덩이로 들어갔지만, 아직도 유아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다. 신은 요셉의 형들을 시켜 그를 구덩이에 구원의 밧줄을 내려 그를 꺼집어 낸 후, 이집트로 내려가는 대상에게 노예로 판다. 인생의 호된 경험을 통해, 요셉이 인격人格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특히 여성에 눈을 뜨게 된 청년이, 주인 보디발 아내가 추근대는 잠자리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셉은 자신의 주인인 보디발을 배신할 수 없기에, 그 신의를 지킨다. 결국 그는 보디발이 관할하는 ‘달과 같이 둥근 집터’라는 구금지역에서 생활한다.
인간에게 던져진 최악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만트라가 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품격을 연마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객관적인 불행이나 객관적인 행복이 없다. 불행과 행복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통해 결정되는 결과물이지 원인아니다. 인생의 바닥은, 오히려 그것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견고한 기반이 되었다. 그는 파라오의 최측근, 파라오의 와인을 관리하는 시종장의 꿈을 풀어 준다.
그 시종장이 파라오 궁전에서 일하고 있는 때, 이번에는 파라오가 꿈을 꾼다. 파라오 두 개의 꿈을 꾸는데, 그는 이집트 땅에 닥칠 기근과 풍년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집트의 모든 현인들과 점쟁이들이 파라오의 꿈을 풀 수가 없었다. 요셉은 이 꿈을 풀고 파라오를 대신하여 이집트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다. 그의 지혜로운 전략으로, 이집트는 고대근동과 지중해에서 유일하게 곡식을 저장창고에 축적하게 되었다.
야곱은 팔레스타인에서 거의 굶어죽게 되자, 아들들에게 이집트로 내려가 곡식을 사오라고 요구한다. 그는 요셉을 읽은 경험이 있어, 요셉의 동생인 벤자민을 남겨두고 다른 자식들을 이집트로 보낸다. <창세기> 41장은 요셉이 그의 형들과 만다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묘사되어있다. 요셉은 그의 형들뿐만 아니라, 히브리 민족 전체를 구원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그의 아버지인 야곱과 동생도 이집트로 내려와야지 신의 섭리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나에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42장 23-24절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20. וְאֶת־אֲחִיכֶ֤ם הַקָּטֹן֙ תָּבִ֣יאוּ אֵלַ֔י וְיֵאָמְנ֥וּ דִבְרֵיכֶ֖ם וְלֹ֣א תָמ֑וּתוּ וַיַּעֲשׂוּ־כֵֽן׃
그러나 너희는 반드시 막내 아우(벤자민)를 나에게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며, 너희가 죽음을 면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21. וַיֹּאמְר֞וּ אִ֣ישׁ אֶל־אָחִ֗יו אֲבָל֮ אֲשֵׁמִ֣ים ׀ אֲנַחְנוּ֮ עַל־אָחִינוּ֒ אֲשֶׁ֨ר רָאִ֜ינוּ צָרַ֥ת נַפְשֹׁ֛ו בְּהִתְחַֽנְנֹ֥ו אֵלֵ֖ינוּ
וְלֹ֣א שָׁמָ֑עְנוּ עַל־כֵּן֙ בָּ֣אָה אֵלֵ֔ינוּ הַצָּרָ֖ה הַזֹּֽאת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진실로, 우리가, 아우의 일로 벌을 받고있다! 아우가 우리에게 애원할 때에, 우리가 그의 영혼의 고뇌를 보면서도, 우리가 그렇게 들어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이런 괴로움을 당하는구나.”
22. וַיַּעַן֩ רְאוּבֵ֨ן אֹתָ֜ם לֵאמֹ֗ר הֲלֹוא֩ אָמַ֨רְתִּי אֲלֵיכֶ֧ם ׀ לֵאמֹ֛ר אַל־תֶּחֶטְא֥וּ בַיֶּ֖לֶד וְלֹ֣א שְׁמַעְתֶּ֑ם וְגַם־דָּמֹ֖ו הִנֵּ֥ה נִדְרָֽשׁ׃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러기에 내가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 죄를 짓지 말자고 하지 않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그 아이의 피값을 치르게 되었다.”
23. וְהֵם֙ לֹ֣א יָֽדְע֔וּ כִּ֥י שֹׁמֵ֖עַ יֹוסֵ֑ף כִּ֥י הַמֵּלִ֖יץ בֵּינֹתָֽם׃
그들은, 요셉이 통역을 세우고 말하였으므로,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요셉이 듣는 줄은 몰랐다.
24. וַיִּסֹּ֥ב מֵֽעֲלֵיהֶ֖ם וַיֵּ֑בְךְּ וַיָּ֤שָׁב אֲלֵהֶם֙ וַיְדַבֵּ֣ר אֲלֵהֶ֔ם וַיִּקַּ֤ח מֵֽאִתָּם֙ אֶת־שִׁמְעֹ֔ון וַיֶּאֱסֹ֥ר אֹתֹ֖ו לְעֵינֵיהֶֽם׃
요셉은, 그들 앞에서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놓아 울었다. 다시 형제들에게 돌아온 요셉은 그들과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 가운데 시므온을 끌어내어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끈으로 묶었다.
요셉의 형들은 화려한, 소매가 손목과 발목까지오는 긴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요셉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이집트어로 말하고, 통역관이 그것을 다시 히브리어로 말하는 과정에서 형들은, 고개를 가우뚱 거렸다. 분명 목소리는 동생 요셉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친동생 벤자민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형들이 자신에게 한 일을 누우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만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에 스쳤다. 형들이 요셉에게 한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는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24절에 다음 세가지 행위를 한다:
첫째, 그의 몸을 돌려 그들이 보이지 않는 장소로 퇴거退去하였다.
둘째, 그곳에서 자신에게 해악을 끼친 형들을 미워하는 자신을 용서容恕하고, 형들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엉엉 울었다.
셋째, 눈물을 닦고 그들에게 다시 돌아갔다. 원래 형들과 맺어야 할 관계를 회복回復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눈물로 인생의 시작을 알리고 가족의 눈물로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한다. 울음과 눈물은 인생이란 여정을 시작하겠다는 선포다. 눈물은 그 경계를 표시하는 강물이다. 물은 이중적이다. 물은 신화적으로 혼돈混沌이면서 동시에 정화淨化다. 혼돈混沌은 무형과 무질서다. 혼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오스’chaos는 비어있는 공간이지만 빅뱅을 준비하는 모체다. 혼돈은 없음이며 동시에 있음인 셈이다. 인류의 조상들은 ‘카오스’를 볼 수 있는 자연현상으로 대체하였다. 그것이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문명과 문화를 하루아침에 파괴할 수 있는 괴물인 ‘홍수’다. 모든 문화에 등장하는 홍수신화는 문명의 시작을 의미한다. 혼돈은 삭제되어야할 과거다.
혼돈을 상징하는 홍수와 물의 이미지는 1세기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특히 사해근처에 쿰란공동체를 만들어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정식멤버가 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의례를 시작했다. 바로 ‘침례浸禮’의식이다. 물은, 어머니의 뱃속, 요나가 들어갔다는 고래의 뱃속, 허먼 멜빌 소설 <모비빅>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합 선장Captin Ahab이 향유고래와 벌인 사투, 그리고 우주가 창조되기 전 혼돈을 상징한다.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유기하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기 위해, 이 물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물은 또한 정화淨化를 의미한다. 이슬람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 손, 발, 그리고 얼굴을 깨끗이 씻는 이유는, 세상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구별된 공간으로 진입하기 전 자신의 얼굴가짐, 몸가짐, 그리고 정신가짐을 정돈하겠다는 의지다. 눈물은 나의 과거를 정화하여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는 표식이다.
‘눈물’은 인류최초의 문명인 고대 이집트의 핵심이다. 태양신인 ‘라’RA의 눈은 우주창조와 인간창조의 비밀이 숨겼다. 이집트 신화에 의하면 혼돈의 신이자 사막과 죽음의 신인 세트Seth가 재생과 영생의 신인 오시리스Osiris를 시기하여 그의 시신을 여러 토막으로 나누어 지중해 전역에 유기하였다. 오시리스의 부인인 이시스Isis여신이 죽은 그의 시신들을 모은 후, 기적적으로 태양신 호루스Horus를 임신하여 낳는다. 태양신인 호루스는 고대 이집트어로 ‘멀리 떨어진 (인간을 지켜보는) 존재’라는 뜻이다. 호루스는 삼촌 세트Seth가 가져온 우주의 혼돈을 바로잡기 위해 결투하다 왼쪽 눈을 다쳐 피와 눈물을 흘린다. 마술의 신인 토트Thoth가 그 눈을 회복시켜 지하세계를 통치하는 달로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어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라’의 눈을 ‘웨자트’wedjat라고 부른다. 웨자트는 자기희생을 통한 재생과 부활을 상징한다.
눈물은 분리이자 시작이며, 죽음이자 생명이다. ‘눈물’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티어’tear는 같은 형태의 동사 ‘테어’tear과 같은 어원에서 유래했다. 눈물은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떼어내는 행위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오래된 광고지처럼, 마음에 붙어있는 집착, 가식, 이기심을 강제로 떼어내려는 노력이다. 그 과정 중에 상처나 자국이 남을 수도 있다. 눈물은 이성을 숭배하고 감정을 숨기고 체면에 기생하는 인간을 한 순간에 공격하여, 자신의 감추고 싶은 과거와 직면하게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촉구한다. 내가 저녁노을에 눈물이 나는 이유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그 노을은 나에게 묻는다. “왜 너는 그런 삶을 살지 않는가?” 어머님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살이 나를 울게 만들다. 그 주름살은 묻는다. “왜 너는 어머님처럼 헌신적인 삶을 살지 않는가?” 아내가 조용히 잡은 손이 나를 감동시킨다. 그 손은 묻는다. “왜 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손을 뿌리치는가?”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딸들의 목소리가 나를 눈물짓게 만든다. “왜 너는 그 아이들처럼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가?” 글을 쓰고 있는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나의 반려견, 샤갈과 벨라가 나를 울린다. “왜 너는 이들처럼 순간을 살지 못하는가?”
사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오른편 마리아의 눈물
벨리에 화가 로히르 반 데르 웨이덴 (1399/1400-1464)
유화, 1435. 220 cm x 262 cm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Madrid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 저작 <인간의 위대한 여정> (2015년, 21세기북스) 215-217쪽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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